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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빈센트 반 고흐'부터 '라흐마니노프'까지, 창작콘텐츠의 寶庫 HJ컬쳐 한승원 대표

[브릿지초대석]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마리아 마리아’, ‘파리넬리’, ‘리틀잭’, ‘라흐마니노프’ 올해만 7편
'문화네' 마니아들,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직원들, 창작진들의 열정으로 4년만에 지금에 이르러
일본의 극단 사계, '퀴담'의 태양의 서커스 꿈꾸며 전용관, 브로드웨이식 오픈런, 가능성 넘치는 전속배우 꿈꿔

입력 2016-12-01 07:00
신문게재 2016-12-01 12면

HJ컬쳐_한승원대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계속 달린 것 같아요.”



융복합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1% 천재 모차르트에 가려진 99%의 보통 사람 ‘살리에르’, 새롭게 꾸린 ‘마리아 마리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티프로 한 밴드 뮤지컬 ‘리틀잭’, 러시아 천재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상담의 달 박사의 숨겨진 이야기 ‘라흐마니노프’.

읊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2016년 마지막 작품인 ‘라흐마니노프’가 끝난 8월 25일까지 7편을 무대에 올린 HJ컬쳐(이하 HJ) 한승원 대표는 벌써 4년째 이런 한해를 보내왔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던 한 대표는 ‘라흐마니노프’를 끝내고 휴지기를 공식 발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龍)에서 일하다 공연제작사를 창립한 건 2012년 8월의 일, 시작하는 해부터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로 라인업을 꾸려 무대에 올렸다. ‘열일’(열심히 일하는) 배우, ‘열일’ 연출에 이어 ‘열일’ 제작사의 탄생이었다.


◇2016년에만 7편, 벌써 4년째 열일 중!

HJ컬처  한승원대표 인터뷰
HJ컬쳐 한승원 대표.(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말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창작진들과 수다를 떨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키곤 해요. 그러다 ‘괜찮다 우리 해보자’ 하는 거죠. 사업을 시작하면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어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다 보니 바쁜 4년을 보냈죠. 제작자들은 종이 한장 차이로 사기꾼으로 몰리곤 해요. 그런 선입견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어요.”

MC를 꿈꿀 정도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한 대표는 자신의 “성격탓”과 “창작진들의 기대치”를 ‘열일’ 이유로 꼽았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한 대표의 성격, 창작진들·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작품을 찾아보고 환호해주는 관객들 그리고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직원들의 기대치가 HJ를 성장시킨 셈이다.

전용극장, 천몇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쟁쟁한 전속배우 등으로 무장하고 뮤지컬 ‘위키드’, ‘라이온킹’, ‘캣츠’, ‘팬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과 크고 작은 연극들로 라인업된 일본의 극단 사계나 ‘퀴담’의 태양의 서커스 등처럼 작품으로 승부하며 브랜드가치를 키워가는 제작사를 꿈꾸는 한 대표는 창업과 동시에 창작 콘텐츠로 승부수를 던졌다.

“라이선스 작품으로는 기존 컴퍼니(제작사)와 경쟁을 할 수도 없었고 돈도 많지 않았어요. 라인업도 거의 없었죠. 틈새를 공략할 나름의 모델이 필요했어요. 다양한 작품이 있어야 배우들을 뽑을 수 있으니까 맨땅의 헤딩이지만 창작을 하자 했죠.”

그렇게 창작물로 틈새를 파고든 한 대표는 1년의 준비 단계에서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세편을 동시 개발해 라인업으로 꾸렸다. 동시에 뮤지컬 ‘셜록 홈즈’, ‘She Loves Me’ 등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했고 배우 지망생들을 발굴·트레이닝하는 W액팅스쿨, 콘텐츠 개발 및 유통, 해외 수출 등을 위한 문화콘텐츠 연구소를 출범했다.


◇숨고르기, “잠깐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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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의 창작 뮤지컬 및 연극들.(사진제공=HJ컬쳐)

 

“막연하게 잘 될 거라는 확신만 있었던 것 같아요.”

말과 약속을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원금을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말 뿐인 투자, 빠르게 스타시스템으로 전환되며 상승한 제작비, 배우들의 스케줄 조율, 창작물의 질 문제, 앙상블 배우 및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 등 기초체력이 빈약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한국의 공연산업 테두리 안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굴하고 올리는 일은 모험에 가깝다.

