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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일상'처럼 박유덕, '평생 배우'를 꿈꾸는 안재영 그리고 그들의 '보도지침'과 '라흐마니노프' 사람들

'라흐마니노프' 사람들,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 오세혁 연출, 이진욱 음악감독 그리고 뜨거운 김경수
또 다른 승욱 박정표와 또 다른 돈결 남윤호 "배울 게 많은 형들"

입력 2017-05-27 17:00

연극 '보도지침'뮤지컬배우 안재영. 박유덕18
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왼쪽)과 변호사 황승욱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는 오세혁 작가님이 연출까지 하신다고 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경수 형, 재영이와의 호흡이나 기운이 너무 좋아서 셋만 있어도 바로 오케이였죠.”



1986년 김주언 기자가 문화공보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실제 사건을 무대에 올린 연극 ‘보도지침’에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팀워크가 고스란히 전이됐다. 오세혁 작·연출, 이진욱 음악감독 그리고 김주혁 역의 김경수, 변호사 황승욱 역의 박유덕,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까지 모두 ‘라흐마니노프’를 함께 했다.

안재영에 따르면 “(니콜라이 달 박사 역의)정동화 배우가 함께 ‘보도지침’을 했다면 ‘라흐지침’이 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너무 좋았어요. 시너지가 좋았죠. 저는 ‘라흐마니노프’로 유덕 형, 경수 형을 처음 만났는데 색이 다 달라선지 시너지가 유난히 좋았던 것 같아요.”


◇오세혁 연출의 “배우님 스케줄이 어떻게 되십니까?”
 

연극 '보도지침'  뮤지컬배우  박유덕
연극 ‘보도지침’ 변호사 황승욱 역의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오세혁) 연출님이 말씀은 하셨어요. ‘배우님 스케줄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으시길래 ‘아직은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뭐 때문에 그러시죠?’라고 여쭈면 ‘자세한 건 나중에…’라고. 계속 이렇게만 말씀하셨어요. 몇 번을.”

한참 ‘라흐마니노프’ 앙코르를 공연을 준비 중이던 때 오세혁 작·연출은 박유덕에게 몇 차례 언질 끝에 ‘보도지침’의 승욱 역을 제안했다.

“저한테는 그냥 ‘재영아 ’보도지침‘ 할래?’ 하시길래 ‘예!’ 했는데…연출님이 유덕 형 한테는 아직도 ‘박배우님’이라고 하고 존칭을 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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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왼쪽)과 변호사 황승욱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그렇게 일찌감치 ‘보도지침’ 출연을 결정한 안재영도 오세혁 연출 특유의 묻고 또 묻기로 돈결을 만났다.

“사실 처음 ‘보도지침 할거지?’ 했을 때 전 당연히 또 정배였어요. 연출님이 ‘돈결 해볼래?’하시길래 ‘전 정배 하겠습니다’라고 했죠. 4, 5번쯤 물으셨어요. 그리곤 5번째인가에 ‘너 꼭 정배해야겠니?’ 하시길래 ‘연출님 생각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더니 ‘그럼 돈결이!’하시더라고요.”

 

“이번엔 꼭 돈결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오세혁 연출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안재영은 돈결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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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제가 가진 시니컬한 부분이 있거든요. 나쁘게 얘기하면 싸가지 없는 건데…가끔 아닌 건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의 그런 스타일을 연출님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지난 2월 리딩공연으로 치러진 수현재컴퍼니 작가데뷔 프로그램 통통통의 ‘뮤지컬 ’까라마조프-대심문관‘의 논리와 이성을 갖춘 무신론자 이반 역시 그렇게 합류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등의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배우의 생각이나 해석의 여지를 많이 이해하고 공유하시죠. ‘라흐마니노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때도 그러셨어요.”

