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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차별당히지 않기' 앞서 '차별하지 않는' 노력을...

입력 2020-01-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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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



저자 김지혜는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다. 소수자와 인권, 차별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다. 지난 7월에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고 말한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차별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별과 맞닥드릴 때도, 대부분 차별과 싸우기 보다는 “어쩔 수 없지”하고 감수하며 포기하게 된다고 아쉬워 한다.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차별을) 더 발견해야 할 때다.” 저자는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차별 당하는 사람만 아는 ‘차별’ - 차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밀한다.

* “한국인 다 됐네요”에 나타나는 차별성 - 이주민들은 이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에 모욕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 장애인에 “희망을 가져요”라는 잘못된 격려 - 이 역시 장애인에게는 모욕적 언사라고 한다.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은, 현재의 삷은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 우리는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 -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인 셈이다. 차별을 하면서도,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 명목상의 차별 시정 ‘토크니즘(tokenism)’ - 역사적으로 배제된 집단 구성원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 정책을 말한다.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선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고 한다.

* 기울어진 공정성 - 대니얼 카너먼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받은 ‘전망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손실의 가능성과 이익의 가능성 가운데 손실의 가능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회피편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대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다. 누군가의 평등이 나의 불평등인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기울어진 공정성’을 추구하게 된다는 얘기다. 저자는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차별을) 더 발견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 예맨 난민을 거부한 한국민들 - 2018년 500여명의 예맨 난민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했다. 당시 7월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 남성의 경우 46.6%가 수용에 반대했고 48.0%가 찬성했다. 반면 여성은 60.1%가 반대하고 찬성은 27.0% 불과했다. 난민 수용 반대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난민’이 아니라 ‘남성’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무슬림에서 연상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상과 테러 관련성 등이 덧칠 되었다. 난민 지원 세금에 대한 반발 등도 뒤섞였다. 난민인정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1만명이 넘는 동의 서명 나올 만큼 국민들 반대 여론도 거셌다. 결국 2018년 6월1일 이후 예맨인은 더 이상 제주도에 무비자 입국이 허가되지 않고 있다.

* 한국사회의 구조적 차별(systemic discrimination) - OECD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 34.6% 적어 회원국 가운데 최대 격차라고 한다. 대학 졸업 이상자로 한정해도 동등한 교육수준을 가진 남성에 비해 여성 임금이 28% 적다고 한다. 이런 것이 차별이 아닌 것 같은 차별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차별이 만연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 보다 “어쩔 수 없지” 하며 감수하고 포기하게 된다.

* 우월성 이론(superiority theory) - 토머스 홉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질문해 봐야 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 - 2018년 한국행정연구원이 전국 만 19~69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소수자 집단별로 물었을 때, 아예 ‘받아들일 수 없다’ 응답률을 보니 동성애자가 49.0%, 북한이탈주민이 12.6%, 외국이민자/노동자가 5.7%였다.

* 아직은 멀고 먼 ‘동성결혼’ - 2004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이 나라는 매년 1200~1400쌍의 동성 커플을 배출한다. 핀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도 이를 인정한다. 이들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 실시한 ‘2014년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르면, 이 조사에 참여한 레즈비언 937명 가운데 55.5%, 게이 989명 중 42.0%가 연애중이었다고 한다. 조사 당시 연인과 동거중인 사람은 레즈비언 중 17.3%, 게이 중 8.4%였다. 이렇게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사회가 인정할 것인지가 한국 사회에서는 관건이다.

* 성소수자가 독점하게 된 ‘퀴어’ -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바꿔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성소수자들을 지칭하는 퀴어(queer)가 대표적이다. ‘퀴어문화축제’ 등을 통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브랜드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 간접 차별(indirect discrimination) -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공정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공정하기 때문에 더 옳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불평등이 정당하게 보일 수 있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편향된 능력주의는 문제다. 자신이 편향되지 않았다고 믿는 자체가 위험하다. 결국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기에 더욱 편향되게 행동하는 ‘능력주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이 발생한다.

* 대중시설 이용제한 규제 없는 한국 - 한국에서는 대중시설의 주인이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손님을 거부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미국에서는 1964년 12월 하트 오브 애틀란타 모텔 소송이 유명하다. 흑인 손님을 받고 싶지 않았던 주인이 1964년 민권법 통과된지 2시간 만에 소송을 제기한다.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주인 주장을 기각한다. 미국 민권법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기업이라도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해선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 민주광장 ‘아고라’에도 있었던 차별 - 지구 최초의 공공 공간은 그리스 아고라 광장이었다.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제한되어 있었다. 성인 남자에 한정되었고, 여성과 아동 노예는 배제되었다. 즉, 아고라는 불평등한 자의 존재를 조건으로 한 평등의 장소였던 셈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입장 거부와 비슷한 케이스다. 소수자는 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길 사회가 강요하는 셈이다.

* 헌법재판소도 묵인하는 ‘고용허가제’ 폐해 - 한국인이 기피하는 직종에 고용주가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주는 제도라기 보다는, 주인이 외국에서 노동력을 들여올 권한을 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불평등을 보지 못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주노동자 관한 사건 결정문에서 헌재는 “외국인에게 … 기본적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바로 우리 국민과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시했다. 외국인도 헌법상 권리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인은 국민보다 덜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적었다.

* ‘시민불복종’이 필요하다? - 다수의 결정으로 소수에 대한 부정의가 용납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인1표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전체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때때로 시민 불복종(civil diaobedience)이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를 이루는 방도가 된다”고 주장한다.

* 공정세계 가설(just-world hypothesis) - 멜빈 러너는 “사람들은 공정세계 가설을 품고 산다”고 말했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정의한 상황을 보고도 이 가설을 수정하지 않으려 할 때 발생한다. 이 때 생각을 바꾸기 보다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해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구조적 차별에 개인에게 씌워지는 부담 - 불평등한 사회가 부당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종용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저자는 무의식적이었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억압에 기여한 행동, 행위, 태도에 대해 사람들과 제도는 책임을 질 수 있고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 이미 헌법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구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권고에 불과하다. 법률로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할 필요 있다. 국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게 만들고,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접근이 필요한 때문이라고 저자는 항변한다. 차별금지법은 권고가 아니라 시정하라고 명령하는 조치를 내리고, 만약 행위자가 악의적으로 차별을 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현재 이 법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일부 기독교계가 제정에 반대하면서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 ‘누구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 - 2007년 법무부 발의 차별금지법안에는 ‘성적지향’을 비롯해 병력과 출신국가, 범죄전력 등을 차별금지 사유서 제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에도 차별금지사유를 열거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차별금지법의 기본 목적이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기본원칙과 제도를 세우는 포괄적인 체계를 만드려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큰 원칙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N0 OneLeft Behind)’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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