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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남북평화·평등·여성인권… ‘록의 전설’ U2가 노래한 메시지

입력 2019-12-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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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히스토리(history)’라는 글귀가 ‘허스토리(Herstory)’로 바뀌자 가로 61미터, 세로 14미터에 달하는 대형 화면 위로 가수 설리와 서지현 검사, 나혜석 화가 그리고 이름 없는 해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죽음으로 악성댓글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설리와 한국 미투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서 검사, 신여성으로 불렸던 나혜석 화가와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해녀까지...시대와 세대는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여성의 연대를 추구했던 이들의 사진 위로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한글 자막이 적혔다. 아일랜드 출신 밴드 U2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펼쳐진 8일 서울 구로구 고척돔 고척스카이돔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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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1976년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U2는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라는 수식어를 받는 그룹이다. 보노(Bono, 보컬/리듬 기타)와 디 에지(The Edge, 리드 기타/키보드), 애덤 클레이턴(Adam Clayton, 베이스 기타), 래리 멀린(Larry Mullen, 드럼/퍼커션) 등 원년 멤버 4명이 43년간 활동을 이어오며 1억 8000만 여 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그래미 어워즈 트로피만 22번을 가져갔다.

하지만 U2가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앨범판매고나 수상횟수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과 인권, 평화의 문제를 음악에 담아내며 ‘저항의 음악’으로서 록의 가치를 되새겼다. 이번 월드투어와 동명인 1987년 발매된 정규 5집 ‘조슈아 트리’는 U2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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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U2는 자신들의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콘서트를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전달했다. 엄청난 물량과 혁신 외에도 U2 콘서트가 공연예술의 정점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날 공연에서도 U2는 음악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멘트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40년 전 탄생한 ‘조슈아 트리’ 수록곡들과 U2의 과거 히트곡들은 2020년을 앞둔 대한민국에 각별한 울림을 안겼다.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로 공연의 포문을 연 U2는 ‘아이 윌 팔로우(I Will Follow)’, ‘프라이드(Pride)’ 등으로 돔구장을 예열시켰다. 대형 화면 위 거대한 ‘조슈아 트리’가 점등되는 순간은 U2와 관객과의 신호이자 약속이었다.

 

U2는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시킨 ‘조슈아트리’ 앨범 수록곡 11곡을 트랙 리스트 순서대로 들려줬다. 밴드의 최고 히트곡이자 전 세계 록커들이 앞 다퉈 커버한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의 전주가 울려 퍼지자 거대한 돔구장은 일순 고요해졌다. 2만 8000여 관객들은 순간을 음미하다 이내 익숙한 후렴구에서 우렁찬 떼창으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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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U2는 150여 분간의 공연 내내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전달했다. 반전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풍자했던 앨범 수록곡을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했고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의 추모곡인 ‘프라이드’(pride) 말미에는 꿈과 믿음, 평등, 약속 등의 단어를 전광판에 띄우며 평등과 평화, 연대를 강조했다. 

 

‘마더스 오브 더 디스어피어드’(Mothers of the Disappeared)를 부를 때는 침묵 시위하는 군중의 영상을 띄웠다. 이 곡은 1976년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레파엘 비델라 레돈도 통치하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으로 인권단체 활동가, 사회주의 3만 여명이 사라진 사건을 담은 곡이다. 흡사 한국의 광주민주화사태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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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모든 순간이 완벽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의 첫 내한공연임에도 2030 관객의 관심이 현저히 낮았다. 그러다 보니 당일 현장 판매에도 불구하고 끝내 티켓이 매진되지 않았다. SNS에는 사전 홍보 등이 부족해 U2의 내한을 뒤늦게 알았다는 고백도 눈에 띄었다. 공연을 주관한 MBC의 대형공연유치 능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고척스카이돔은 규모 면에서는 아레나급이지만 음향시설은 여전히 열악함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2의 공연은 한국공연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각과 청각을 절묘하게 녹여낸 연출, 각 나라의 상황을 이해한 명징한 메시지 전달, 그리고 팬들과의 소통까지 순간순간이 흑백사진처럼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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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밴드 U2가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하이라이트는 역시 ‘원’(one)이었다.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보며 보노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그는 분단의 아픔을 겪은 조국 아일랜드의 상황을 언급하며 “평화로 가는 여정에서 배운 것은 ‘타협’이다. 북한인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U2는 공연에 앞서 남북 이념 갈등을 담아낸 이시영 시인의 시 ‘지리산’을 전광판에 띄우기도 했다.

마돈나, 롤링스톤스와 함께 미내한 스타 3인방으로 꼽혔던 U2는 한국 팬들과의 첫 만남에 아쉬움이 짙은 듯 서툰 한국어로 “한국 대박이에요. 감사합니다”라며 “다시 또 오겠다”고 약속했다. 43년간의 기나긴 밀당이 이 한 마디로 정리됐다.

이날 공연은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관람해 눈길을 모았다. 김여사는 공연 관람에 앞서 멤버들과 환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보노는 공연 도중 “퍼스트 레이디 김정숙 여사가 (공연장에) 와주셨다”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1980년대부터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비롯, 분쟁과 테러, 인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세계 열강들을 접촉했던 보노는 9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할 예정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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