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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왜 가중 다수결인가?

입력 2019-11-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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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
날로 심해지는 복지 국가화 경향에 대한 우려가 높다. 정부의 경제 개입으로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포퓰리즘의 극성에 대해 정부를 향한 비난이 거세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이런 추세는 중단은커녕 늦추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정치적 역사일지도 모른다. 수사(修辭)로 큰 시장·작은 정부를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정치인도 이익 집단도 유권자도 진정으로 그 대의에 따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시장 경제 교육과 자유주의 사상 전파를 열심히 한다 해도 사정이 크게 바꿔질 것 같지 않다.



시장 자유주의자로서 나름 이 점을 오랫동안 생각해 온 필자의 견해로는, 그런 반(反)자유 시장적 추세는 헌법에 가중 다수결을 규정하지 않는 한, 억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가 지금처럼 무슨 일이든 다수결로 처리해서 수행할 수 있는 한, 이런 폐단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시장 경제 교육을 잘 시킨다? 교육을 잘 시켜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시장 경제 교육이 헌법에 가중 다수결을 넣도록 자극해야만 시장 경제 교육이 진정한 효과를 볼 것이다. 시장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의 재임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진정한 해답은 헌법에 정부가 수입, 지출 활동에 대해 가중 다수결을 얻게끔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많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과반수결)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이다. 결정을 가중 다수결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 반론이 즉각 나온다. 가중 다수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데, 이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공부를 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볼 수 있다. 가중 다수결의 의의를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고 과반수결에 대한 미신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의사 결정 규칙들에 관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기실 대부분이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올해는 제임스 뷰캐넌 탄생 100주년이다. 뷰캐넌은 고든 털럭과 함께 가중 다수결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역설한 책 ≪국민 합의의 분석≫을 썼다. 그 책은 공공선택론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정작 정치학, 경제학, 그리고 철학의 다른 지도적인 학자들은 가중 다수결에 관한 논의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학자들이 가중 다수결의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오늘날 갈수록 심해지는 전 세계적인 복지 국가화 및 경제적 개입주의의 경향을 보면서 필자는 그 두 학자가 얼마나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다른 한 편, 자기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들과 일반인들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고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애덤 스미스 이후, 루트비히 폰 미제스도, 아인 랜드도, 밀턴 프리드먼도,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도 정부의 역할에 관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정부는 꼭 자기가 해야 할 일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과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이란 국방, 치안, 사법, 그리고 국민들(시민들)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는 것이다. 국방, 치안, 그리고 사법도 국민들이 정부의 기능으로 만장일치 합의하는 것들이므로, 결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란 국민들이 만장일치로 정부가 해야 한다고 합의를 보는 일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이것들만 정부가 하고 합의를 볼 수 없는, 사람들끼리의 선호가 다른, 나머지 문제들은 개인과 민간 시장에 넘겨서 처리해야 한다. 빨강색 자동차를 타고 싶은 사람들은 빨강색 자동차를 타고 검정색 자동차를 타고 싶은 사람들은 검정색 자동차를 타도록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재산권을 보호하는 일은 잠재적인 도둑도 동의하면서 만장일치 합의를 얻는 일이므로, 이런 일은, 그리고 이런 일만, 정부가 해야 한다. 아인 랜드가 한 마디로 요약했듯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방, 치안, 사법, 그리고 국민들이 합의를 보는 것들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만장일치 합의를 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 결과에 초점을 두면 국민들이 만장일치 합의를 볼 수 있는 일들이 좀처럼 없다. 손해 보는 사람들은 반대할 것이고 이익 보는 사람들은 찬성할 것이기 때문에, 만장일치 합의가 쉽게 나올 수 없다. 그러나 결과를 가져오는 절차에 초점을 두면 만장일치 합의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절차는 다른 말로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민들은 결과에 만장일치 합의를 볼 수 없을지라도 규칙에 대해서는 만장일치 합의를 볼 수 있다.

