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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태풍’은 사라지고 모두가 식탁에 앉았다…‘템페스트’ 신재훈 연출 “다 같이 밥 한번 먹죠!”

입력 2020-01-19 14:00   수정 2020-01-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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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음악극 ‘템페스트’의 신재훈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싸움이든, 사랑이든 만나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함으로서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시극단의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인 가족 음악극 ‘템페스트’(2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의 신재훈 연출은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대해 “대화 그리고 변화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가족음악극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동명작을 쉽게 풀어낸 작품으로 2015년 초연, 2016년 재연에 이어 4년 만에 돌아왔다. 밀라노의 공작이었지만 마법에 빠져 제 할 일을 등한시하면서 추방당한 프로스페로(김신기)는 무인도에서 딸 미란다(김주희)를 키우며 복수할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딸을 비롯해 오랑우탄 칼리반(이강민), 바람의 정령 에어리얼(김수지) 등과 살아가지만 마법으로 위협하곤 한다. 복수심에 휩싸여 딸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프로스페로는 늘 혼밥(혼자 밥먹기)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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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음악극 ‘템페스트’의 신재훈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나폴리의 왕 알론소(최나라)와 공모해 자신을 추방한 동생 안토니오(정홍구), 나폴리의 왕자 페르디난드(이상승)가 탄 배가 무인도 앞을 지난다는 소식에 에어리얼을 시켜 태풍을 일으키게 한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대본을 처음 받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밥과 배고픔이었어요. 오세혁 작가님이 ‘각자의 태풍에 휘말리는 사람들이여. 일단 각자의 밥상에 모여 밥을 먹자’는 주제를 대본 첫장에 써두셨거든요. 동료의식이 들어서 방긋 했죠.”

이어 신재훈 연출은 “밥을 먹자는 주제에는 ‘템페스트’가 초·재연됐던 2015, 2016년 당시 세월호 피해자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확고히 믿는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부모 13명을 인터뷰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나 (유가족 및 잠수부 심리상담 및 치유에 나섰던) 정혜신 박사님 전언의 공통점이 밥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안산을 거점으로 활동하시던 오세혁 작가님이 ‘내가 어떻게 일상을 살아’ ‘내가 어떻게 밥을 먹어’라는 당시 피해자들의 반문을 담아 썼다고 생각해요.”

그리곤 “저에겐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들은 배우나 스태프들과는 한번도 나누지 못한 얘기”라며 “싸움 속 대화의 과정으로 설명드렸다”고 덧붙였다. 신 연출의 말처럼 ‘템페스트’에서는 온나라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과 대사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난파된 배에서도 요리재료를 사수하려는 요리사 스테파노(이지연)와 그의 조수 트린굴로(김솔빈), “왕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승선한 이들 모두를 살리려는 선장(신근호), 스스로는 물론 백성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여왕 알론소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 역할에 열심이다. 더불어 배 난파 후 아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허기를 느낀 알론소는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배가 고프다니 미쳤나봐”라고 좌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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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음악극 ‘템페스트’ 공연사진(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그 말 후에 ‘다행입니다. 배가 고파야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꿈을 꾸고 꿈을 꾸면 노력하게 되고…’라는 곤잘로(김민혜)의 말이 바로 따라 와요. 큰 일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안된다는 죄책감이 있어요. 하지만 큰 일을 앞두고 배가 고픈 건 창피하거나 미안한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싸움이 한창일 때 태풍이 다시 불어닥치며 화해로 마무리되던 엔딩 역시 등장인물들이 자발적으로 밥상에 앉는 것으로 바뀌면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재연까지는 태풍이 하룻밤의 꿈처럼 싸움과 갈등을 사라지게 했죠. 하지만 대화와 스스로의 의지로 끝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을 중단하고 바꿨어요. 마지막 태풍신을 없애고 등장인물들이 음식을 먹겠다는 스스로의 의지로 한 밥상에 앉는 것으로 끝내보자 했죠.”


◇리듬과 템포, 음향효과들…주제를 강조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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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케이크송’을 비롯한 새로 만들어진 음악적 요소들로 꾸린 ‘템페스트’(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사실 태풍신을 없애고 함께 밥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도약이 좀 심하긴 해요. 하지만 음악의 가장 큰 힘이 도약이잖아요. 노래의 힘을 빌어 ‘밥상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 지점에서 새로 추가된 곡이 ‘케이크송’이죠.”