“자금이나 경영 마인드가 있었다면 그때처럼 무모하게는 못했을 것 같아요. 작품이 흥행 안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등을 생각할 머리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거든요. 저는 성공 사례보다는 배드 케이스를 분석하는 편이에요. 일단 작품을 올리고 보자 했죠. 첫 작품인 ‘빈센트 반 고흐’가 반응이 별로 안좋을 때도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올 상반기를 내달리다 깨달은 사실은 저한테 경영마인드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작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잖아요. 그 사실을 4년이나 지난 이제야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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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의 첫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일본에 수출돼 공연됐다.(사진제공=HJ컬쳐)

그래서 2016년이 4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한 대표는 숨고르기를 택했다.

“4년쯤 지나니 저희도 몰랐던 전통? 이미지? 같은 게 생겼더라고요. 자주 오는 관객들을 기억해주고 소통하고 도장을 찍어주고 뭐 하나를 주고받을 때의 뉘앙스가 작아 보이지만 엄청 중요해졌거든요. 새 직원들에게 그 전통을 이어가길 끊임없이 강요하고 주입하고…그들에게도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걸 못했죠.”

직원이 들고 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한 대표는 그제야 정말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회사 내 구성원으로는 문제가 없던 사람도 경험이 없다보니 브랜드와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크고 작은 문제들도 생겨났다.

“이러다 회사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할 정도였어요. 이대로 가다간 올해는 어떻게 넘어가겠지만 이후 연속성에 문제가 있겠다 싶었죠.”

휴지기가 시작되면서 그 깨달음은 더욱 복잡다단해졌다. 재무재표도 볼 줄 몰라 한동안을 헤맸고 4년치의 손익을 분석하다 작품을 올릴수록 손해니 자본 안배와 공연 스케줄을 잘 짜야 한다던 선배들의 조언을 새삼 상기하기도 했다. 혼자 바쁘게 동분서주하다보니 직원들은 부모 잃은 아이들처럼 고생만 하다 번아웃 상태에 빠져 버렸다.


◇깨달음의 연속,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창작의 고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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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 한승원 대표.(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직원들과의 소통방식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희 직원들이 많이 나갔거든요. 누가 저를 소개하면서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는 분’이라고 해요. 이 바닥에는 저 같은 사람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에 미치지 않고 어설프게 와서는 희생만 당하고 고생만 하다 떨려나기 일쑤거든요. 연봉도 적고 만날 야근이고…너무 안타깝잖아요.”

빨리 넘어지든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더 엄격하게 가르치고 끝까지 밀어붙이곤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절벽으로 던져 놓고 올라오는 자식만 인정하는 것마냥. 그 생각이 바뀐 건 올해 상반기 라인업이 무리하게 많아지면서다. 라인업도 많아진 상태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일본에 수출돼 공연됐고 ‘리틀잭’과 ‘K-컬처쇼’ 중국 진출이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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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의 ‘리틀잭’은 중국 수출을 논의 중이다.(사진제공=HJ컬쳐)

이전까지 “애들이 못하면 내가 하면 되지” 했지만 작품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순간이 늘어갔다. 실수는 잦아지고 프로그램북 이미지 무단도용 사고까지 터졌다.

 

작품 제작 기간 동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하고 정식공연은 물론 리딩공연(본 공연 전 대본과 배우 몇 명만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공연)만 해도 뼈마디가 아플 정도로 작품제작에서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한 대표의 열정이 곧 직원들에겐 부담이자 상처가 되는 일들이 늘어갔다.

“사람이잖아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른데 저도 모르는 새 제가 생각하고 걸어온 길을 강요하고 있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례하고 서툴렀던 것 같아요. 소통이라는 게 제가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생각할 수 있는 언어로 얘기해야하는 거잖아요. 제가 그러지 못한다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죠.”

게다가 4년 동안 꾸준히 HJ의 공연을 사랑해준 관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부담감은 더욱 커져갔다.

“막 시작해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안그랬는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힘들어요. 각 공연의 첫 무대가 제일 공포스럽죠.”

