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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지만 쓸쓸한…은막의 뒷모습

[2014 톺아보기] ① 영화계 키워드 7 : 양극화·자본 범람 그리고 영웅

입력 2014-12-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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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사진제공=CJ E&M)

 

숫자로만 따지자면 2014년 최고의 영화는 ‘명량’, 다양성 분야(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에서는 ‘비긴어게인’이다. ‘명량’은 1700만(이하 자료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비긴어게인’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쓴 작품들이다. 하지만 숫자에 담긴 속뜻은 씁쓸하다. 


12월 8일을 기준으로 2014년 개봉영화는 1033편, 상영영화는 1779편이다. 이 중 한국영화 개봉편수는 211, 상영편수는 470이다. 지난해에 비해 개봉편수(2013년 183)는 늘었고 상영편수(2013년 481)는 줄었다. 이는 한국영화가 고질병처럼 앓던 유통 쏠림 현상의 심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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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사진제공=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 Keyword 1. 양극화: 화려함 속에 감춰진 텅 빈 흥행, 알맹이 빠진 자본·유통의 양극화


1월부터 12월까지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한 ‘변호인’ ‘겨울왕국’부터 ‘인터스텔라’까지 스크린 수는 1000개 안팎이다. 7월 30일 개봉한 ‘명량’은 스크린 수 1586개, 상영회수는 15만8515회다. 관객 및 매출 대박에는 스크린 독점 영향이 적지 않았다.



11월 6일 개봉해 11월, 12월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는 ‘인터스텔라’ 역시 11월에 1410개 스크린에서 12만715회 상영됐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외향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전체 시장을 키우기보다 일부 영화가 독점한 결과”라며 “올여름 ‘명량’이 극장을 점령할 때 다양성영화들은 설 자리를 잃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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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사진제공=NEW)

 

 

◇ Keyword 2. 영웅: 영웅을 기다리는 사람들, 조용한 영웅과 요란한 영웅

2014년의 문을 연 ‘변호인’과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쓴 ‘명량’의 흥행원인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단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영웅’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조용한 영웅과 요란한 영웅”이라고 정리하고 “올 초 조용하게 다가와 흥행한 영화가 ‘변호인’이라면 세월호 참사 후 영웅 등장에 대한 염원이 절실할 때 요란하게 등장한 영웅이 ‘명량’의 이순신”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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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사진 제공=리틀빅픽쳐스)

 


◇ Keyword 3. 사회비판: 사회비판적 다큐멘터리 각광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은 고단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반증이다. 한편에서 영웅을 탄생시킬 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양산했다. 대기업 삼성에 정면도전한 ‘탐욕의 제국’, 세월호 참사 구조과정에서의 병폐를 다룬 ‘다이빙벨’, 계약직 마트 직원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카트’ 등이 개봉해 각광받았다. 영화평론가 허남웅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씁쓸한 각광”이라며 “뉴스, 신문 등 언론이 정권비판, 공정보도 등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니 역풍처럼 영화에 열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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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긴 어게인'(사진제공=판씨네마)

  


◇ Keyword 4. 아트버스터: 아트버스터의 성공, 씁쓸한 뒤안길

2014년에는 ‘아트버스터’라는 말이 유난히도 회자된 해다.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란 의미로 한국 독립영화 흥행 가능성을 제시한 ‘한공주’를 비롯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님포매니악’ 등이 이에 속한다. 예술성과 작품성, 다양성에 ‘대중성’을 덧칠한 셈이다.

하지만 아트버스터는 한국에서는 다양성영화로 분류돼 상영했지만 사실은 적지 않은 자본이 투자돼 흥행 배우들이 출연한 유명감독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다양성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존 카니 ‘비긴 어게인’, 마니아군단을 거느린 웨스 앤더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리마스터링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 최다 노미네이트된 ‘아메리칸 허슬’ 등이 그 예다. 이에 한국 다양성 영화들이 설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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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의원'(사진제공=미디어플렉스)

 


◇ Keyword 5. 사극: 사극 열풍은 계속된다

2013년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등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2014년에도 사극열풍이 거셌다. 2014년 최고 흥행작 ‘명량’을 비롯해 현빈의 군 제대 후 첫 작품 ‘역린’, 하정우·강동원의 ‘군도: 민란의 시대’, 손예진·김남일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4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석규의 ‘상의원’ 등 그야말로 열풍이다. 장르 쏠림현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흥행에도 만족할만한 성적을 냈으니 2015년 역시 적지 않은 사극이 관객몰이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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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사진제공=씨네그루 다우기술)

 

◇ Keyword 6. 투자 필터링: 투자가 작품을 범람하다, 활력 잃은 콘텐츠

“투자 필터링이 심해지면서 콘텐츠는 활력을 잃었고 창의력은 고갈되고 있다.”

2014년 영화계에 대해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투자는 어렵고 상영관 잡기란 더더욱 어렵다. 어렵게 받은 투자금을 사수하기 위해 감독들은 투자자의 의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진은 “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감독의 연출력과 개성이 사라졌다”며 리메이크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예로 들고 “감독은 없고 흥행코드로만 버무린 알맹이 빠진 작품”이라고 힐난한다. 그 부작용에 대해 허남웅은 “투자 어려움으로 신인감독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투자자 요구에 좀 더 수동적이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중량감 있는 신인감독 배출이 요원해졌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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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도'(사진제공=미디어플렉스)

 


◇ Keyword 7. 남자: 남자배우 그리고 남자영화 전성시대

여성 관객들을 겨냥한 남자배우 전성시대는 올해도 여전했다. 최민식, 하정우, 현빈, 강동원, 김남일 등 국내 남자배우는 물론 톰 크루즈, 크리스 에반스, 앤드류 가필드, 휴 잭맨, 리암 니슨 등의 영화가 여심을 사로잡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더불어 남자 콘텐츠가 유독 열풍이기도 했다. 서울극장 이광희 실장은 2014년 영화 트렌드로 “남자영화 전성시대”를 꼽는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퓨리’, ‘명량’, ‘논스톱’,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엣지 오브 투모로우’, ‘타짜-신의 손’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등 남자 콘텐츠가 박스오피스 상단을 휩쓸었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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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과 영화 '암살'의 배우들.(사진제공=케이퍼 필름)

숫자적으로는 화려했지만 속은 빈 2014년 영화계, 하지만 2015년에도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박찬욱, 최동훈 등 감독이 ‘아가씨’, ‘암살’ 등 새 작품을 제작 중이다. 

 

더불어 꾸준히 크고 작은 영화들을 준비 중인 젊은 감독들도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다양한 시도로 세상을 흔들 수 있기를, 그래서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영화시장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희망은 2015년에도 버릴 수 없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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