신재훈 연출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한국 전통 탈춤 형식을 접목한 ‘오셀로와 이아고’로 주목받았다. 그는 “제 습성 자체가 내용 뿐 아니라 리듬과 템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흘러가는 내용들은 배우들이 잘 잡아주고 있으니 그 위에 음악적 구성을 가미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그의 습성(?)은 가족을 위한 ‘음악극’이라는 형식의 ‘템페스트’에도 어김없이 스며들었다.

“관객들의 감각이 음악에 가장 민감하다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의 운율 역시 결국은 음악성이죠. 연극의 어법, 셰익스피어의 재해석은 당시대 음악성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내용의 도약에 음악의 힘을 빌렸고 타악 라이브 연주로 효과음을 중요하게 쓰고 있죠. ‘템페스트’의 관객들도 음악을 따라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의도한 ‘템페스트’의 음악적 구성은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의 조한나 작곡가와 정준 작사가·음악감독 그리고 유재성 안무가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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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음악극 ‘템페스트’의 신재훈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중간 중간 내용 설명을 위한 신은 어쩔 수 없지만 음악적 구성과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음악 전체가 바뀌었고 새로 만든 곡들도 있죠. 뮤지컬단이 아닌 시극단이다 보니 배우들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어요.”

배우들과의 호흡이 중요한 음악적 요소들에 타악 연주자들은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함께 했다. 더불어 개막 직전에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음향효과를 맞추기 위한 음악연습 시간을 따로 가지기도 했다.

“음악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배우들이 가장 잘하는 건 연기예요. 마지막까지 음악적 연습을 하긴 했지만 무대에 오를 때는 연기에 집중해야하죠. 그래서 틀려도 되니 마음껏 노래하라고 말씀드렸어요. 좀 못하다 싶은 간극은 연기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동시대성과 젠더프리 그리고 나를 닮은 요리사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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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의지로 한 밥상에 앉는 엔딩을 선택한 ‘템페스트’(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오세혁 작가의 힘은 농담에 깊은 시대성, 통찰력이 담겼다는 거예요. 그 특유의 코믹스러운 템포와 언어유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죠. ‘템페스트’에 세월호 유족들이 가진 죄책감을 가지고 왔고 코믹하지만 깊이 있는,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라는 데서 반가웠어요.”

신 연출은 ‘템페스트’의 ‘동시대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저는 늘 창작자들의 느낌이 ‘동시대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작품에서 동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한 말들은 평민 출신의 곤잘로의 대사에 실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번 ‘템페스트’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최근 열풍인 젠더프리(남녀구분없는) 캐스팅이다. 나폴리의 왕이던 알론소는 재연에서 바람의 정령이던 최나라가 연기하면서 여왕으로 등장하고 요리사 스테파노 역시 재연 당시 미란다였던 이지연이 연기한다. 신 연출이 ‘세상이 응축된 대사들을 한다’고 표현한 곤잘로 역시 김민혜가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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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음악극 ‘템페스트’의 신재훈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의도적인 젠더프리는 아니었어요. 아예 오디션을 역할마다 남녀 구분 없이 봤거든요. 오롯이 배우들의 선택이었어요. 알론소도 처음엔 왕으로 연기해달라고 했다가 연습 2, 3일만에 여왕으로 바꿨죠. 관객들이 가진 모성에 대한 감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캐스팅인 것 같아요.”

그리곤 페르난디드가 엄마 알론소를 알아보는 말 ‘난 몰라’가 만들어진 연습실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처음엔 (최)나라 배우님이 ‘난 몰라’라고 하셨어요. 그에 이어 정령의 리더이신 (신) 근호 배우가 또 ‘난 몰라’ 하셨죠. 여기저기서 쓰니까 나라 배우님이 또 강조해서 쓰시고…그렇게 배우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말이에요. 관객들에게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저도 궁금해요.”

그리곤 “그 말은 배고파와 연장선상”이라며 “배고픔과 아들을 잃은 슬픔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알론소의 마음과 죄책감이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결국 ‘템페스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밥 한번 같이 먹자’예요. 그래선지 전 요리사 스테파노나 그의 조수 트린굴로에 공감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등장인물들이 싸우는 중에도 음식을 주제로 얘기를 하죠. 복수로 얽힌 프로스페로나 안토니오, 알론소 등과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요. 저 역시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이어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제 영역과는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결국 만나지는 경우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스테파노가 갈등하고 반목하는 이들에게 음식으로 화해를 이끄는 것처럼 신재철 연출도, ‘템페스트’도 극과 극으로 내달리는 세상에 제안한다. “밥 한번 같이 먹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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