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人더컬처] 그때 그 시절 그리고 지금의 나,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주민진 “연기하는 맛, 술맛 다시 떠올렸죠!”

[人더컬처]

입력 2016-12-09 16:58

주민진_주민진_ㅐㅐㅐ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신기하게 자꾸 입게 되네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셋의 배우 주민진은 스스로도 궁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훈(박동욱·정순원), 형석(김호진·김선호), 동우(이강우·주민진), 명구(송광일·이휘종) 네 친구의 학창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이하 보오밀)에서 주민진은 의사로 성장한 동우로 출연하며 교복과 의사 가운을 번갈아 선보이고 있다.  


연극 ‘배니싱’, ‘큐’(Q)로 연달아 악한 혹은 어두운 연기를 선보이더니 ‘베어더뮤지컬’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교복을 입었다.



“사실 작년까지 별 생각 없었거든요. ‘베어더뮤지컬’을 하고 나서부터 계속 교복을 입어도 되나 했는데…존경해 마지않는 진선규 선배님께서 교복을 입으셨기 때문에 형님 나이대까지는 한번 입어볼까 고민 중입니다.”

불혹의 진선규는 지난해 연극 ‘뜨거운 여름’에서 첫사랑의 흔적과 꿈의 열정을 추억하는 연극배우 재희로 분하며 교복을 입었다.

“의상이 사람을 만든다고…교복을 입으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의사 가운을 입으면 저도 모르게 조심하게 되는데 교복을 입으면 행동도 걸음걸이도 말투도 자유로워져요. 뭐든 다 해도 될 것 같거든요.”


◇‘보오밀’로 술도 수다도 늘었죠  

 

주민진_주민진014_ppp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의상 뿐 아니라 주민진이 연기하는 동우의 성격이나 상황 역시 극과 극을 오간다. 반항기로 충만(?)해 욕설과 술병을 입에 달고 사는 학창시절과 현실적인 의사인 현재를 시도 때도 오가는 동우에 대해 주민진은 “연기하는 맛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옷 하나로 학생과 어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교복으로 스스로를 착각시키는 거죠. 변태적일 수도 있는데 연기하는 쾌감이랄까…그런 게 있어요.”

‘보오밀’은 교복 재킷을 입고 벗는 그 짧은 순간으로 16년의 세월을 표현해야하는 극이다. 외양 뿐 아니라 감정 역시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오히려 감사한 게 어린시절의 동우는 거의 술에 취해 있어요. 대표적인 신들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여서 연기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을 그리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극 ‘보오밀’로 주민진 역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보통 10시면 연습이 끝나는데 남아서 새벽 1, 2시까지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사실 상업배우로서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작품이 좋아서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열정이 전염되고…정말 뜨거웠던 연습실이었어요. 진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그때는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좋다고 하잖아요.”

그 역시 ‘보오밀’의 주인공들처럼 친구들과 꽤 요란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스무살이 넘어가면서는 술도 향응(?)도 줄었었다. 하지만 ‘보오밀’을 만나면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 마시던 술이 늘었고 수다도 늘었다.

“연습 과정부터 술을 많이 마셨어요. 공연 얘기할 때 보통은 카카오톡으로 얘기하곤 했는데 ‘보오밀’은 끝나면 모여서 자꾸 술을 찾게 돼요.”


◇이것저것(?)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주민진, 안무가가 되다?!
 

주민진_주민진005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제재가 별로 없으셨어요. 엄마께서 아예 어렸을 때 다 해보면 어른 돼서 정신 차리지 않겠니 하셨는데…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으셨나 싶을 정도죠.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열심히 외박을 해본다든가 음주, 가무에 친구들이랑 싸움도 하러다니고…추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죠. 대신 공부할 시간이 없었죠.”

