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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로나19 사태 2개월, 노인 관심·배려 부족

위기 때마다 ‘노인 홀대’ … 요양병원 관리부터 마스크 구매에 자영업 지원금 받기 까지

입력 2020-03-24 07:30
신문게재 2020-03-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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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대한노인병학회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91%가 한 가지 이상의 크고 작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그만큼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100세 시대’라고 해 어르신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분위기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요양병원에서 대규모 확진 판정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관리는 부실 그 자체다. 전수조사는커녕 제대로 된 일상 검사도 부실하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양보의 미덕은 간 데 없고 대리 수령도 수월치 않아 불편 투성이다. 노인 일자리 보호는커녕 있는 사업장에서도 내몰리는 판이다. ‘노인 복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때다.


◇코로나 사태를 보면 노인 인권은 없어

 

대실요양병원 4명 추가 확진…
대구 요양병원과 의료기관 곳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25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대구시 달성군 대실요양병원에서는 22일 신규 확진자 4명이 추가로 발생해 총 66명으로 늘었다. 이날 대실요양병원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1년 가까이 생활 중인 60대 중반의 김 모 씨는 “정부가 요양병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약속했지만 대구·경북 외 지역에선 남의 얘기”라며 요양병원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꼬집었다.

이곳은 환자 면회나 바깥 출입이 일체 불허되고 직원들도 출퇴근 시 온도 체크를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정작 의사와 간병인이 태부족이다. 여러 증세 환자들이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원래 치료받던 병원으로 보내는 게 거의 전부다. 감염 전문가는 더더욱 없다. 간병인들 조차 기피해 멀쩡한 노인 환자들이 제대로 돌봄 서비스도 못 받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코로나19 이후 최근 요양병원에서는 ‘노인 인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상북도 등을 중심으로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과 함께 확진자가 잇따르자 입원자는 물론 병원 관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 검사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2월과 3월에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을 전수조사 했다고 하지만 당시는 검사가 폐렴 증세 환자에 집중됐었다. 요양시설에는 폐렴 외에 바이러스에 취약한 고령자와 만성질환자가 훨씬 많다는 점을 가볍게 여긴 것이고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 공식 발표와 달리, 가장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경북 도내 요양원들 조차 아직 전원 검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원들까지 모두 검사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5~10% 정도만을 표본 검사하는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방침에 의거해 격리 치료를 하거나 표본 추출 후 진단 검사를 하는 정도다. 전문가는 물론 정부 방역 관계자들조차 “하루빨리 전수조사 및 전원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젊은 소상공인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는 느낌?

 

소상공인진흥공단 방문한 박영선 장관<YONHAP NO-5507>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를 찾아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소상공인진흥공단에 정부 정책자금 지원을 신청하러 온 70대 이 모 씨는 “그림의 떡”이라는 말로 섭섭함을 토로했다. 한 마디로, 정부 지원자금을 받는데도 젊은 자영업자들에 비해 노인 자영업자들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이런 걸 신청할 때 인터넷이든 어디든 찾아서 얼른얼른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안되고 현장에 와서도 딱히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렵게 신청이 이뤄지더라도 정작 지원금을 수령하기 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 방안을 발표할 때 마다 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더 늦어진다. 지원책에 사실상 지원금 받기는 더 어려워지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2조 원을 약간 웃돌던 당초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규모를 최근 12조 원으로 대폭 늘린 바 있다.

의정부에서 자영식당을 한다는 김 모 씨는 “처음에는 2주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선 한 달 내에 얼마나 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용도가 낮은 소상공인들을 위해 1000만 원까지 보증서 없이 대출해 주는 ‘패스트트랙’ 제도까지 정부가 도입했지만, 대부분 대출 희망액이 수천만 원 이상이라 여의치 않다. 때문에 “망하기 전에 보증서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조금 규모 있는 소상공업체들은 미리 좋은 조건으로 보증을 받아놓으려다 보니 가수요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신용 없고 백 없는 나이 많은 개인 자영업자들은 신청도 늦고 자금 수령도 늦을 수 밖에 없다.


◇ 최악의 경제난에 기존 일자리에서도 일방적 해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 속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소비시장이 죽으면서 어르신 일자리들도 빠르게 사리지고 있다. 건강한 젊은이도 과로로 쓰러져 가는 판에 택배일은 언감생심이다. 정부 재정으로 이뤄지는 노인 일자리라도 찾아보려 하지만 경쟁이 워낙 세 쉽지 않다. 코로나 탓에 바깥 출입을 자제하라는 통에 그마저도 선뜻 신청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 증상이 전혀 없는데도 경영 악화를 이유로 무급 휴가를 강요하는가 하면, 일방적인 퇴직 혹은 해고 통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금난 중소기업체는 겉으로는 유급 휴직이라면서도 실제는 자가 격리치료 기간을 무급 처리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식당이나 찜질방 등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던 노인들도 파리 날리는 영업 상황에 어쩔 수 없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영업주의 말만 믿고 기약 없이 문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11조 70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도 인다. 보건복지부 소관의 추경이 3조 6675억 원인데, 직접적인 노인 대책 이라고는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가 보수의 30%를 지역사랑상품권 등으로 수령하면 총보수의 20%에 해당하는 소비쿠폰을 추가로 지급하는 정도다. 그나마 기간은 4개월이며 전체 예산도 1281억 원 수준이다.


◇ 마스크 대란 속 어르신 배려 눈 씻고 봐도

 

출생연도 상관없이 공적 마스크 사는 날<YONHAP NO-1907>
일요일인 22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판매되는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

 

지난 21일 토요일. 평일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1934년 생 이 모 씨가 노구를 이끌고 인근 약국 뒤지기에 나섰다. 약국이 문을 여는 아침 10시에 맞춰 순진하게 집을 나섰다. 하지만 동네 약국 앞은 이미 장사진이었다. 약국 입고 시간은 여전히 불규칙했다. 어쩔 수 없이 남들처럼 약국 앞에서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 힘든 터라, 그는 결국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뒷 사람에게 부탁할 상황도 아니었다.

정부는 어느 약국에 언제 마스크가 입고되는지를 알려주는 앱을 서비스하고 있다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노인들에겐 무용지물이다. 함께 사는 식구들이 있는 경우 좀 낫지만, 독거노인이나 노인들끼리 사는 집에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어찌 어찌 얘기를 듣고 나서보면, 이미 젊은이들이 싹쓸이해 간 다음이다. 약국마다 물량이 하루 100~200개 정도씩 공급된다고 뉴스에서 들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노모를 대신해 마스크 ‘투어’에 나섰다는 경기도 일산의 박 모(52세) 씨는 “어르신들을 위해 나라가 직접 마스크를 구매해 보급해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70세 이상에 대해선 특히 그렇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마다 관련 명부는 모두 구비되어 있을 테니, 동사무소에 물량을 공급해 전달해 주거나 직접 수령토록 하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어차피 주민등록증으로 확인이 되니 중복 수령 위험도 없고, 나라에 대한 고마움도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송영두 기자 songzi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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