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B사이드] 이창엽의 파란만장 데뷔기 그리고 친절한 ‘베헤모스’ 선배들

입력 2017-02-24 17:00

연극배우 이창엽2
연극 ‘베헤모스’ 재벌2세 한태석의 이창엽.(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울산과 서울을 매일 오갔어요!”



뮤지컬 ‘마마돈크라이’ ‘잃어버린 얼굴 1895’와 연극 ‘베헤모스’(4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까지 단 세 작품에 출연한 이창엽의 20대는 파란만장했다.

열일곱, 봉사활동을 갔다 처음 접한 청소년연극에 빠져버렸다. 어린시절부터 카이스트에서 영재교육을 받으며 컴퓨터 전문가를 꿈꿨고 울산과학기술대학교(유니스트)에 입학해 촉망받는 예비IT경영학도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대학 입학 전이던 열아홉 겨울에는 이윤택 연출의 연희단거리패에서 3개월 동안 워크샵을 하기도 했다.



◇‘연기’에 뜻을 품고 서울로!
 

연극배우 이창엽19
연극 ‘베헤모스’ 재벌2세 한태석의 이창엽.(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오디션에서 덜덜 떨면서 대본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죠. 떨어졌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망쳐 나와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합격 전화를 받았어요. (연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인생을 배웠던 것 같아요.”

연희단거리패 워크샵 동안 빨래도 밥도 늘었고 정리정돈의 달인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더불어 진행했던 연기 워크샵으로 가능성과 재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김소희 선생님이랑 워크샵을 하는데 두명씩 짝을 지어 예, 아니오를 주고받는 연기를 했어요. 그렇게 주고받다가 혼자 감정이 북받쳐서 화를 냈다가 울고불고 하면서 끝이 났어요. 선생님이 저를 가리키면서 ‘너는 연기하겠다’는 코멘트를 주셨죠.”

마냥 연기가 좋아졌다. 그렇게 워크샵을 끝낸 마지막 날, 대학을 다니기 위해 울산으로 가야했던 이창엽은 이윤택 연출 앞에 무릎을 꿇고 “연기가 하고 싶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때 이윤택 선생님께서 진짜 네가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오라고 해주셨어요. 평범하고 소소하게 취미로 연극을 하려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진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죠. 민망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고….”

그 충격은 대단하기도 했다. 한 학기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TV와 영화만 봤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문불출하던 그는 무작정 서울행 KTX에 올랐다.

“연기하러 서울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다 같이 비웃었어요. 대학 연극 동아리도 떨어진 애가 서울에 가서 제대로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죠.”

 

현재 다니는 대학은 꼭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울산과 서울을 매일 오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입시준비와 아이돌그룹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기도 했다. 

 

베헤모스 5
연극 ‘베헤모스’ 중 오검 역의 정원조와 한태석 이창엽.(사진제공=PMC프러덕션)

 

“오지랖이 많이 넓었던 것 같아요.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데다 어릴 때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많았죠. 가수가 싫어서는 아니었고 인지도를 쌓아가는 데 좀 오래 걸리더라도 연기가 더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팀을 떠나오기는 했지만 갓 스물을 넘긴 21세에 경험한 노래·댄스 트레이닝이 뮤지컬을 하는 데 밑거름이 돼주고 있다. 더불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도 고민하고 배우던 시절이었다.

“너무 어릴 때라 좀 아쉽기도 해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흥청망청(?)하면서 좀더 재밌게 지내도 괜찮았을텐데 싶기도 하고… 덕분에 지금은 웬만큼 힘들어서는 힘들지도 않아요.”

굶기도 많이 굶었고 하루 2, 3시간 자기도 힘든 일상이 이어지기를 일년 남짓, 이창엽은 한예종에 12학번으로 입학했다.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세상이 이상하다”고 지금까지도 의문을 품는 사건(?)에 가까웠던 그의 한예종 입성은 스스로에게도 그랬다.


◇혼자 영화에 심취했던 한에종 시절, 존재감 제로?

