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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박근혜 탄핵 비화 <천영식의 증언>

박근혜에 모든 책임 덮어 씌우려는 사람들에게 고하는 경고

입력 2019-10-23 07:30   수정 2019-10-22 18:29

박근혜에 모든 책임 덮어 씌우려는 사람들에게 고하는 경고

 

 

 

저자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세월호 사태 직후 청와대로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스스로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비서관’이라고 말한다. 탄핵 후 많은 청와대 당직자들이 떠날 때 마지막까지 곁에서 보필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책에는 기자나 변호사들이 쓴 ‘박근혜’와는 다른 청와대 깊숙한 이야기들이 꽤 담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렇게 탄핵 사태 대응에 소극적이었는지, 최순실과는 도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그렇게 감쌌었는지 등에 관해 색다른 증언을 해 준다. 저자는 ‘박근혜 혹은 박근혜 정부 바로보기’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적었다. 아쉬운 점은 그렇게 말하는 저자가 내년 총선 때 특정 지역에  출마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을 덮으면서 왠지모를 찜찜한 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 ‘질서 있는 퇴진’ 가능했던 탄핵 정국, 그러나 …

 

* 한광옥 마지막 비서실장의 마지막 시도 - 한 실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옷 로비 사건 수습을 위해, 박근혜 정부에선 최순실 사건의 구원투수로 기용되었다. 민주당 사람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마지막 협상에서 역할이 기대됐다. 실제로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 측이 연락을 취해 와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이 추진되었으나 결국 불발에 그쳤다. 당시 야당의 강경파들이 “야합”이라며 영수회담 개최를 흔들어댄 탓이었다.

 

* 친박·반박 모두에 대한 섭섭함 -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정치 결사체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보았다. 특히 함께 정권을 창출한 그들이 자신을 탄핵으로 몰아간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다. 친박 의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탄핵 당시, 어느 친박 의원도 총대메고 싸워주지 않았다. 헌법학자 출신의 한 친박 의원은 탄핵 절차의 부당성을 진술해 달라는 청와대 요구마저 거절했다고 한다.

 

* 당 원로들 4월 퇴진 거론 - 질서있는 퇴진 논의는 뜻밖에도 정치 원로들이 먼저 거론했다. 2016년 11월 27일 정치원로들의 모임에서 급 물살을 탔다. 이것이 11월29일의 3차 담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김수환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이홍구 김덕룡 김원기 임채정 권노갑 정대철 등 원로들이 망라된 이 모임에서 ‘4월 퇴진, 6월 대선’의 정치일정이 제시되었다.

 

* 4월 퇴진, 정치권에 매도당해 - 당장 새누리당 비박 진영 모임인 비상시국회의가 4월30일 퇴진, 6월30일 대선 일정으로 구체 일정을 제시했다. 야당도 겉으론 즉각 퇴진을 요구했지만 내심 현실적인 타협점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실질적인 협상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3차 담화 때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결정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공론화됐다. 퇴진할테니 시기만 국회에서 정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는 하루 빨리 퇴진할 것을 종용했다. 청와대가 수용하기 힘든 여건을 만들어 놓고 이를 다시 탄핵의 명분으로 쌓아가려 한 것이다.  

 

◇ 조기 퇴진에서 정면 돌파로 방향 전환 

 

* 조여오는 검찰, 담화도 별무효과 - 검찰은 형사상 불소추특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이라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국면을 조성해 갔다. 대통령은 최순실이 귀국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청와대 수석과 3인방이 퇴진하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 기대를 안고 2차 담화까지 나섰으나, 연일 최순실 비리 혐의가 공개되자 어떤 수습 노력도 효과가 없었다. 검찰은 조여오고 여론은 반전이 없는 상태에서 청와대가 할 일은 없었다고 한다. 2차 담회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수사를 받는다고 상황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여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대통령 조사 시기와 방법을 놓고 검찰과 물밑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결렬되었다. 

 

* 조기 퇴진보다 헌재 탄핵심판 수용쪽으로 -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본 대통령은 조기 퇴진보다 헌재 탄핵 심판을 받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탄핵불사론’은 그 동안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에게 꾸준히 전달되었고, 명분을 중시하는 대통령도 강하게 끌렸다. 탄핵안이 헌재에 머무는 동안 정국이 냉정을 되찾고 국민들이 차분하게 사태를 바라볼 것이라 기대했다. 특히 대통령 자신이 법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는 입장이라, 헌재로 가면 오히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도 ‘즉각 하야’는 최순실과 관련된 범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 끝까지 대통령을 실망시킨 새누리당 - 대통령은 4월 퇴진론 이후 당에 자신의 거취를 맡겼다. 하지만 정진석 원내대표 등은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 논의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당론 없음”을 선언했다. 게다가 탄핵 투표시 자유투표를 할 것이라며 등을 돌렸다. 탄핵 표결을 사흘 앞두고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와 마지막 회동을 가졌으나 결렬되었다. 대통령은 두 대표에게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당론(4월 퇴진)을 따르려 했지만 당론이 파기된 상황이다 … 차라리 탄핵 표결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세월호 7시간에 딴 짓 하지 않았다. 최순실 사건은 인간관계이지 재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천명했다. 같은 당 대통령을 끌어내린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반문한다.