일찌감치 이것저것(?) 다 해본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는 배우가 됐고 ‘보오밀’에선 안무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안무라고 하긴 너무 거창하고…오프닝을 짜면서 연출님께 요런 그림이면 재밌지 않을까요 말씀드렸더니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작은 동작으로 얘네가 얼마나 친한지, 뭘 하고 있는지, 관계나 어떤 사이인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안무에 배우들이 좋은 아이디어들을 보태 만들어진 것이 오프닝과 ‘런 투 유’ 신이다.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여신님이 보고 계셔’, ‘비스트보이즈’ 등에서도 움직임이 있는 신들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는 그는 “크게 뭐는 없다”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배니싱’, ‘큐’ 그리고 ‘보오밀’까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주민진_주민진008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보오밀’의 동우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칫 악역으로 비춰질지도 몰랐다. 세월이 흘러 가장 많이 변한 인물이기도 하다.

“자기가 원하는 선, 정의를 따라가다 보면 남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하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물어보면 나름의 합당한 이유들이 있거든요. ‘베어더뮤지컬’의 맷이나 ‘큐’의 PD, 동우까지 최근작들이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나쁜 사람이 없구나 싶어요.” 

 

‘보오밀’을 하면서 더 자주 만나게 된 동네 소꿉친구들끼리도 늘 “넌 왜 그러고 사니”로 시작해 싸움으로 번지는 일들이 잦기도 했단다. 

 

평범한 직장인을 비롯해 수영강사, 중고차 딜러, 무속인 등 직업도 다양한 동네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다. 그는 스스로를 ‘현실과 현실이 아닌 세계에 한발씩을 딛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주민진_주민진007_ppp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가만히 보면 자기는 맞다는 믿음 때문에 싸우게 되더라고요. 누구나 자신이 믿는 진실이 있고 그걸 따르다 보면 부딪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 얘기를 열심히 듣다보면 친구들이,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 변해갈 수도 있구나 싶어요. 그리고 제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닫곤 하죠.”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의 주인공처럼 얘기하던 친구들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변한 걸 보면서 주민진은 동우를 생각했다.

“동우가 친구들과 저 같은 교류가 없이 지냈다면 그 괴리가 크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느낀 걸 동우한테 담고 싶었어요.”

이에 그는 명우나 형석이한테 관심을 못가진 채로 16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동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16년이라는 세월이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이 없다보니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건 태도였어요. 16년을 흘려보내면서 어떤 태도를 갖게 됐을까,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는 어떻게 발현될까 등의 고민을 많이 했죠.”

그에게도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다. ‘보오밀’을 접하면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먼저 세상을 떠난 그 친구를 떠올렸다.

“정말 신기한 게 매년 기일을 챙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못챙기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챙기고 있는 친구랑 ’우리가 나쁜 건가’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다들 지금 순간에도 너무 살아남기 힘들잖아요. 동우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지 않으려고 방어벽을 치면서 (그 당시에) 할 수밖에 없던 선택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가장 큰 키워드, “나는 지금 좋다”

 

주민진_주민진012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지훈이가 깨어났을 때도 분명 금전적으로나 명예적인 부분을 챙기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이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정말 좋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형석이한테 그 마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 서럽고…그런 동우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동우한테 연민이 느껴지면서 동우를 연기할 수 있었죠.”

지훈을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한 박동우 작가의 대본에서 주민진이 꼽은 가장 큰 키워드는 후반부 동우의 “나는 지금 좋다”라는 대사였다.

“깨어난 지훈을 통해 새로운 논문을 완성하는 것, 오래 잠들었던 친구가 깨어났고 그로 인해 소원했던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지금의 뭐가 좋은 걸까 처음엔 헷갈렸죠.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동우에 대해 고민하면서 오래 잠들었던 친구가 깨어났는데 그걸로 뭔가 성과도 낼 수 있다는 게 동우의 순수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해되기 시작했죠.”


◇마지막 주에야 사라지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 “100명의 관객은 곧 100명의 인생”  

 

주민진_주민진010_ppp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사실 끌리지 않았어요. 완성 대본이 아니다 보니 구멍이 너무 많았거든요. 실낱같은 희망은 팀 안에 믿는 배우들이 있었다는 거였어요. 같이 작업을 했을 때 제대로 파고들어가 잘 만들어낼 배우들이거든요.”  

그가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오롯이 그 배우들과 스태프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재연 프로그램인 ‘이야기 속으로’로 배우의 길로 들어선 주민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배우다. 

 

연습기간 중 4분의 3이 지나서야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했고 어느 작품이든 흡족한 마음으로 공연 자체를 즐기는 시점은 공연 마지막 주뿐이다.

