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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사람에 대한 단상

입력 2019-11-17 15:35
신문게재 2019-11-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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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강의실에서 ‘경영의 3요소’를 사람과 자본, 물자라고 가르친 것이 얼마 전인데, 이제는 갈수록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기업가치 창출에서 점점 사람과 물자의 요소가 희석되고 있어 그렇다. 어쩌면 자본도 그 중요도가 이전보다 많이 약화되었으리라.



그럼 무엇이 경영가치 창출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뉴욕대학의 폴 로머 교수는 “기업 내부의 지식혁신과 같은 내생적 변화에너지가 기업경영의 요체”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슘페터 같은 학자가 유사한 주장을 했지만, 지금 같은 반향은 아니었고 지금과는 사정도 달랐다.

스스로 ‘딥 러닝’ 하는 인공지능의 경영도입이 속속 실현되면서, 사람과 지식이 서서히 유리 되는 조짐도 감지된다. 지식이 사람 속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자율운용체계로 들어가고 있고, 사람은 아직 총체적으로 위치정립이 모호하다. 뉴욕증시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사람과 물자의 요소가 기업가치로 녹아나는 재무회계상의 증거가 갈수록 허약해진다.

이런 가운데 저명한 도시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역커뮤니티에 돈을 대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투자하라”고 주장한다. 혁신이나 진보의 문제에 있어 ‘사람’을 문제로 보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사회의 이슈를 던지는 정치인들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주장에 정치력을 집중하고 있다.

가끔 경제경영 대중강연을 하는 필자는 청중들이 “요즘 우리 경제가 어떠냐” 물으면 딱 부러지게 말해 주지 못한다. 무역수지나 수출액, R&D투자 같은 비교적 괜찮은 통계를 말해주고 싶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분야 일이라 실감은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제실상은 대체로 인간자본과 혁신지수의 관련성에서 어느 정도 설명력이 엿보인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인적자본을 포함시키고 GDP에서 R&D를 나누어 발표한 ‘2019년 글로벌혁신지수’에서 미국은 단연 우수하다. 스위스 싱가포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도 높은 편이다. 우리는 프랑스 등과 비슷하며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 2등이다.

어디선가 자신의 지식을 혁신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진행하는 소수들이 새로운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휘게의 나라’ 덴마크에도 사업가나 기술과학자의 일상은 많이 바쁘다. 코펜하겐 중심부의 코펜하겐 비즈니스스쿨에는 세계에게 몰려든 경영학도들이 밤새 공부에 열정을 쏟는다.

주거안정이나 소득원, 자녀양육이나 노인봉양 등 뭐하나 아직은 선진국다운 사람대접이 부족한 우리나라지만, 그래도 미래로 가는 수레바퀴는 사람의 지식과 자본과 상상력이 돌려가고 있음도 온 국민이 미상불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새 가을이 깊어간다. 자유주의에 빠졌다가도 수도원에 들어가 수학과 철학과 신학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1642년에는 계산기까지 발명했던 파스칼이 ‘팡세’에서 남긴 “인간의 존엄은 올바른 사유에서”란 말에서 화두를 잡고, 일생의 기억에 남을 만한 진한 사색을 권하고 싶다.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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