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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장백기'는 없다…80세 여인 사랑하는 19세 '해롤드'뿐

입력 2015-01-25 15:56

“타자소리가 꼭 빗소리 같아요. 저는 프랑스어가 너무 좋아요. '로망어'라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아요?”



이 청년의 감성은 이토록 연극적이다. 연극 ‘해롤드&모드’로 무대에 선 강하늘에게 더 이상 빡빡한 장백기는 없었다. 연극무대에 다시 섰다는 행복함에 강하늘은 극 속 해롤드 마냥 한껏 들떠 있었다.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대기하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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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롤드&모드’에 출연 중인 강하늘(사진제공=샘컴퍼니)

 

“무대 올라가기 직전의 긴장감이 좋아요. 이상하게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새삼 깨달아요. 사각형 안에 있는 것보다는 위에 있는 게 좋아요.”

연극배우였던 부모 덕에 강하늘에게 연극은 생활 같았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연습실에서, 무대 뒤에서 부모를 지켜보곤 했던 그에게 연극은 그래서 꿈이기도 했다.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등에서는 아침부터 연극을 보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요. 그 풍경이 부러웠어요. 부모님께서 연극을 하다 생계유지 때문에 그만 두신 것에 대한 분노도 있었죠.”

왜 연극을 하면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우리 연극계 발전을 위해 더 좋은 연기자와 연출자, 디자이너 등이 발굴돼야 한다는 의무감을 스스로 떠안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매해 3만명이 연극학과를 졸업하지만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그리고 그들은 강하늘의 친구이며 선후배였다. 

 

그래서 방송과 영화로 영역을 넓혔다. “뮤지컬 몇 편하더니 결국…”이라는 질타도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연극 보는 사람도 늘지 않을까, 욕을 먹으면서도 그가 사각형 위에서 안으로 들어간 이유다.

“치기어리거나 허무맹랑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우리 연극계가 활발해지면 좋겠어요. 제 지론 중 하나가 연극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거예요. 연극은 제게 필요악 같은 존재예요. 저를 못살게 굴어서, 안주하지 않게 해줘서 좋아요. 저를 계속 채찍질해서 계속 움직이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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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롤드&모드’에 출연 중인 강하늘(사진제공=샘컴퍼니)

 

공연 전날의 리허설이나 연습이 힘들어 죽을 것 같다가도 공연할 땐 좋고 커튼 콜 때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이 너무 좋다는 그는 영락없는 연극인이다. 그렇게 그는 연극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물꼬를 발견하곤 한다.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참 좋아요.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값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가 아니거든요. 대본 리딩 후에 바람을 쐬러 나가면 세상 공기가 달라진 걸 느끼곤 해요.”

그 느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무대에 선 강하늘은 매일 해롤드로 살아간다. 박정자 한 사람이 여섯 번이나 연기한 모드, 그녀를 사랑하는 여섯 번째 해롤드. 연극 시작 전 ‘19세 소년이 80살 생일을 앞둔 여인을 사랑한다’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연극의 설정은 박정자와 합을 맞추는 그의 연기를 보면서 단 몇분만에 해소됐다.

“이 작품은 저 뿐 아니라 관객들 모두가 해롤드가 되는 작품이예요. 저는 관객과 세상 사람들을 대변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려 노력했죠. ‘해롤드&모드’를 선택한 건 아주 잘한 짓이라고 나름의 칭찬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해롤드&모드’의 전신인 ‘19 그리고 80’을 단 한번도 관람하지 않았듯 강하늘은 출연을 결정한 작품을 보지 않는다.

“자꾸 닮아가거나 혹은 비교될까봐 억지로 다르게 하려는 게 싫어요. 저는 해롤드의 변화를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강하늘만의 해롤드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는 최근 영화 ‘헤드윅’을 보며 언젠가 꼭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관람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 드라마 ‘펀치’ 특별출연, 영화 ‘쎄시봉’ 출연 등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자신의 좌우명 혹은 연기론인 ‘배우고 배우고 배워서 또 배우면 배우가 될 수 있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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