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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텍스트’는 어떻게 ‘예술’로 사회에 투영되는가…‘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

입력 2019-12-06 19:00   수정 2019-12-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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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들’과 제니 홀저와 ‘선동적 에세이’ 앞에 선 제니 홀저(사진=허미선 기자)

 

“저희 작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하나의 공적 요소, 공공의 요소로 메시지를 전달하죠. 이번에도 한글을 쓰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필요한 만큼 배워서 작업을 했습니다.”

40여년에 걸쳐 텍스트를 매개로 사회와 개인, 정치적 주제를 다뤄온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한글’ 작업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한글은 매우 깊어요. 영어 글자 자체가 추상성을 가지고 있다면 한글은 좀더 이미지적이에요. 하나의 그림, 사진으로 인식되죠. 사실 최초의 인간이 뜻을 전달하고자 시도한 것은 픽토그램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글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원형을 닮지 않았나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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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홀저 Photo by Nanda Lanfranco(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제니 홀저는 지난달 23일 시작한 커미션 프로젝트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2020년 7월 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과천)에서 포스터, LED사인, 돌 조각 등으로 구성한 초기작 ‘경구들’(Truisms), ‘선동적 에세이’(I flammatory), ‘당신을 위하여’(For You) 등 신작 3점을 선보인다.



“가장 두려웠던 건 저의 무지함이었어요. 텍스트가 기술적으로 구동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감을 알아내기도, 한국에 맞는 폰트 찾기도 어려웠죠. 가능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의지하면서 작업했습니다.”

240여개 문장으로 이뤄진 ‘경구들’과 에세이 컬렉션 ‘선동적 에세이’는 1000장이 넘는 흰색과 형형색색의 포스터 형식으로 관람객을 마주하는 첫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의 한 벽면에 설치됐다.

 

텍스트가 중요한 매개체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 제니 홀저는 “개인적으로 추상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끔찍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상적인 동시에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추상화와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의 공통점을 찾지 못했죠. 그러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인 언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직접 쓰려고 했지만 전문적인 작가들과 협업하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죠.“

‘경구들’은 한장에 30개 문구가 적혀 있으며 8장이 한 세트로 240개 문구가 영어로, 한국어로 번역돼 배치됐다. 작가 의도가 담긴 문구의 정확한 한국어 표현을 위해 4명의 번역자가 동원돼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다.  

 

오리지널 포스터는 A부터 Z 순으로, 번역된 한국 포스터는 가나다 순으로 배열해 언어의 다른 구조로 인해 읽히는 행간의 의미들이 새롭게 해석되는 여지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경구들 중 한국사회, 동시대, 지금 세대에 공감을 얻을 문구들 11점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조각공원 수변공원의 돌다리 난간 위에 새겨져 영구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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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제니 홀저의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그 선정된 11개 경구들에 대해 제니 홀저는 “굉장히 오래 회자돼 왔고 모두가 호불호 없이 잘 받아들이면 좋을 것들”이라며 “문구들도, 문구가 새겨진 곳들도 고요하다. 관람객들이 아주 우연히 만나 문구들을 만나 생각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선동적 에세이’는 포스터 한 장에 각각 20개열·100개 단어로 이뤄진 작업으로 권력남용, 사회적 불평등, 소외된 이들의 슬픔, 소수의 용기있는 자들의 목소리들이 담겼다.

로봇 LED 사인 신작인 ‘당신을 위하여’는 한강 최초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중 ‘거울 저편의 겨울 11’,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중 ‘질식’, 에밀리 정민 윤의 영문서적 ‘우리 종에 대한 잔혹함’(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 노벨상 수상자이자 목소리 문학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The Unwomanly Face of War), 이라크 여성 운동가이자 시인 호진 아지즈의 블로그 등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차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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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홀저의 로봇 LED 사인 신작 ‘당신을 위하여’(사진=허미선 기자)

 

6미터 넘는 사각 기둥의 LED장치로 구성한 작품으로 국문과 영문 텍스트가 교차되며 4시간 30분 사이클로 돌아가며 유리벽면에 투사된다. 제니 홀저가 “5시 이후 해가 저무는 시간쯤에 보면 더 좋다”고 추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영구소장품이다. 이들 문구는 죽음에 대한 사유와 경험, 세월호와 위안부 할머니, 전쟁 등 사회적 이슈들 등 익숙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담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걸 다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게 저희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도 하죠.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삶에서 굉장히 소중하고 핵심적인 요소죠. 저도 어떨 때는 삶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마티스 같은 작가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라는 작가는 오랫동안 걱정이나 우려된 것들을 주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 주제가 ‘여성’이죠.”

그리곤 “착취 당한 여성들,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한 대상들을 주제로 작업하게 된 것 같다”며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맞서 싸운 여성들”이라고 강조했다.

“제 작품 안에서는 콘텐츠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공간을 눈여겨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 텍스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를 고려해서 만든 작업이거든요. 이 작품을 위해 활용한 요소들이 반사되는 것들이 남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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