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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다만, 싹쓸이 독식에서 구하소서

입력 2020-08-06 14:42
신문게재 2020-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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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이효리, 가수 비. 한때 가요차트를 싹쓸이하던 레전드들이었다. 밈 현상과 깡 열풍을 등에 업은 비는 팬심이 다시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철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결혼 후 다소 주춤했던 이효리도 쟁반노래방 시절로 돌아가 녹슬지 않은 예능감을 되살렸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꾸린 3인조 프로젝트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음원이 다시 차트를 싹쓸이하고 있다. 

7월18일 발매 이후 줄곧 음악차트 정상을 지키는 싹쓰리의 ‘싹쓸이’는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예능 프로의 인지도를 불공정하게 이용한 재탕, 삼탕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이었다. 가요계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대중문화계를 관통하는 뉴트로(새로움(New)+복고(Retro)) 흐름을 이어가는 싹스리의 인기는 여름을 대표하는 ‘듀스’의 시즌송 ‘여름 안에서’ 리메이크로 시작해 각 멤버의 전성기 못지않은 팬덤을 회복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여름 성수기인데도 허덕이는 음원시장에 싹쓰리마저 없었다면 공멸했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안도의 목소리부터 들린다. 올해의 트로트 대세 흐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 나아가 한때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혼성그룹들이 부활하는 계기까지 마련했다. 코요태, 자자 등의 컴백은 싹쓰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전 무도 가요제를 비롯해 유재석이 관여한 음악 프로젝트처럼 신인 또는 무명 실력파의 대중적 노출도 돋보였다. 뉴트로 팀의 ‘치스비치’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미 유명한 프로듀서 박문치는 싹쓰리 열풍 덕분에 유명인의 입지를 마련했다.

하지만 모두가 환영 일색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생존조차 어려운 기획사들은 싹쓰리의 가요계 독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TV나 인기 매체에 얼굴 한번, 음악 몇초 나오기도 힘든 신인들과 달리 싹쓰리는 MBC 간판 김태호PD의 예능에서 시작해 탄탄한 인지도만으로 쉽게 데뷔해  엄청난 인기와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결성 과정, 녹음/뮤직비디오 촬영현장이 TV를 점령했으니 출발점부터 다르다. 음원시장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다. 예능 홍보의 기회를 나눠받지 못하고 그저 음원에만 목숨걸고 있는 기획사의 입지는 줄어든다. 손쉬운 싹쓸이와 함께 오늘도 반지하에서 피땀 흘리는 연습생과 그들을 밤낮 돕는 영세 기획사의 한숨은 깊어간다. 예능을 통한 유명인 프로젝트만이 오늘날의 살길이라면 신인 육성의 투자는 애초 이루어질 수 없다는 논리다. 음원 소비자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다. 독과점을 막고 약한 공급자를 보호하는 수많은 법, 정책이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예능을 통한 음원시장 접근은 이제 우리 대중음악 시스템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여름 시즌송을 되살리려는 시도 역시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서 기존 시장 나누기가 아닌, 가요 먹거리를 키웠다는 인식도 납득이 간다. 

그렇다고 예능 프로그램의 음원 진출을 법이나 정책으로 막을 수는 없다. 이는 결국 윤리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예능인들이 무분별하게 음원 수익에 몰두한다면 음원 생태계는 위협받는다. 예능을 통한 홍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도저히 답이 안보이는데 싹쓰리가 음원 수익을 기부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대형유통매장과 전통시장의 관계처럼 적정선에서 자제, 상생이 필요하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싹쓸이는 옳지 않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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