그 공포의 절정은 ‘라흐마니노프’였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상황에 첫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본공연까지 남은 3시간을 안절부절 못했단다. 숨이 막혀 이리저리 떠돌다 혼자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도 또 다른 공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한 대표는 못 말릴 열정의 소유자다.

“진짜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뭔지 어렴풋이나마 알겠어요. 변태적인지만 너무 고통스러운데 또 반응이 좋으면 행복하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그래요. 절로 ‘라흐마니노프’는 됐으니 이제 다음 아이템! 이렇게 되죠.”


◇이런 관객 또 없어, ‘문화네’ 마니아와 직원들에 무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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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 한승원 대표.(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어요. 한 템포 쉬면서 돌아보니까 엄청 높고 험준한 산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걸어온 것 같더라고요. 걸을 땐 몰랐는데 돌아보니 너무 두려웠어요. 더 공포스러운 건 앞을 보니 더 얇은 밧줄과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제 어떻게 내딛지 싶고.”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갈 용기를 가지게 되는 건 ‘문화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HJ마니아들과 직원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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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살리에르'.(사진제공=HJ컬쳐)
“약속이 중요하다 보니 직원들과 회사의 미래나 비전 공유 등을 잘 안했어요. 허튼소리 했다가 기대치가 무너지면 실망감도 크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뭘 하는지, 왜 해야하는지, 우리의 목표는 뭔지를 구성원과는 공유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다 알겠지 싶었는데 말을 안하면 모른다는 걸 이제야 겨우 알았거든요. 지금 당장 대우나 처우가 확 달라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라도 좀 따뜻하게 했어야하는데….”

만나면 일 얘기나 했지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자책하고 자기개발에 열심인지를 11월 첫주에 다녀온 워크샵에서야 알았단다. 그렇게 그는 ‘말(로 하는) 당근’의 위력을 절실히도 깨달았다.

“금전적으로 풍족한 건 아니지만 HJ는 누구 하나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모두가 만든 회사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되거든요. 당연히 직원들 덕분에 쉽지 않은 일을 한 거고 지금이 있는 건데 말이죠.”

그리고 그들에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객들이 있다. 그 대단하다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도 없는 애정어리고 정성 넘치는 관객 리뷰들이 넘쳐난다. 그들을 한 대표는 ‘배운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요. 저는 조명 어때, 음향 어때 이렇게 3줄 쓰면 끝나요. 본인들은 비록 피폐해져도 저나 우리 창작진들보다 더 우리 공연을, 자신보다 더 사랑해주시죠. 그 마음을 어떻게 소비자라고 치부해요. 관객은 공연의 주체고 완성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관객들에 너무 좌지우지된다거나 너무 눈치를 보는 건 아니냐고 조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대표에게 관객은 “최고의 파트너”이며 “공연의 핵심주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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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대표가 보석같은 팬들의 마음을 깨닫게 한 연극 ‘만추’.(사진제공=HJ컬쳐)

그 역시 영화 ‘만추’를 만나 팬이 되기 전까지는 관객들의 리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번 본 영화를 절대 다시 보지 않는 한 대표를 수도 없이 영화관으로 불러들인 ‘만추’에 빠져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까지 올리면서 깨달은 그들의 마음은 보물과도 같았다.


“저는 눈치를 본 적은 없어요. 그 마음을 존중하는 거죠. 관객들은 어김없이 우리가 고민했지만 풀지 못했거나 석연치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고 계세요.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면 공연이 귀신같이 좋아지죠. 세상에 이런 관객은 어디에도 없어요. 관객들은 한국 공연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죠.”

그래서 가장 무서운 말도 “변했어”라는 평가다. 그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한 대표도, 문화네 창작진과 직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뛰고 또 뛰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보답은 그것뿐이거든요. 매 작품 온힘을 다 하다 보니 하면 할수록 힘들어요. 한순간 포기하고 싶기도 하죠. 지금 있는 작품만 올리는 게 수익이나 회사경영 면에서는 더 안정적이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을 생각하면 또 그럴 수가 없어요. 그 유혹을 이겨내는 건 오롯이 저희 몫이죠.”


◇문화네의 생존전략, 마지막인 것처럼 절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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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 한승원 대표.(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희는 늘 절박하게 임해요.”

