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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어쩌면 가장 창의적인 치유법…요나스 요나손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책갈피]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입력 2021-08-31 18:00
신문게재 2021-09-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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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요나스 요나손(사진=연합)

 

“복수 계획을 짜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

 

이웃과 갈등을 겪는 친구에게 복수 계획을 짜주던 스웨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복수가 지닌 창의적인 잠재력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써내려갔다. 

100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 여자’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으로 전세계를 휩쓴 베스트셀러 작가 요나스 요나손(Jonas Jonasson)의 2020년 신작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Sweet Sweet Revenge Ltd.)가 유럽 출간 1년여만에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옛날 옛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로 시작한 이야기는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마사이족 치유사 집안의 내력을 훑다 스웨덴 스톡홀롬에 사는 교활하고 위선적이며 탐욕스러운 미술품 거래인 빅토르로 넘어간다. 

 

쓰임새가 다 돼 그에게 버림받은 아내 옌뉘와 열여덟이 되는 때 빅토르가 케냐 사바나에 내다 버린 매춘부 사이에서 낳은 아들 케빈, 그들이 만난 복수대행 회사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CEO 후고 그리고 어쩌면 아돌프와는 정 반대편에 선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 이르마 스턴(Irma Stern)의 이야기까지 교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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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사진제공=열린책들)

마사이족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 집안의 이야기는 자칫 광활한 사바나를 배경으로 한 뻔하디 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될 수도 있었다. 빅토르가 스톡홀롬에서 가장 명성높은 미술갤러리 알데르헤임을 손에 넣는 과정은 불륜과 거짓, 비인간적인 술수와 음모, 비정한 부정 등으로 얼룩진 막장드라마에 버금갈 이야기다. 


비열한 빅토르에 의해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옌뉘와 케빈, 그를 양아들로 거둔 음바티안과 그들의 복수 조력자 후고의 행보는 자칫 유혈낭자 복수극이나 저급한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이다.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간결함과 시공을 초월한 인물들의 기묘한 교차, 그 특유의 풍자와 유머는 뻔하거나 무겁거나 막장으로 치달을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블랙코미디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500쪽을 훌쩍 넘기는 책은 분노와 울분 보다는 유쾌함을, 막장 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저급함 보다는 서늘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날카로움을 선사한다. 

대대적인 예술탄압을 벌인 “옛날 옛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의 주인공 히틀러, 그로 인해 움튼 표현주의 미술의 거장 이르마 스턴 그리고 인종차별, 여성 및 동성애 혐오 등이 응축돼 네오나치즘을 연상시키는 미술품 거래인 빅토르는 시대를 초월해 교차돼 엮인다. 

빅토르의 음흉한 속내를 알고 있었고 스스로 예술적 재능과 관심이 컸음에도 결혼부터 이혼까지 별 저항없이 당해주며(?) 무기력한 삶을 살던 옌뉘 그리고 어머니의 속사정도, 아버지의 비열함도, 자신이 황량한 사바나에 버려졌음도 알았지만 순응했던 케빈. 두 사람은 후고를 만나 ‘복수’를 꿈꾸면서 무기력하게 버석거리기만 하던 일상에 활력을 되찾고 스스로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 간다.  

이같은 이야기의 축들은 때때로 서술되고 교차되며 독자와 숨바꼭질을 벌인다.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론들, 광활한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 소셜미디어 발달로 난무하는 흑백논리와 포퓰리즘 등은 요나스 요나손 특유의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등장과 교차, 국적·신분·성별 등도 뛰어넘는 유쾌한 복수 열망자(?)들,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건들, 불쑥 스쳐가는 세계 역사의 순간들 등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처럼 독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는 이야기들로 요나스 요나손은 지금의 우리에게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돌프는 패배했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은 여전히 숨어서 움직이고 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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