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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불공정한 ‘관례’에 반기 든 젊은 작가들! 제44회 이상문학상 유감

[트렌드 Talk]김금희·이기호·최은영 작가 등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

입력 2020-01-10 07:00
신문게재 2020-01-10 13면

LeeSangMoonhak
왼쪽부터 김금희·이기호·최은영 작가(연합)

문학사상사는 애초 제4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비롯한 우수상 수상자 및 수상작을 발표하기로 한 6일 기자간담회 당일 ‘무기한 연기’를 전하며 “언제 재개될지 확답을 드릴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시대를 앞서가 고독하고 고통 받았던 ‘이상’의 이름을 건 ‘문학상’이 시대착오적인 계약서로 공분의 대상이 됐다. 불공정한 조항을 담은 계약서를 이유로 5명의 우수상 수상자 중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수상을 거부했다.

 

1977년 출판사 문학사상사가 출범시킨 이상문학상은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는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을 기리는 문학상으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매년 1월 수상자 및 수상작을 발표하고 그들을 엮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출간해 왔다. 3일 수상자로 전화 통보를 받은 김금희 작가가 4일 자신의 SNS에 문제제기한 부분은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 조항이다. 

 

“대상(大賞) 수상 작품(이하 ‘대상 작품’이라 한다)의 저작권은 본상의 규정에 따라 주관사가 갖는다. 단, 주관사의 작품집 발행 후 3년이 경과한 이후부터, 동 대상 작품을 대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집에 한해서 그 대상 작품을 수록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본 작품집의 표제(대상 작품명)와 중복되거나, 혼동의 우려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대상 수상작가가 발행하는 자신의 작품집 서명(書名, 표제작)으로는 쓰지 않기로 한다.”

 

계약서 상에는 수상작의 저작권은 주관사(문학사상사)가 가지며 작품집 발행 후 3년 후부터 수상작가의 작품집에 수록할 수 있다. 더불어 3년 후에도 수상작을 수상작가의 작품집에 한해 수록은 할 수 있으나 수상작가의 작품집 ‘서명’(표제작)으로는 쓰지 못하도록 했다. 사실상 3년 간 저작권 독점인데다 3년이 경과해도, 계약서 표현을 빌자면 “어떤 경우에도” 책의 제목으로는 쓸 수 없는 계약이다. 

 

설상가상 2019년 이전 수상작가의 귀띔으로 김금희·최은영 작가가 문제제기한 계약서는 지난해부터 적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대착오적’ ‘시간을 거스르는’ 독점계약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작가들의 문제제기와 사회적 공분에 계약서 상 주관사인 문학사상사는 “문제가 된 관련 규정은 삭제하도록 하겠다” 말고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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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문학상의 저작권 처리는 저마다 다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1956년부터 문예월간지 현대문학이 시·소설·희곡·비평 부문 우수작품을 제정하는 현대문학상 관계자는 “저희는 계약서 자체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는 최은영 작가가 3일 문학사상사에 보낸 문제제기 이메일의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작에 오르면서 이런 조건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문학상 관계자는 “심사 후 작가에게 연락해 수상후보작 선정에 동의하냐 묻는다. 작가가 동의하고 작품을 보내주면 ‘재수록료’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문학상마다 상금, 선인세 등 명칭은 다르지만 저희는 ‘재수록료’를 드리며 (판매에 따른) 인세는 따로 없다”고 부연했다. 

각 문학가의 문화재단에서 선정하고 출판사가 작품집 출간을 하는 경우는 현대문학상처럼 당선수락으로 계약을 대신하거나 통용되는 출판 표준계약서를 쓴다. 문학동네가 출간하는 ‘김승옥문학상’ 편집자는 당선 수락 및 게재 허락으로 계약을 대신하고 있다”고, 매경출판의 생각정거장에서 출간하는 ‘이효석문학상’ 작품집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표준으로 제공하는 계약서로 계약을 한다”고 전했다. 

다수의 출판사 관계자들은 “표준계약서상에는 ‘배타적 이용’과 ‘전집 또는 선집 등에의 수록’에 대한 조항들이 있다”며 “출판사 입장에서는 제작비·시간·품을 들여 책을 냈는데 곧바로 같은 작가의 동일한 혹은 유사한 책들이 출간되면 낭패”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3~5년 간의 계약기간 중 저작물의 제호, 내용의 전부 혹은 일부, 동일하거나 유사한 저작물을 출판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출판하게 할 수 없으며(이상 배타적 이용) 저작물을 종이·디지털 서적 형태로 자신의 전집이나 선집 등에 수록·출판할 때는 미리 동의를 얻어야 한다(전집 또는 선집 등에의 수록)는 조항을 담은 계약서를 작성한다”며 “저작권 양도가 아닌 복제 및 배포에 대한 독점적 권리로 보통 민감하거나 유동적인 사안은 ‘추후 협의’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재경 건대교수·변호사는 “문학상의 경우 저작권은 작가가 그대로 보유하되 수상 이후 일정 기간 주최 측에서 작가의 저작권을 (출판 등)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며 “물론 이는 출판에 따른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법적소견을 밝혔다.

“사실 문학상 작품집은 꽤 오래 전부터 문학상 마니아들 사이에서 ‘문학권력’의 산물로 인식돼 구매도, 소장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독자들 뿐 아니다. 문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기존 발표작을 심사해 상을 주고 작품집을 내는 방식은 구시대적 ‘문학권력’이라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작가 자의에 의한 공모나 지원이 아닌 이상 출판사든, 문학재단이든 주관사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학상의 위상이 휘청거리면서 신인 작가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중진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자칫 문제제기를 한 작가들이 문단에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결국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파문 역시 ‘문학권력’의 산물이다. 한국 문단의 비호 아래 묵인돼 왔던 국민작가의 표절의혹, 문학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미투(#Me Too) 폭로 등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김금희·최은영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문학사상사 역시 작가들의 문제제기, 계약조항 수정 요청에 ‘관례’ ‘관행’이라는 이유를 달아 ‘불가’로 대응했다.

지금까지는 받아들여졌더라도 시대착오적이고 불공정하다면 ‘관례’도 고치면 될 일이다. 이재경 건대교수·변호사는 “저작재산권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자유롭게 양도가 가능하다. 이에 문학 뿐 아니라 각종 응모요강에 저작권을 주최 측에 반강제적으로 양도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하지만 몇 년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저작권 관련 지침 및 각종 표준계약 내용에서 엿볼 수 있듯 저작권의 창작자 귀속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저작권의 강제 양도 관행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대세로 자리잡는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이번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수상 거부 사태는 저작권 양도를 둘러싼 퇴행적인 구태의 한심스러운 재연이며 창작자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하루 속히 사라져야할 폐습”이라고 덧붙였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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