규칙들은 단계를 이루고 있다. 대통령을 유권자의 과반수로 선출한다는 규칙, 정부의 지출 프로그램에 국회의원 2/3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칙, 그리고 최저 임금제의 실시에 국회의원 3/4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칙을 담은 규칙(헌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정부의 지출 프로그램에 대해 만장일치를 사용하면 소수파가 피해(외부 비용)를 입지 않아서 좋다. 그러나 만장일치를 사용하면 꼭 필요한 정부 지출 프로그램의 채택을 막게 되는 비용(의사 결정 비용)이 커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비용을 고려하여 만장일치에서 벗어난 2/3결을 규칙으로 채택한다. 두 비용을 고려하여, 대통령 선출에 대해서는 과반수결을, 최저 임금제에 대해서는 3/4결을 채택한다. 이와 같이 사안에 따라 다른 의사 결정 규칙을 사용하지만, 그것들을 담은 헌법(상위의 규칙)은 만장일치 찬성을 얻는다. 다시 말해, 어떤 문제에 대해 그 규칙이 만장일치 규칙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과반수 규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문제에 과반수 규칙을 사용하기로 하는 규칙(헌법)에는 만장일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어떤 문제에 대해 외부 비용과 의사 결정 비용을 고려해서 적정한 규칙을 사용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2/3결과 같은 가중 다수결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과반수결을 사용하면 국가에 돌아가는 편익이 사업 수행에 드는 비용의 반밖에 되지 않는 것도 통과될 수 있다. 2/3결을 사용하면 편익이 비용의 2/3밖에 되지 않는 것도 통과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비효율적인 사업이 통과되는 것을 막으려면 만장일치 규칙을 사용해야겠지만, 만장일치를 사용하면 지나치게 의사 결정 비용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만장일치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비상사태 등 처리가 긴급한 경우나 국민들의 선호들이 대칭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경우 의사 결정 비용보다 외부 비용이 더 문제가 되므로, 만장일치에서 조금만 내려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가중 다수결이 많은 문제들에 적합하다.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서, 기라성 같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정부의 역할을 잘 밝히고 있음에도 어째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국민들이 복지 국가화와 정부 개입주의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는가? 왜 전임 후임 정부 가릴 것 없이 정부들이 복지 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는가? 왜 전임 후임 정부 가릴 것 없이 최저 임금을 올리고 기업 활동을 규제하며 친노동 정책들을 전개하고 있는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심지어 그렇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식견 있는 온갖 사람들이 역설하고 있는데도, 왜 이런 추세는 수그러들지 않는가? 그 이유는 정부의 의사 결정들이 거의 항상 단순 과반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견고한 처방은 가중 다수결을 사용하도록 헌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정부 개입주의의 폐해를 모르는 국민들이 많지만, 좌파들이 우파들보다 더 정부 개입주의의 폐해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정부 개입으로부터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민노총과 전교조의 예에서 보듯, 좌파들이 우파들보다 정부를 상대로 한 이익 추구가 더 심할 것이다. 정부 개입의 폐해를 모르는 사람들은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경제의 발전을 가져 오고 국민의 삶을 더 낫게 한다고 진정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모두의 경제생활이 향상되는 것보다 국민들 사이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설사 그 결과 개개 국민의 상태가 더 나빠진다 할지라도,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반면 정부 개입주의의 폐해를 아는 사람들도 자기의 이익 때문에 여전히 정부 개입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나쁜 정책이고 모두를 망하게 하는 정책이지만, 현 체제에서 내가 점잖게 그 정책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달라지는 바도 없고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공유지의 비극 또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는 각자는 결과가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나의 것부터 챙기고 보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온갖 경제 악화, 부조리, 폐단, 후유증이 생긴다. 또한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처방을 제시하고 그 실시를 역설한다. 처방들의 표현들은 갖가지이지만, 같은 내용이다. 기업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게 하고, 시장의 자율을 높이며, 정부의 크기와 기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에 이를 위한 제도적 요건들도 갖춰져 있다. 정부의 삼권을 분립시키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따로 두며 시장의 자율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어떤 것을 시장에서 처리하고 어떤 것을 정부에서 처리할 것인지가 모호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국민들마다 서로 견해가 달라, 정부 개입주의자들에게 정부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일일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해 놓기도 어렵다. 이런 연유로 헌법에 가중 다수결을 규정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반복하자면, 복지 국가화와 정부 개입주의의 폐해를 정말 막으려면, 헌법에 가중 다수결을 도입하여야 한다.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실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EU 헌법에서 가중 다수결 도입의 노력이 있었다. 제임스 고트니 등이 쓴 ≪상식의 경제학≫에서는 가중 다수결을 도입해서 정부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헌법 개정 시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중 다수결의 도입이 어려우면 가중 다수결의 효과를 가지는 양원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설사 양원 각각에서 과반수결로 처리한다 하더라도 그 복합 효과로서 단원제의 가중 다수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가중 다수결을 헌법에 넣는 데 이해(利害) 문제는 크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정부 행동의 결과에서 상대적으로 더 먼 절차에 관한 규정이어서 국민들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교육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그 제도가 헌법에 도입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중 다수결의 의미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理解)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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