“저는 공연 전날까지도 계속 의심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왜냐면 우리가 좋다고 관객들에게도 좋게 보여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믿는 순간 망가지는 걸 많이 경험하기도 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피곤한 스타일인데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으로서 끝까지 의심을 하려고 노력하죠.”

그렇게 그는 계속 동우가 왜 그랬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분명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무대에 올랐지만 내려와서는 또 다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보통 그 의심이 공연 마지막 주에야 끝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주에야 즐길 수 있죠. 워크샵이나 배우집단이 노는 개념으로 공짜로 보여드리는 작품이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관객들은 돈을 들여오시는 분들이잖아요. 저에게 돈은 다른 의미인 게 시간이거든요. 그분들이 시간을 들여 직장을 다니시고 자신들의 인생을 돈과 바꿔서 저희를 보러 오시는 거잖아요. 인생이 오는 거죠. 100명의 관객이면 100명의 인생이 오는 거잖아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무대에 서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표현했다. “무대에 오르는 게 괴로워야 맞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데뷔작인 뮤지컬 ‘하루’를 함께 했던 오만석이 버릇처럼 되뇌던 “매일 외줄을 타는 기분”을 이해하게도 됐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배우라는 사실에 취해서 제가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9년 전만 해도 누군가의 앞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인정욕구’가 앞섰죠. 어느 순간 깨보니 제가 그 욕구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걸 깨닫고부터는 책임감을 좀더 앞세우려고 노력 중인데…잘 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늘 처음 연기하는 사람처럼, 변화는 나의 힘!

주민진_주민진004_ppp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동우 역의 주민진.(사진=허미선 기자)
“따로 적어놓는 프로필 같은 게 있거든요. 다작이나 겹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작품이 꽤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 작품을 할 때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들이 다 생각이 나거든요. 다행히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어요. 안변하면 망한 거 같아요. 사실 우리는 모두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제의 연기와 오늘의 연기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잖아요. 저도 모르게 변해있지 않으면 전 망한 거예요. 그만 두는 게 맞죠.”  

현재 창작산실 리딩공연부터 함께 했던 뮤지컬 ‘레드북’ 연습을 앞두고 있는 주민진은 “배우가 대본을 어떻게 대하고 연습실에서 어떻게 임하는지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연기론을 전하기도 했다.

“제가 연기를 못해도 작업하는 태도가 좋으면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실낱같은 희망으로 배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올모스트메인’, ‘베어더뮤지컬’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그만 둘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해서 힘들었거든요.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이 안보이고 자꾸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고….”

이 같은 고민에 민준호 연출이 전한 “새로 시작해야지. 연기를 처음하는 사람처럼. 너의 경력이 곧 너의 실력은 아니야”라는 조언에 그는 다시 배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오늘 연기를 처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료를 찾고 대본을 분석하고…너무 재밌더라고요. 지금도 단어 선택을 위해 사전을 펴신다는 (오)만석이 형이나 여전히 연기 스터디를 하고 계신 진선규 형 등 너무 많은 선배들이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시거든요. 멈추는 순간 망하는 거예요. 배우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거죠. 배우도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에 대해 꾸준히 탐구한 고흐처럼 인간을 탐구하는 배우도 그런 것 같아요.”


이에 그는 2017년을 스스로를 다지는 해로 삼을 계획을 세웠다. 연기 공부를 빙자한 사람 공부로 좋은 40대를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고전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알 파치노의 ‘뉴욕 광시곡’(1996년)을 다시 봤어요. ‘리처드 3세’라는 셰익스피어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캐릭터와 극 연구를 위해 옥스퍼드대학의 학자를 찾아가고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하고…그 열정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 나이에는 감히 셰익스피어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일반적으로 연극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그는 ‘감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연극열전의 ‘햄릿 더 플레이’를 보면서 “내년엔 꼭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꿈이 생기기도 했다.

“햄릿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왜 저렇게 변했는지 여러 가지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요. 정반대의 성격들이 왜 나올 수밖에 없는지 감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를 먹어도 계속 변하는 배우, 계속 과정에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주민진은 원래 꿈이었던 '연극배우'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