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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사랑의 불시착’도 가르쳐 주지 않은 북한 경제의 실상 ‘북중 머니 커넥션’

입력 2020-03-11 07:00
신문게재 2020-03-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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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최대 규모 백화점 사장인 고명은(장혜진)은 딸 서단(서지혜)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밀수꾼이 몰래 들여온 남한 웨딩잡지를 보며 최신 유행 드레스 디자인을 살핀다. 나월숙(김선영), 마영애(김정난) 등 사택마을 주부들은 장마당(시장)에서 남한에서 밀수한 최신 유행 화장품을 고르곤 한다.  


남녀북남(南女北男)의 로맨스를 그린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엿본 북한주민들의 삶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드라마를 통해 과장되고 부풀려진 걸까. 신간 ‘북중머니커넥션’(책들의 정원)은 드라마 속 상황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했음을 알려준다.



책은 도입부부터 흥미롭다. 저자 이벌찬은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단둥(丹東) 지역에 자리한 구찌 매장은 단둥 점이 아닌 북한 점이라고 단언한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인 구찌는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브랜드다. 

 

구찌는 중국 내 총 56개 매장을 열었지만 대체로 소비 수준이 높은 대도시에 분포돼 있는데 낙후한 3선 도시에 입점한 건 단둥 점이 유일하다고 한다. 현지에서 저자가 만난 이들은 해당 매장의 주고객은 북한 주민이고 전한다. 실제 저자는 현장에서 15만원 상당의 구찌 양말 200켤레를 한번에 사는 북한 고객을 목격하기도 했다.

핵보유국인 북한은 지난 2016년부터 초강도 경제제재를 받았다. 과연 이런 북한 주민들이 명품을 쇼핑할 여력이 있을까.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내리막길이지만 북한 경제의 바로미터인 장마당 물가와 환율은 변화가 거의 없다. 심지어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지난 1월 발간한 ‘세계 경제상황과 전망 2020’ 보고서에서 북한의 2019년 경제 성장률을 1.8%로 추정했다. 3년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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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머니 커넥션’ | 이벌찬 지음| 책들의정원 | 1만 5000원| 사진제공=책들의 정원

저자는 북한경제가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생존비결로 중국이 든든히 뒷심을 책임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북한의 ‘큰손’이었던 러시아는 현재 교역상대 2위임에도 불구하고 1.2%의 비중만 차지한다. 2018년 북·중 무역액은 약 27억 2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북한 대외 무역의 95.7%를 차지한다. 사실상 경제가 중국에 종속된 셈이다. 


북한이 처음부터 중국에 의존한 건 아니었다. 남한을 제외하면 일본, 멕시코 등과도 교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반복된 핵 도발로 주요 교역국과의 거래가 끊긴 북한은 초강도 제재에 대비하게 됐다. 교역국가가 활발할수록 제재 효과가 높지만 중국의 우산 속에 들어가면 눈치 볼 곳이 중국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은 제재 제외 품목의 수출입을 늘리고 관광객 100만명을 북한에 보냈다. 국경 다리와 통관 시설을 확충하고 중국 기업가들은 금지 품목을 대량으로 거래했다. 소규모 밀무역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북한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은 광물이다. 매년 120만톤의 철구를 생산하는 중국 톈츠(天池)공사는 북한에서 함량 66%인 철광석을 들여온다. 하지만 북한 경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 광산 투자는 최소화한다. 직접 설비 투자는 줄이고 광석 위주로 수입하는 이유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왕서방’다운 전략이다.

저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단연 북한의 체제 유지라고 강조한다. 북한이 무너져 중국에 탈북민이 몰려드는 현상과 압록강 국경에 배치될 미군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저자가 현지에서 만난 북한 사업가들은 북한의 사업과 세계정세에 상당히 예민한 촉수를 드리운다. 한 사업가는 “북한은 69년 간 제재를 받으며 강해질대로 강해진 나라”라며 “세계 어느 나라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을 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북미관계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약속은 상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이행 가능하다”며 장밋빛 전망이 아닌 현실을 바라본다.

현직 일간지 기자인 저자는 2019년부터 2년 동안 중국 랴오닝 성 단둥, 다롄(大連), 지린성(吉林省)의 투먼(圖們), 옌지(延吉) 등 북중 접경지역을 발로 뛰며 현지 사업가들에게 전해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한 르포 형식으로 전했다. 

 

보수 매체에 재직 중인 저자는 오래 전부터 통일을 염원했다. 하지만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머나 먼 통일보다는 현실적으로 북한 개방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북한을 경제적 대상으로 여기고 북한이 개방했을 때 어떻게 북한에 투자해야 할지, 현재 북한의 ‘큰손’인 중국과 협력 관계를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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