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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인류세'이자 '자본세'가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입력 2020-05-19 20:11
신문게재 2020-05-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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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렴한 것을 찾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저렴한 노동력, 저렴한 자원, 저렴한 에너지, 저렴한 화폐, 저렴한 물건, 저렴한 식량 등을 좇으면서 환경은 파괴되고 식민역사가 만들어지며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가 구축된다. 부단히 국경을 넘나들면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주기적으로 금융위기에 직면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그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책이다. ‘경제학의 배신’(The Value of Nothing), ‘식량전쟁’(Stuffed and Starved), ‘먹거리 반란’(Food Rebellions!) 등의 라즈 파텔(Raj Patel)과 ‘생명망 속 자본주의’(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자연, 역사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Anthropocene or Capitalocene? Nature, Histor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등의 제이슨 무어(Jason W. Moore)가 함께 꾸린 책이다.

 

경제학, 개발사회학, 역사지리학, 정치생태학의 대가들은 현재의 세상은 문명이 발생한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를 일컫는 홀로세(Holocene Epoch)도,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지구 환경체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은 인류세(Anthropocene)도 아닌 ‘자본세’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기인한 발전과 위기로 빚어낸 세상이라는 의미다.



더불어 원제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에 명시돼 있는 7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통해 현재 위기의 기원을 찾아 진단하고 처방한다.

“결혼 전에는 욕실에 물때가 끼는 법이 없었어요.” 갓 결혼한 부부는 이렇게 하소연하곤 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결혼 전의 욕실 물때는 어머니, 때때로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처리하거나 예방해 왔던 일들 중 하나였을 터다. 인류학적으로는 ‘희생’ 혹은 ‘배려’하는,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착취’ 당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의미다.

소풍 때 혹은 부유한 가정에서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고 귀했던 바나나는 현재 가장 싸고 흔한 과일이 됐다. 혹은 누구나 그런 경험들이 있다. 분명 제대로 계획을 짜 비용을 책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돌연 튀어나오는 지출들에 당황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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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텔 , 제이슨 W. 무어 , 홍기빈 (해제) 지음 | 백우진 , 이경숙 옮김(사진제공=북돋움)

책은 ‘자본주의’의 본격화를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아닌 1419년 포루투갈 선원들에 의해 발견된 섬 ‘일리야 다 마데이라’에서 시작된 설탕까지 거슬러 오른다. 


유럽 궁정에서 시작해 부자들이나 소비하던 설탕을 좀 더 많이, 싸게 생산하기 위해 식민지가 생겨났고 노동착취가 발생했으며 설탕 생산을 위한 연료로 쓰인 나무들은 몽땅 베어졌다.

 

급기야 1530년에 이르러서는 “위풍당당한 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빈 곳이 없었던” 숲의 섬이라는 뜻의 섬 마데이라 어디서도 나무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설탕은 현재 매우 싼 조미료가 됐다. 닭은 어떤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 변이를 통해 부풀려지고 무한생산되면서 저렴한 식재료가 됐다. 


‘자본주의’의 본격화를 600년 전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들은 지금의 세계를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돼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라고 정의한다. 그 생태계 속에서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서 작동해온”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저렴한’ 7가지로 인류가 봉착한 지금의 위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7가지를 저렴하게 하기 위해 더 넓은 생명망을 통제하는 총체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누군가는 희생 혹은 착취당하며 불평등의 피해자로 남는다. 지금의 여성, 유색인종, 가난, 무자비하게 파괴된 자연 등이 그 비극의 결과물들이다. 


그렇게 책은 어쩌면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한, ‘저렴함’을 추구하는 전략이 현재의 금융위기, 환경문제, 극단적 불평등 등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7개장에 나눠 담긴 ‘저렴해진’ 7가지의 역사를 읽다 보면 결국 자본주의는 인류에 의해 진화돼 현재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어려운 경제학, 지질학 용어는 배제해도 좋다. 7개 저렴한 것들이 지금에 이른 과정을 현재 가장 두드러진 위기 중 하나에 대입만 해봐도 이해는 빨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현재의 세상 역시 저렴한 7가지를 좇는 자본주의에서 기인한다.

저렴한 노동, 자연, 돈, 에너지 등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무한양산했다. 한때 불가능에 가까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 챌린지가 큰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중국산 제품은 세상을 지배했다. 중국 우한발(發) 코로나19는 그간 인류가 ‘저렴함’을 추구하면서 외면했던, 생명을 돌보기 위한 의료체계의 빈틈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렇게 돌봄도, 생명도 저렴해지며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들며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지금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든” 셈이다.

예측하지도 못했던 비용의 청구서같은 지금의 위기는 사실 늘 존재해 왔던 것들을 감추고 외면한 데서 불거진 결과다. 현재 위기의 기원, 진짜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오르면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게 저자들은 지금을 ‘자본세’라고 정의내렸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 역시 인간에 의해 진화되고 왜곡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결국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지금은 ‘인류세’이자 ‘자본세’인 셈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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