 

◇ 대통령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했을까

 

* 언론 접촉을 수차례 건의했던 참모들 - 당시 최순실 인사개입 등의 뉴스가 마구 터져 나오는 것에 비해 해명이 부족했다. 참모들이 틈틈이 대통령에게 기자회견 등의 언론 접촉을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광풍의 시대에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느냐’고 판단한 것 같다고 한다. 대통령은 1월을 견디고 나면 동정 여론이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희망을 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대응이 결국 의혹을 사실로 둔갑시킨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다.

 

* 할 말 안한 대통령, 왜? - 탄핵 이전부터 주사 논란이 이어질 당시 참모들이 적극적인 대응 주문. 커터 칼 테러 이후 얼굴 비대칭으로 고생하면서 후유증 치료 차원에서 주사 맞은 것인데 그런 말씀을 왜 하지 않느냐고. 대통령은 ”어디가서 병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약해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강박관념 있는 듯. 탄핵 심판 후 구치소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눈물 보였다는 보도에 대노했다는 얘기도 들림.) 비참한 대통령은 될지언정 비겁한 대통령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 분위기 였다고.

 

* 최순실과의 관계 해명 부족했던 1차 대국민 담화 - 연설이나 홍보 메시지를 최순실에게 전달하고 의견을 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주변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했다. 대통령은 “그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이냐?”고 생각했다. 태블릿PC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한 것도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태블릿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았고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아 의혹만 증폭시켰다. JTBC는 영리한 편집으로 최대 성과를 냈다.  

 

* 2차 담화 때 터진 지지율 5% 갤럽조사 결과 - 2016년 11월 4일 대통령은 “저도 몰랐던 이야기나 최순실이 사익을 취했다는 등의 내용은 제 불찰이라고 생각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려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순실과의 관계나  최순실 비리 의혹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안되었다는 평가였다. 무엇보다 이날 한국갤럽이 대통령 지지율 5%라고 발표한 것이 치명타였다. 2차 담화 이후 여론이 전혀 반영 안된 상황에서 발표되어 마치 담화 자체도 국민 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 탄핵 요건 되는지도 모르고 탄핵 나선 국회

 

* 특검법 통과 때 탄핵소추는 막았아야 -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킨 이상 탄핵소추는 하지 말았어야 했고, 또한 탄핵을 소추하더라도 적어도 특검 수사 결과를 기다렸어야 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특검이 들어서면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에도 없던 블랙리스트 사건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여론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본질과 다른 이슈몰이에 현혹되어 대통령 탄핵까지 간 것이라는 판단이다.

 

* 국회 탄핵의 허술함 -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요구한 탄핵소추 사유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책임은 없다고 판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경질과 세계일보 해임 등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이런 사유들이 의결된 것이 의아할 정도다. 탄핵 사유가 처음부터 억지논리였다는 얘기다.

 

* 국회해산권 없이 탄핵 대상인 한국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은 우리 나라의 탄핵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국회의 충동적 소추의 결과를 헌재가 정치적으로 판단하면 얼마든 성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너무 정치적이고 너무 취약하다. 저자는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할 권리가 없는 반면,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일갈한다. 

 

* 민정·정무·홍보 기능이 중도하차의 원인 - 한국 공권력의 정점에 있던 검찰권력이 2016년 10월말을 계기로 등을 돌렸다. (민정 기능의 마비). 정치와 공생관계에 있던 국회, 특히 여당 의원들이 2016년 11월 이탈했다. (정무기능의 마비), 대통령의 사생활 영역까지 침범하며 공격하는 언론을 막지 못했다.(홍보 기능의 마비) 권력의 호위무사였던 이들 3개 파트가 이제는 대국민 서비스의 전진기지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온갖 오보 속에 검찰과 짜 맞춘 듯한 탄핵 수사와  판결

 

* 박영수 특검은 결국 ‘헌재 도우미’ - 모든 일정은 대통령이 박영수 특검 조사를 받는 방향으로 조율되고 일정에 맞춰 필요한 준비가 진행된 정황이 짙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재와 특검이 일정을 서로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헌재 선고가 3월10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특검이 수사 결과를 6일에 발표한 것도 그렇다. 고영태의 녹취록 같은 새로운 증거들은 전혀 채택되지 않는 등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았다고 한다. 그럼 누가 이 큰 그림의 기획자였을까… 

 

*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 무시한 검찰 - 정확히는 10월27일. 최순실 특별수사본부의 확대 개편을 계기로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영향력에서 이탈했다. 문제는 이탈에 그치지 않고 저격에 나섰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은 대통령을 검찰 권력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그럼에도 특별수사본부 발족 이후 검찰은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하고 구속시키겠다고 달려들었다. 헌정 사상 첫 사례다.

