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사설] 현금복지에 거덜난 나라가 이탈리아뿐이겠나

입력 2020-02-24 14:05
신문게재 2020-02-25 19면

1인당 국민소득(GNI) 4만 달러에 진입하려면 이탈리아를 답습하지 말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는 의미심장하다. ‘이탈리아 현금성 복지정책의 시사점’ 내용을 가타부타할 수는 있겠지만 복지 부문 181조원, 현금성 복지지출(cash benefit) 54조원 이상을 쓰는 우리가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15년째 3만 달러 구간에 정체된 이탈리아의 성장률 하락이 전적으로 현금성 복지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공공사회복지지출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고 항변하는 대신, 우리 현재와 미래 모습을 투영해볼 대목이 많다.

잠재성장률을 3%대로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우리로서는 0~1%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탈리아가 하나의 반면교사 국가다. 펑펑 쓰다가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이탈리아는 국가부채비율도 높다. 내용은 좀 상이하나 소득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가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더 나빠진 추세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의 현금 지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긴요한 사회안전망을 위한 정책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균형 있는 복지가 아닌 데다 복지재정 지출 상승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함정이 있다.

이탈리아 사례가 그렇듯이 포퓰리즘이 오랜 경제 위기와 정치권의 무능함과 짝하게 되면 성장 체력을 회복시킬 재원은 줄어든다. 광역자치단체의 무한경쟁처럼 번지는 현금복지에 구멍이 나면 중앙정부가 세금으로 메우는 악순환은 예삿일이 아니다. 인구절벽에 빠진 처지도 이탈리아와 닮은꼴이다. 이탈리아의 작년 출산율은 1.29로 1세기만의 최저였다. 한국은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 2019년 3분기 출산율은 0.88로 더 최악이다. 이 역시 경제의 큰 압박 요인이다. 이탈리아를 넘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꼴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그저 농담처럼 흘려듣지 않아야 한다.

기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인프라 투자, 산업 지원에 대한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가 밀린 점, 둘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스톰 앞에서 위기 대응력이 약하다는 점도 사실은 엇비슷하다. 어쩌면 코로나 19라는 돌발 악재 추가까지 이탈리아는 똑같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현금성 지원 중복을 피하면서 사회서비스를 위한 다양한 접근방식과 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의도가 좋아도 재정 건전성과 경제 원리를 무시한 현금복지는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저성장 늪에 빠진 이탈리아에서 답습하지 않아야 할 정책들이다.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