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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지독한 현실감과 냉기, 우리 모두는 ‘글로리아’

입력 2017-07-13 07:00
신문게재 2017-07-1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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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낯을 가렸고 소심했을 뿐이다. 똑똑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웃기도 했다. 단지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을 뿐이다. 뉴욕의 한 잡지사를 배경으로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최장기 근속한 교열부 직원 글로리아(곽지숙) 사건으로 시작하는 연극 ‘글로리아’(7월 14~8월 13일)가 재연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초연 당시 지독한 현실감과 냉기로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한탄을 자아냈던 ‘글로리아’는 2016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젊은 극작가 브랜드 제이콥스-젠킨스(Branden Jacobs-Jenkins)의 희곡을 바탕으로 ‘모범생들’ ‘히스토리 보이즈’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베헤모스’ ‘벙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 ‘팬레터’ ‘로기수’ ‘아가사’ 등의 김태형이 연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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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글로리아’.(사진제공=노네임씨어터)

‘베헤모스’ ‘생각은 자유’ 등의 정원조, ‘수탉들의 싸움’ ‘톡톡’ 등의 손지윤, ‘킬미나우’ ‘유도소년’ ‘타조소년’ 등의 오정택, ‘노란달’의 공예지 등 초연 배우에 ‘헤베카’ ‘연변엄마’ ‘히스토리 보이즈’ ‘썬샤인의 전사들’ 등의 곽지숙이 글로리아와 낸, ‘보도지침’ ‘세일즈맨의 죽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의 이형훈이 딘과 데빈으로 새로 합류했다. 

 

“배우와 극장이 바뀌면서 캐릭터, 관계들, 무대 디자인 등 미세한 변화는 있지만 큰 틀은 그대로”라는 제작사 노네임씨어터 관계자의 전언이다.  

 

임원 낸(곽지숙)과 옆 사무실의 팩트체크 팀장 로린(정원조),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매일 밤 술타령인 작가 지망생 편집부 어시스턴트 딘(이형훈), 중국인 부자 아빠를 둔 하버드 출신의 어시스턴트 켄드라(손지윤), 이 편집국에 있기엔 지나치게 똑똑하고 잘난 하버드 졸업반인 인턴 마일즈(오정택), 독특하고 유쾌한 괴짜 막내 애니(공예지) 그리고 존재감이라고는 없는 글로리아가 엮어가는 지극히 냉소적인 이야기다.

 

글로리아의 집들이 다음날, 자조적인 한탄과 불만으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글로리아도 사무실 사람들도 큰 변화를 맞는다. 글로리아 사건과 그로부터 8개월 후, 그리고 또 2년 후로 구성된 이야기는 극장을 나서는 이의 어깨를 묵직하게도 짓누른다.


8개월 후 우연히 만난 사람들, 책을 내는 게 꿈이었던 딘과 비슷한 꿈을 꾸던 켄드라는 글로리아 사건을 소재로 책을 쓰겠다는 서로를 비난하고 낸과 그의 어시스턴트였던 샤샤(공예지) 역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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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글로리아’ 출연진. 왼쪽부터 공예지, 정원조, 오정택, 곽지숙, 이형훈, 손지윤.(사진제공=노네임씨어터)

 

또다시 글로리아 이야기를 매개로 방송사에서 마주치는 로린과 낸, 한때는 함께 일했던 이들을 몰라보는 현상의 연속, 서로를 비난하지만 글로리아 사건의 핵심보다는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 등장인물들을 통해 드러난, 무엇이 잘못이고 자신의 무엇이 말을 많아지게 하는지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인간의 본성 등이 가슴 속 어딘가를 아프게도 찔러댄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 삶의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해 오래도록 회자되는데도 ‘글로리아’라는 이름은 참혹하고 암울하다. 15년을 한 직장에 몸 담았던 글로리아의 충격적 선택이 두려움과 서글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언제 어디나 글로리아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암울한 중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찰나들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 이유기도 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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