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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입력 2020-03-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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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독일 전문가다. 그는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라고 평가한다. 그런 나라를 개혁하려면 미국에 대한 ‘안티 테제’로 평가받는 독일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청산, 분단 문제, 경제성장 등 우리와 같은 문제들을 경험했던 나라였고 그런 문제들을 비교적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저자는 독일이 우리에게 ‘요술거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들을 깨우쳐 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온 많은 것 들이 독일을 배우고 나면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단언한다. 특히 ‘인간존엄은 불가침하다’는 내용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해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한 강연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 독일을 배워야 한다면 이것부터

* ‘교육 대국’ 독일 - 독일에는 학비가 없다는 정도는 많은 이들이 알지만 이곳은 대학 입시도 없다.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그것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대학을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정원 보다 많이 몰리는 학과의 경우 ‘정원 제한 학과’로 일부 제한하는 정도다. 연방 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가 교육을 관할해 16개 주마다 선발 방식도 다르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0만 원 가량의 생활비까지 대학생들에게 준다. 학교 내 경쟁도, 등수도 없고 서열도 없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생각이 1970년대 독일 교육개혁의 기본 원리였다.

* 전쟁 폐허 속에서도 대학을 일으킨 독일 - 독일에서 등록금 폐지 조치가 194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당시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직후로, 독일 전 지역이 폐허였던 시절이었다. 전후 배상금 지급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였다. 그러나 독일은 교육에 대해 투자했던 것이다. 지금 독일의 학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 한국과 다른 독일의 대학 - 사립대학이 87%인 한국과 달리 독일은 98%의 대학이 국립이다. 미국 조차도 주립대 공립대 등이 많아 사립대학 비율은 20% 불과하다. 한국의 대다수 사립대학에서는 여전히 재단 이사장이 총장을 임명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그는 “국가가 여전히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사립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참고로 그는 두산그룹이 이사장 회사인 중앙대학교 교수다. 그는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낸다는 것을 독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전세계에 변혁을 가져온 ‘68 혁명’ -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 시작됐다. 이 운동의 핵심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었다. 당시 냉전체제에서 철의 장막이라던 동유럽으로까지 파급되어 70년대 초반까지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형성했다. 1964년부터 본격화된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실제 모습을 목도하면서 도덕적 충격으로 반전운동이 확산되고, 미국과 소련 간의 군비경쟁에서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 독일을 바꾼 68 혁명 - 68 혁명 당시 독일의 수상은 기독교만주당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였다. 그는 젊은 시절 나치 당원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수상에 오를 정도로 과거 청산이 안된 나라였다는 얘기다. 1966년 취임 때 양철북을 쓴 세계적인 작가 귄터 그라스가 사임을 요구하는 공개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1969년 이후 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일은 비로서 ‘과거 청산의 나라’로 바뀐다. 교육과 복지 체제도 틀을 만들기 시작한다. 브란트라는 인물 자체가 반 나치 저항의 상징이었기에 세계가 독일의 과거 청산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그는 비판 교육을 독일 교육의 첫 번째 원리로 채택해, 나치 잘못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해 비판 정신을 길러주었다.

* 남녀 구분이 없는 독일의 ‘코뮌’ 정신 - 코뮌을 한국에서는 흔히 공산주의와 연계해 생각한다. 하지만 코뮌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종류의 공동체적 삶을 뜻하는 말이다. 68 혁명을 전후로 독일에서는 가장 먼저 ‘코뮌 1’이 생겼는데, 일종의 성 공동체 운동이었다. 이들이 부정한 것은 무엇보다 모노가미(Monogamie, 일부일처제)였다. 이 제도야 말로 재산권을 영원히 계승시키기 위한 자본주의 사회적 전제라며,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선 재산을 공유하기에 앞서 성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선 실제로 남녀 기숙사가 따로 없고 대부분 주고 공동체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한다. 심지어 동독의 경우 샤워실도 공동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 한국이 바뀌어야 한다면…

* 한국사회의 특징 네 가지 -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저서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이다.

* 밖에서 더 평가받는 한국 민주주의 -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 대상으로 민주주의 수준을 비교 연구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라는 보고서가 2019년에 발표됐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민주주의 변화 추이를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1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저자는 사실상 1위라고 말한다. 우리 앞의 나라들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등 대부분 인구 5000만~1000만 사이의 작은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3050 클럽’ 국가들 가운데는 우리가 민주주의 1등 국가라는 얘기다.