‘절박하다’는 표현에 대해 “스태프나 배우들이 모자라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절박하지 않고 새로운 게 만들어질까요?”라고 반문한다. HJ는 공연계에서 당연시되는 투자도 없이 거의 모든 작품이 자체제작이다. 현재 공연계의 투자는 무조건 원금상환이기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을 때의 손해는 고스란히 제작사의 몫으로 남는다. 그렇게 빚이 쌓이고 쌓이면서 공연 하루 전날 취소된 ‘록키’ 등의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투자는 주고받는 거지 일방적으로 도와주세요가 아니에요. 지금 공연계 투자는 후자거든요. 미래는 문화가 먹여 살리는 사회가 될 거예요. 그걸 투자자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요.”

이에 HJ는 문화완성보증제도(콘텐츠 제작에 대해 제작자와 투자자가 약정한 기간과 예산 내에서 작품 완성을 보증하는 제도)를 활용한 대출이나 예매처 선결제 등으로 제작비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창작인데다 거물급 스타도 안쓰니 절박하게 임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 없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연할 때는 매일 새벽 3시까지 회의를 하고 또 하죠. 스태프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제가 작품을 만드는 한은 계속 그렇게 할 거예요. 그 마음을 관객분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또 달릴 힘을 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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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넬리’.(사진제공=HJ컬쳐)
관객 뿐 아니라 4년째 HJ와 함께 하며 ‘음신’으로 찬양받는 김주한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알아주는 마음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작품에서 느슨해져버려요. 모든 작품을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열심히 해도 작품이 잘 안나오는데 창작에 적당히는 없죠. 슬렁슬렁하면 감을 잃어버릴 것 같아요. 열심히 했는데 안되면 제 선택이 틀렸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열심히 안했는데 잘 안되면 두번 실수를 하게 돼요. 다음번에 열심히 했는데도 안돼요. 그건 원래 안되는 공연이었던 거죠. 열심히 안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알아주는 관객을 가진 제작사에게 절실하게 창작공연을 만드는 것만한 생존전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한 대표는 지방도시와 해외시장을 주목한다.

“지방도시가 너무 죽어 있어요. 아까울 정도죠. 저희 작품의 라이선스를 사가면 수익률도 높아지고 지역 극단도 살리고 배우도 발굴하고…계속 얘기하는데 아직은 잘 안먹혀요. 하지만 지방 문화 및 수익활동 활성화는 물론 저희의 작품 및 수익을 안정화할 수 있으니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창작물은 해외진출이 필수적이죠. 다행히 조금씩이라도 결실이 있어요.”

그렇게 절박하게 4년을 내달린 HJ는 2017년 5주년을 맞는다. 다양한 이벤트와 더불어 2017년을 이후 5년을 위한 도약기로 삼는다는 게 한 대표의 계획이다.


◇전용극장, 오픈런, 극단 시스템 운영 등 문화네 2017년은 미래를 위한 도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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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시작하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사진제공=HJ컬쳐)

“저는 여전히 콘텐츠의 힘을 믿어요. 좋은 작품은 언제나 경쟁력이죠. 내년에는 ‘라흐마니노프’를 시작으로 기존 작품들을 안정화하면서 2018년을 위한 신작 개발을 더 하는 1년으로 삼을 거예요. 회사 초창기처럼요. 그리고 2018-2019년 시즌에는 300~400석 정도의 전용관을 확보하려고 해요. 그게 저희 나름대로의 모델이죠. 저는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연극하는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거예요. 1년에 9개 작품을 포진하고 전속배우들에게 주급제를 실시하며 그들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를 꾸준히 넓혀가려고 해요. 우리 배우가 스타가 되고 작품이 꾸준히 올라갈 수 있게요.”


이에 HJ는 브로드웨이의 오픈런(폐막일을 확정하지 않고 하는 공연) 편성 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잘돼도 정해진 날짜에 폐막해야하고 잘 안되도 그 날짜까지 공연을 해야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타파하고자 한다.

“저희(제작사)가 6개월치 제작비를 들였다고 관객들에게도 그만큼의 기간을 강요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100명의 팬이 있으면 그만큼만 공급해야죠. 그래야 작품의 연속성이 담보되고 의미없이 사라져 버리는 공연들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했던 작품들은 그간의 데이터가 있으니 공연일수를 미리 잡으면 돼요. 하지만 창작은 감을 잡을 수 없으니 3주만 올렸다가 유동적으로 편성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극장 대관 역시 정액 전액 선결제가 아닌 투자 개념의 ‘러닝 개런티’ 등으로의 전환을 설득 중이다. 중소극장 전략은 가닥이 잡혔지만 대극장은 여전히 고민거리로 남았다.