B2017021001010006253000
연극 ‘베헤모스’ 재벌2세 한태석의 이창엽.(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저 자신도 확신이 없었어요. 왜 나를 뽑았지? 늘 궁금했죠. 언젠가 교수님이 카이스트 영재교육 이력을 보시고는 우스갯소리로 공부를 잘해서 뽑았다고는 하셨는데…결국 진짜 이유는 못 여쭤봤어요. 겁이 나서.”

영화에 빠져 늘 혼자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독립영화제, 단편영화제, 여성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를 찾아 영화들을 섭렵했고 ‘다정하게 바삭바삭’ ‘아무도 겨레에 대해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다’ ‘ 그 자리’ 등 몇편의 다양성 영화에 출연했다. “이윤택 연출은 찾아 갔었냐”는 질문에 “저를 기억하실까요?”라는 반문이 돌아온다.

“원래 존재감이 별로 없어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죠. 박근형(연출) 선생님이 지도교수님이셨어요. 졸업공연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주셨죠. ‘청춘예찬’의 박근형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근데 너 이 학교 학생 맞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절 처음 보신거죠. 졸업공연에서.”

분명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그는 조용하고 혼자 무언가를 열심히도 하는 학생이었다. 이에 대해 이창엽은 “몰래 다니기 보다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CcrkN8PUUAANcuj
이창엽의 데뷔작 뮤지컬 ‘마마돈크라이’.(사진제공=알앤드웍스, 페이지원)

“제 주장이 강하고 제 걸 하는 데 심취해 있었어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죠. 영화에 꽂혀 혼자 영화를 보고 분석하고 엄청 애를 썼어요. 이윤택 선생님도, 박근형 선생님도 언젠가는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기회를 주신다면.”


그리곤 “이윤택 선생님도 저를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오라고 하셨는데…”라며 너털웃음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달인들, 이지나·오루피나·김태형 연출

“다들 너무 대단한 분들이시라 주눅 들었어요.”

데뷔작 ‘마마돈크라이’의 오루피나,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이지나 연출,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베헤모스’ 김태형 연출은 공연계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다.

“처음엔 다가서기도 어려웠는데 대단하신 분들은 그런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다가와 주시고 기본적인 배려가 남다르신 분들이죠. 저는 아직 신인이고 실수도 많지만 칭찬을 해주시면 날개 달고 잘 하는 스타일이에요. 당근과 채찍을 어느 타이밍에 줘야 이 배우가 잘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세분 모두 커뮤니케이션에 도가 트신 분들 같아요. 재밌었고 그래서 믿고 따라갈 수 있었죠.”

오디션을 거쳐 ‘마마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으로 처음 무대에 오르면서 공연계에 데뷔한 이창엽에게 그 첫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첫 공연에서는 도망치고 싶었죠. 그래도 요즘 공연하면서는 ‘끝나면 도망가야겠다’ 생각해요. 작품마다, 그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받는 여운과 에너지가 다른 것 같아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실제 사건, 실존인물들로 꾸리다 보니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잃어버린얼굴  1895_김도빈, 이창엽
이지나 연출의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고종을 연기한 이창엽(왼쪽)과 김옥균 역의 김도빈.(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지나 연출의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고종을 연기했던 이창엽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묘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홍릉을 찾기도 했단다. 

 

“좋은 공연을 하게 해달라고 저를 위한 기도를 했죠. 감히 제가 (고종) 연기를 하는 데 대한 사죄의 마음도 올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또 다른 부담감은 고종 역에 더블캐스팅된 박영수였다. 이제 두 번째 무대에 오르는 이창엽에게 박영수는 너무나 큰 배우였다.

“며칠은 잠도 못자고 힘들었어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고민도 엄청 했죠. 비교돼서 걱정이 아니라 (박)영수 형은 너무 대단한 배우잖아요. 그 대단한 배우와는 다른, 제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시간은 짧고….”

그런 이창엽을 바로 서게 한 것은 이지나 연출의 “쟨 잘할거야”라는 짧은 한마디였다.