 

* 헌재의 탄핵 판단 근거는? - 헌재는 대통령이 최순실의 이권 추구를 도운 것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또 문건 전달이 국가공무원법 비밀엄수 위배이며, 재단과 관련해선 기업의 자율권 침해라 판단했다. 

 

* 헌재 판단의 허술함 - 첫째,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 등이 부패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으므로 이를 대통령이 책임저야 한다는 논리는 말이 안된다. 대통령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는데 측근과의 연좌제 논리로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당연히 파면 당했어야 했다. 둘째, 법원의 판결도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 탄핵이 추진된 것도 문제다. 형사 재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형사적 증거채택 과정은 생략한 채 재판을 강행해 놓고는, 최순실 등의 범죄행위를 방조했거나 연관되어 있을 것이란 심증 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셋째, 탄핵 재판 과정에서 끊임없는 불정공 논란도 많다. 3월 13일까지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박한철 헌재소장의 선고시한 설정, 9인 재판관도 채우지 못한 8인 재판관의 선고 강행, 그리고 고영태 증인 채택 무산 등 편파적 재판 운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 모두 오보로 판명난 보도들 - 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우리 언론은 마치 오보 면책특권을 보장받기라도 한 듯 오보를 마구 쏟아냈다. 고산병 치료제로 청와대 경호실 용도로 과거 정부부터 구입한 비아그라 보도에 대통령은 “왜 샀나요?”물으며 한 숨을 내쉬었다. ‘통일 대박’은 최순실 아이디어라는 미확인 보도도 현경대 의원이 법대 동기인 신모 중앙대 교수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청와대 행정관이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문구를 인용한 것을 주술적 메시지로 둔갑시켰다. ‘청와대로 들어간 침대 3대, 2개는 누가 썼나’ 류의 소설성 기사가 난무했다. 청와대 홈 페이지에 <이것이 팩트다>라는 오보 대응 코너까지 만들었으나 역부족이었다.

 

◇ 대통령이 직접 말하는 나와 최순실

 

* 대통령이 말한 ‘나와 최순실’ - 2차 담화 준비 기간 중 참모들과 독회하는 자리에서 최순실에 관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는 내가 가장 증오했던 것이다. 굿이나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니 가슴이 찢어진다. 이조차 내 불찰이다. 모든 게 최순실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최순실과의 연결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차라리 대통령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 측근이 보는 박근혜와 최순실 -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 지낸 정홍원 전 총리는 2019년 2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최순실에 대해 이야기 않는 이유에 관해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다. 누워서 침 뱉기라고, 윗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을 더 치사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 최순실은 영부인? 말벗? - 저자가 최순실이 ‘영부인’ 역할을 했을 것 같다며 개인적인 느낌을 대통령에게 문의했었다고 한다. 이에 대통령은 동의 않았다고 한다. 이어 “그럼 말벗이냐”는 물음에는 “그저 소소하게 도와준 사람”이라고 답했다 한다. 이혼했다는 것, 딸이 정유라로 개명했다는 등의 사실도 모두 이번에 알았다고 한다. 최순실의 개인사는 잘 모른다는 답이었다.

 

* 유독 최순실에만 공손했다? - 정호승이 검찰에 빼앗긴 녹음 파일을 들으면, 대통령이 최순실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이다. 취임사 작성 때 참고하려고 정호성이 대통령과 최순실 등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이 테이프를 듣고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아는 지인들은 그가 누구와 대화 나눌 때 상대방 말을 자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대 말에 수긍하면 그저 “예”를 반복하고, 동의하기 어려우면 별다른 반응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 최순실과의 깊어진 인연 계기는 ‘미니홈피’ - 2002년 미니홈피 싸이월드 오픈을 계기로 두 사람이 업무로 맺어지게 되었다고 지인들은 증언한다. 당시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순실이 유치원 홈페이지 개설하면서 SNS에 눈을 떴고 대통령에게도 미니홈피 개설을 제안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당시 미니홈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때부터 대통령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 보수 궤멸 위기 속 ‘위험한’ 문재인 정부 

 