‘라흐마니노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사내, ‘보도지침’의 돈결, ‘까라마조프-대심문관’의 이반 그리고 차기작인 국립극단의 한민족디아스포라전 ‘김씨네 편의점’까지 오세혁 연출과 함께 한다.

 

안재영은 박유덕의 증언(?)처럼 “연출님이 신뢰하는 배우”이고 오세혁 연출 스스로의 말처럼 “가장 하는 대로 두는 배우”다.

“말이 잘 통해요. 제가 서슴없이 얘기해도 잘 들어주시죠. 그러다가도 연출님이 ‘아냐, 이건 이렇게 해’라고 하시면 바로 수긍해요. 저를 믿어주고 저 역시 믿으니까요. 죽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얼렁뚱땅(?) 박유덕, 뭔지도 모르는 열정 안재영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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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중 검사 최돈결과 변호사 황승욱으로 분하는 안재영(왼쪽)과 박유덕.(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그때는 얼렁뚱땅(?) 했던 것 같아요. 열일곱에 예고에 입학했는데 너무 ‘하지 마, 하지 마’ 하는 게 많은 거예요. 그렇게 적응하는 데 1년이 걸렸죠. 18살부터 배우를 꿈꾸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연기를 거의 안했어요. 스태프 일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대학에 입학해서는 예고 때부터 익숙해진 스태프 일을 전담하면서 선배들의 신뢰를 받는만큼 분주했던 시절이었다. 

 

이에 연극 ‘보도지침’ 중 승욱(박유덕·박정표), 돈결(남윤호·안재영)을 비롯해 주혁(김경수·봉태규·이형훈, 이하 가나다 순), 정배(고상호·기세중·박정원), 판사 원달(서현철·윤상화), 남자(김대곤·최연동), 여자(이화정·정인지) 등이 함께 했던 연극반 이야기에서 박유덕은 대학 때보다는 그 이전의 예고시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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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왼쪽)과 변호사 황승욱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는 대학교 1학년, 연기를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나요. 공연을 시작하면서도 독백을 이렇게 길게 하는 작품이 별로 없었거든요. 연기를 처음 배울 때는 서로 신을 맞추기 보다는 독백을 많이 했어요.”

 

셰익스피어, 체홉, 아서 밀러 등 명작의 대사 한줄 한줄을 써가면서 종이가 찢어지도록 독백경연대회를 준비하곤 하던 때였다.

“선배들이 ‘너희는 아직 안돼, 더 배워야 해’ 하셨으니 연기는 감히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마음으로 임해야 했죠. ‘보도지침’에서 연극반 독백경연대회를 연기하다 보면 그 시절 뭣도 모르면서 가졌던 열정 같은 게 생각나서 추억에 빠지곤 해요.”


◇또 다른 승욱 박정표, 또 다른 돈결 남윤호  

 

“(박)정표 형은 워낙 센스와 위트가 넘치는 배우예요.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이 두드러지죠.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밌어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형인 것 같아요.”

승욱 역에 더블캐스팅된 박정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박유덕은 “반면 전 승욱을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으로 연기하려고 한다”며 “이 다른 점들은 무대에서 보여질테고 관객들이 가장 잘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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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최돈결 역의 남윤호(왼쪽)와 황승욱 역의 박정표.(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안재영은 “배우들 각자 매력이 다르고 연출님 또한 각 배우의 매력을 살려주려 노력하시다 보니 모든 것들이 잘 조화돼 분위기 좋게 공연이 진행되는 것 같다”며 자신과 돈결 역에 더블캐스팅된 남윤호에 대해 “배울 게 많은 형”이라고 표현했다.

“돈결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형이랑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어요. 서로 모니터를 해주고 보완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했죠.”


◇‘라흐마니노프’ 사람들, 열린 마음 오세혁 연출·이진욱 음악감독 그리고 뜨거운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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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왼쪽)과 변호사 황승욱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라흐마니노프’에서는 재영이랑 같은 역을 하다 보니 연습 이후에는 자주 못 만나 아쉬웠어요. 이번 ‘보도지침’에서는 다른 역할을 연기하니 자주 볼 수 있어 좋아요.”