“(이지나) 연출님은 사실 제가 연기하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셨거든요. 그런 믿음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힘이 났어요. 그 부담은 제가 안고 가야할 숙제인 거고 기분은 너무 좋더라고요. 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친절한 문성일과 오검 정원조·김도현, 이변 최대훈·김찬호
 

베헤모스 5
연극 ‘베헤모스’ 중 이변 역의 최대훈과 한태석 문성일, 오검 김도현.(사진제공=PMC프러덕션)

 

“다들 너무 친절하세요.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또래 같은(?) 친절함을 주시죠.”

입고 있는 핑크 팬더 문양의 후디(Hoodie)를 가리키며 “이것도 (문)성일 형이 선물로 주신 것”이라며 웃는다.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 역할의 뼈대나 표현 목적은 같기 때문에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다만 선배님들이 어디에 더 치중하는지에 따라서 제가 변하는 순간이 조절되기는 하죠. 그게 연극이 주는 매력 같아요.” 


rlacksghwkfwkwk
연극 ‘베헤모스’ 중 이변 김찬호와 한태석 이창엽.(사진제공=PMC프러덕션)

연극 ‘베헤모스’는 재벌 2세 한태석이 연루된 살인사건을 둘러싼 정의로운 검사 오진욱(정원조·김도현, 이하 오검)과 사회 부조리에 한껏 기대 살아가는 이현수(최대훈·김찬호, 이하 이변) 변호사의 복잡한 심리를 따르는 스릴러다.  


“(정)원조 선배님은 더 날카롭고 이성적이면서 지적이게 오검을 표현하시죠. 냉한 순간들 속에 원조 선배님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따뜻함이 융화되면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김)도현 선배님은 동물적이고 감성적이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매력이 있어요. (이변 역의) 최대훈·김찬호 선배는 말투가 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연기를 잘하셔서 두분 다 능글맞고 너무 얄미워요.”

이창엽은 연극 ‘베헤모스’에 대해 “시대비판적인 이야기여서 여운이 많이 남을 것 같다”며 “이 극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다.

“누가 피해자인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등 질문을 계속 던지는 극인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주는 확실한 지향점이기도 하죠.”


◇‘한예종’과 선배들의 이름에 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BUntitled-1
연극 ‘베헤모스’ 재벌2세 한태석의 이창엽.(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되게 사랑하는, 너무너무 친한 동생이에요.”

시종일관 수줍게 조근 조근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창엽이 들뜬 목소리를 내게 한 이가 한예종 12학번 동기 양세종이다. 한석규 주연 흥행작 ‘낭만닥터 김사부’의 도인범으로 눈도장을 찍은 양세종은 최근 ‘대장금’ 이영애의 복귀작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에서 이겸(송승헌)의 어린시절과 2017년 현재의 인문학자 한상현을 연기 중이다.

“제 ‘마마돈크라이’ 첫 공연을 (양)세종이가 보러왔었어요. ‘사임당’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세종이가 ‘형한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아간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세종이한테 좋은 에너지를 받아요. 오랜만에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뒷통수 치면서 내가 더 잘해 너나 잘해 할 수 있는 친구죠. 재밌게 놀면서 서로 응원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세종이는 더 잘 될 친구니까 (우리는) 앞으로 더 좋을 거예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가진 재능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작품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몇 달 전에 만나서도 ‘공연 같이 하자’고 얘기했죠.”

이창엽과 양세종을 비롯해 오만석, 강필석, 최재웅, 김재범, 박정복, 최연우 등 공연계를 비롯해 김동욱, 이제훈, 김고은, 박소담 등이 한예종 출신이다.

“(한예종) 내부적으로 커리큘럼이 너무 탄탄하고 집요해요. 컬리큘럼만 따라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죠. 그런데다 저는 떡잎부터 남달랐던 친구들과는 달리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보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더 열심히 해서 제가 몸담고 있는 무대에서 학교 망신시키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