* 탄핵 사태는 낡은 운동권 세력 대 자유민주주의 세력 대결 - 당시 탄핵 공방은 진영 간 대결이었다. 그러나 ‘부패한 박근혜 대 반 박근혜 새 정치’의 프레임으로 좌파 진영이 포장해 버렸다. 새누리당은 보수 진영이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갈등 상황을 수습했어야 했는데 실패했다.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운동권 세력은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더 부패하고 위선적이며 구태의연하게 군림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위험한 공수처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검찰권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장악하는 권력기관을 추가하겠다는 의도로 만든다면 절대로 생겨나서는 안되는 기관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다른 검찰을 만들 뿐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민정 기능과 검찰권에 대한 통제가 필요한 때이며, 검찰을 장악하고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 ‘세월호팔이’ 문재인 정부 -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이 이슈를 더욱 파고 들었다. 헌재가 탄핵 사유에서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10월 임종석 비서실장이 느닷없이 수사를 의뢰해 검찰로 하여금 세월호 사고 당일을 분 단위로 따져 다시 조사토록 만들었다. 관계자들은 온갖 수모를 당할 수 밖에. 저자는 문 정부가 세월호 이슈를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 봐주기 아닌 박근혜 정부의 실용적 통일론, 그리고 경제적 성과

 

*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 로마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말로, 박 대통령이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평화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화 노력과 함께 대북 억지력을 높이는 정책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향해 핵을 버리고 협상장에 나오라고 요구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핵을 가지고 회담장으로 오게 한 것이 두 정부 간 근본적인 차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박근혜 정부의 통일 준비 - 실질적 통일 준비 차원에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좌우 구별없이 통일을 준비하는 미래지향적 열린 모임이었다. 이산가족 영상편지 1만여건을 제작했고, 1만여명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중단됐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회의도 재개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의 일환으로 남북한 철도 및 도로 연결 프로젝트를 북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사업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계속했다. 

 

*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개성공단 폐쇄 -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고, 결국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한 최고의 압박 전술이었다. 대통령은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자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개성공단 중단과 대북확성기 재개는 북한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 박근혜 정부의 성과 - 저자는 박근혜 정부의 네이밍으로 ‘길을 만드는 정부’라고 칭했다. 경제적으로는 2014년 2월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성과가 2015년부터 도출되기 시작했다. S&P가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무디스는 Aa3에서 Aa2 상향조정했다. 고용률도 2014년 65.3%에서 2015년 65.7%, 2016년 66.1% 등 3년 연속 역대 최고치 경신했다. 4대 구조개혁의 성과도 탁월했다. 2015년 5월 공무원연금개혁을 마무리해 313개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통해 청년창업을 지원했고, 2016년에는 크라우딩펀드를 도입해 스타트업의 자금난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 끝장토론식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푸드트럭 규제 폐지 등의 성과를 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등 문화계의 각종 창조적 노력은 이후 한류가 비약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 누구 책임인가,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 박근혜에 모든 책임을 미루는 비겁한 행위 멈출 때 - 문재인 정부의 퇴행적 행보가 박근혜 시대를 현실정치의 무대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이 부각될수록 “대체 탄핵은 왜 한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 늘어나면서 “탄핵을 당할 만큼 박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냐”는 논쟁이 일고 있다고 전한다. 저자는 “이제 강렬하게 투쟁하되 희망을 주고 거짓말 하지 않는 따뜻한 보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반기문에 섭섭해 한 대통령 - 박 대통령은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보수정권이 맥을 잇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호의를 가졌다. 매년 새해 벽두에 안부전화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 1월 1일 또는 2일에 반 총장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자 전화가 뚝 끊겼다고 한다. 그러다 “기회가 되면 촛불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반 총장의 발언이 나오면서 대통령은 반 총장의 ‘그릇’에 대해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관저 업무는 문재인 대통령도 같다 - ‘세월호 7시간’ 프레임은 처음에는 대통령이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일에 몰두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가 결국에는 “왜 출근 않고 관저에 있었느냐”로 바뀌었다. 밀회, 굿, 성형 등의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모두 밝혀졌지만, 관저 칩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트위터에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는 것은 출근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601일을 분석한 결과, 문 대통령 역시 평일 중 일정이 없는 날이 47일, 관저 일정은 총 25회 있었다고 밝혀졌다. 관저는 대통령의 정상적인 업무 공간인데 이를 정치 공세의 근거로 악용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레임덕이 오는 6가지 요인 - 미국의 레임덕 전문가 데이비드 던(David H. Dunn)가 주창한 이론이다. 첫째는 한정된 임기가 문제다. 둘째는 반대 세력의 결집, 셋째는 여소야대라는 분점 정부다. 넷째는 인재의 부족, 다섯째는 아젠다의 고갈, 마지막으로 부정부패가 레임덕을 만든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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