* 광장민주주의와 일상민주주의의 괴리 - 우리는 광장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상민주주의는 낙후되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 군사주의, 병영문화 등과 깊은 연관 있다고 말한다. 특히 군사 문화의 전면적인 지배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상의 파시즘’이라고 평가한다.

* 68 세대를 대체한 한국의 86세대 - 68 혁명 열기가 한창일 때 우리는 오히려 베트남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는 등 68 혁명을 이어갈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후 86세대가 독일의 68세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금 86세대는 ‘과잉대표’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게다가 이들 역시 대학 시절 내내 군사 파시즘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파시즘을 내면화한 듯 하다고 말한다. 총체적 민주주의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사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문화 민주주의는 아직 그들의 머리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심각하게 왜곡된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 정치 - 국회에서 40세 이하 의원은 300명 가운데 단 2명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세대 대표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대의정치가 아니라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국회는 직능 대표성도 없어 교사 보다 훨씬 적은 교수 출신들이나 법률가, 언론인 출신 의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의회의 대외 기능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얘기다.

* ‘자기 착취’에 빠진 대한민국 - 지금 한국인은 대다수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자본이 주입한 논리에 따르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 안에 노예감독관이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라는 식의 왜곡된 가치관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청년 자살은 물론 세계 평균의 10배나 되는 노인 자살률 등이 이를 대변해 준다. 절망감, 즉 미래가 보이지 않는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청년들의 경우 살인적인 경쟁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정신적 질환을 일으키고, 이것이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동 우울증도 세계 최고라고 한다.

* 사회적 시장경제와 야수적 자본주의 - 사회적 시장경제란 시장경제의 활력과 효율성은 활용하되 시장경제가 몰고 오는 핵심적인 문제, 즉 실업과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사회적 시장경제주의다. 독일에서는 야수자본주의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는데, 이는 자본주의를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가 된다는 의미다. 헬무트 슈미트 사민당 총리가 즐겨 사용한 용어다. 이를 막아내는 것이 정치의 책무라는 신념을 헬무트는 갖고 있었다고 한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의회의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야수 자본주의, 즉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한국 사회가 ‘지옥’이 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 한반도 통일이 되려면

* 독일 통일은 동독에서 시작됐다 - 독일 통일과 관련에 서독이 주체가 된 흡수 통일, 병합 등의 얘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일 통일의 주체는 서독 사람들이 아니라 동독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용감한 동독 시민들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뤄낸 것이라는 얘기다. 그 시발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개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동독 사람들이 오스트리아를 경유해 서독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동독 정부가 당황해 국경 봉쇄를 헝가리에 요구하면서 얼마 후 국경이 다시 봉쇄됐지만 한번 터진 물꼬를 잡을 수 없었다.

* 통일에 천문학적 비용 들지 않는다? - 독일 통일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통일 직후인 1990년 7월 1일 화폐통합을 단행하면서 실질 환율을 무시하고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를 1대1로 통합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동독 기업들이 도산하는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독일 통일 비용은 대부분 복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복지 비용이었다고 말한다. 독일인들은 “통일이 필요하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보다 분단체제 해소가 더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공동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통일 한반도는 남한이 주도할 것이란 ‘착각’ - 통일 이후 한반도의 정치적 미래는 북한 주민이 결정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남한이 통일 후 한반도를 주도할 곳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독일도 통일 이후 독일 정치를 쥐고 흔드는 것은 놀랍게도 동독 출신 정치인들이라고 말한다. 메르켈 총리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경우 남한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거의 반반 나뉘어 있는데, 통일이 되면 2600만 북한 주민 중 대략 200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이 선택한 자가 통일 한반도를 지배할 것 분명하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을 제공할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한반도 문제를 미국 등에 맡겨선 안돼 - 한반도 문제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문제지 미국의 문제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발 더 이상 촉진자니 중개자니 운전자니 하는 말 사용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우리가 핵심 당사자인데 왜 미국 옆에서 촉진하고 중재하고 운전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런 굴종적인 태도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종속변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은 미국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는 더욱 담대하게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국인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고 미국을 상대하면서,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라고 주문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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