 

중극장이나 대극장이나 무대세트 등 별 차이가 없는데 대극장이라는 이유만으로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관람료를 받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에 한창이다. 좋은 자리 200여석을 빼고는 비곤 하는 공연들을 보다 다양한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형평성을 담보하면서 가격책정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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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교화를 꾀할 ‘K-컬처쇼’.(사진제공=HJ컬쳐)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분야가 절실해야 해요. 제작사는 물론 극장도, 스타급 배우들도 모두가 리스크를 공유하고 절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공연계 발전은 어려울 거예요. 계속 어렵다고만 할 게 아니라 해외, 지방시장을 계속 두드리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죠.”


2017년은 4개 정도의 기존 작품을 라인업해 두고 ‘K-컬처쇼’를 정교화하면서 극단 시스템도 운영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창작물을 바로 정식 무대에 올리기보다 워크샵이든 쇼케이스든 인큐베이터가 되는 극단을 활성화하고 반응이 괜찮은 작품들을 다듬어 본 무대에 올리는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자유공모제로 6, 7월쯤 서너편 정도를 올리려고 준비 중이에요. 그 동안은 이 작품이 아니면 여유가 없다보니 강박에 시달렸어요. 창작진들이 가진 더 좋은 시도를 제가 못알아보거나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게 늘 미안했죠. 더 좋은 걸 제가 재단해 버려서 관객들을 못만나기도 하니까요. 극단 시스템으로 가면 좀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양한 의견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들을 올릴 수 있는 자생적 극단 시스템, 관객층 확산을 위한 노력, 기업과의 제휴 등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겁니다.”


◇지속가능한, 기본에 충실한 글로벌 문화콘텐츠 기업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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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컬쳐 한승원 대표.(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는 HJ를 공연제작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글로벌 문화콘텐츠 회사죠. 연극, 뮤지컬로 출발했지만 기술의 발전, 관객의 변화 등에 발맞춰 성장하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돈을 잘 벌기 보다는 우리 창작품들이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HJ의 목표에 이은 한 대표 개인의 꿈은 한결같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창립당시 10개년 계획을 얘기했을 때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기도 했고 고가에 작품을 사겠다는 유혹도 없지 않았다.

“저도 사실 못믿을 정도로 빨리 왔어요. 직원들의 고생과 관객들의 사랑이 있어서 가능했죠. 직원들의 희생으로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어요. 그게 너무 고맙고 그럼에도 가장 큰 수혜자는 저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10개년 계획에 맞춰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직원과의 약속, 관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대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일을 도모해 나간다. 전용극장을 확보하겠다 약속을 하고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들겠다 스스로에게도 약속한다.

“저는 저를 너무 잘알아요. 저는 똑똑하지도 훌륭하지도 준비성이 철저하지도 않아요. 트렌디한 사람도 아니죠. 나태해지지 않도록 자꾸 훈련하고 단련시켜야 해요.”

혼신을 다해 완성시킨 창작 콘텐츠. 결국 본질에 충실한 작품이 HJ와 한 대표가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힘이다.

“제작사가 작품을 잘 만드는 건 너무 당연해요. 그 당연한 기본이 아닌 존재 이유를 찾고 있어요. HJ의 존재가치는 1등을 하는 게 아니에요.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서 관객이 행복해하면 그게 자양분이 되는 회사죠. 그 자양분으로 우리가 행복하면 그게 또 HJ의 존재가치같아요. 우리가 튼튼해질수록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죠. 5주년 기념 이벤트로 대본집, 의상집, 악보집, OST 등을 기획 중인데 좋아하실까가 고민이에요. 5주년 기념 공연을 기획 중인데 너무 커도 안되지만 너무 작아도 안되고….”

5주년 창립 이벤트 고민마저도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한 대표와 HJ는 4개월 남짓의 휴지기에서 깨어나 또 다시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약속을 중시하는 한승원 대표의 약속 이행을 위한 ‘열일’ 라이프 역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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