박유덕의 말에 안재영 역시 “형이랑 얘기하면서 다음 작품에서는 무대에 함께 섰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보도지침’에서 만나게 됐다”고 동의를 표했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함께 라흐마니노프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나눴어요.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서로 잘 맞았고 라흐마니노프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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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연극 ‘보도지침’에서도 함께 한 연출가 작·연출.(사진=브릿지경제 DB, 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박유덕과 안재영은 오세혁 연출과 이진욱 음악감독에 대해 “배우와 스태프를 믿어주는 분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세혁 연출에 대해 박유덕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데 한계와 제한을 두지 않고 가능성과 폭을 열어주신다. 배우로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여러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귀띔했다. 그런 오세혁 연출을 안재영은 “배우를 믿고 존중해주는, 팀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선장”이라고 표현했다.

 

“이진욱 감독님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픈 마인드로 배우들 말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세요. 오세혁 연출님을 만났을 때 시너지가 발휘되는 것 같아요. 그 시너지가 고스란히 배우들에게 전달돼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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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을 폭로하는 김주혁 역의 김경수.(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박유덕의 말에 안재영은 이진욱 음악감독에 대해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음악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보도지침’ 상견례 리딩 때는 현장음을 녹음해서 음악을 만드는 데 참고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김주혁 역의 김경수는 ‘라흐마니노프’에서 니콜라이 달 박사로 박유덕·안재영과 호흡을 맞춘 배우다. 특히 김경수와 ‘빈센트 반 고흐’에서 동생 테오로 함께 했던 박유덕은 김경수를 “너무 좋고 편한 형”이라고 했다.

“형의 호흡을 잘 알고 있어선지 왠지 모를 편안함이 있어요. 교집합이 많은 사이죠. 그러다 보니 더 편해지고 가까워진 것 같아요.”
 

‘라흐마니노프’에서 처음 만나 ‘보도지침’에서도 함께 하고 있는 김경수는 안재영에게 “연기에 열정적이고 뜨거움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형이자 배우”다.


◇‘일상처럼’ 공감을 꿈꾸는 박유덕, 평생 배우이고 싶은 안재영 “안 변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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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변호사 황승욱 역의 박유덕.(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어떻게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극이 전하고자 하는 것, 제가 느낀 걸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늘 그랬고 앞으로도 안변할 것 같아요.”

“언제나 설렁설렁했던 것 같다”는 박유덕의 표현은 나태하거나 성의가 없다기 보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처럼 꾸준히 생각하며’ 혹은 ‘자연스레 찾아질 때까지’ 자기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박유덕이 이처럼 연기에 임하기 시작한 건 2007~8년 무렵이었다. 군 제대 후 극단 여름에 객원단원으로 1년여간 몸담았을 때였다. 연극 ‘희망세일’ 공연을 위해 부산에서 한달여를 머무를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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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검사 최돈결 역의 안재영.(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선배 형이 송정 방파제 앞에 절 두고 떠나더라고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형을 기다렸죠. 그렇게 한참을 있으면서 바다, 큰 배, 갈매기, 꽃게 등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실 바닷가에 늘 있는 것들이죠. 그런 일상적인 것들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느꼈어요. 이 형이 이걸 느껴보라고 했구나를 그제야 알았죠.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래요.” 

 

“평생 배우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안재영은 “연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늘 그렇다”고 털어놓았다.

“의심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10년 동안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안재영은 그런 자신이 “너무 대견한 것 같다”고 했다.

“잠깐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무대를 보면 제가 공연하는 배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새삼 깨달아요. 배우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가꿔갈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연기하면 배고프다고들 하시는데 그래도 좋으니 공연을 재밌게 하면서 평생 배우로 살고 싶어요. 변함없이 공연이 있는 전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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