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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확 바뀐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 원작자 박동욱 “모두가 지훈의 마음으로!”

동우 민진웅·이강우·주민진, 지훈 박동욱·이형훈·정순원, 형석 김다흰·김호진·이태구, 명구 김연우·송광일·전석호
박선희 연출, 진주 작가, 안혁원 PD 의기투합으로 지난해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으로 초연

입력 2017-11-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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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사람은 사람한테 잊혀졌을 때 죽는 거야.”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2018년 2월 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의 지훈이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 속 이 대사에 박동욱은 “이거다”를 외쳤다. 1999~2000년을 함께 보냈지만 한 친구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으로 초연됐다 제목을 바꿔 돌아온 ‘밀레니엄 소년단’은 배우이자 원작자 박동욱과 친구들의 사연이 반영된 작품이다.

동우(민진웅·이강우·주민진, 이하 가나다 순), 지훈(박동욱·이형훈·정순원), 형석(김다흰·김호진·이태구), 명구(김연우·송광일·전석호) 등 등장인물들 이름 역시 박동욱의 중학교 친구들 것으로 “지훈이가 식물인간이라는 사실만 빼고 친구들과의 기억을 짜맞춘 이야기”다. 극 중 캐릭터와 이름이 같은 중학교 친구들을 비롯해 계원예고 동창인 배우 이율, 홍준기, 이현균 등 여러 친구들의 모습과 실제 에피소드들이 네 인물에 응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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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돼지 껍데기를 처음 알려준 아이가 (이)율이었고 실제 친구들한테 500원씩을 빌리다 더 이상은 힘들어져 먼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닌 아이도 있었어요. ‘찬란한 사랑’에 맞춰 깡패들한테 맞거나 제일 친한 친구와 여자애 때문에 싸우고 마음을 털어놓으려 낚시터에 간 것도 실제 제 이야기죠.” 



◇전문 작가의 합류로 확 바뀐 ‘밀레니엄 소년단’

“초연이 낭만은 있었고 추억을 공유할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관객에게 다가가기엔 음악에 너무 의존하는 면이 있었어요. 유치한 구석도 있고.”

이에 재연에선 전문작가가 참여해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거쳤다. 각색을 담당한 진주 작가는 ‘밀레니엄 소년단’을 비롯해 ‘인디아 블로그’ ‘터키블루스’ 등을 함께 했던 박선희 연출과 박동욱이 ‘배소고지 이야기’ 리딩공연을 보러 갔다 인연이 돼 합류했다.

“이번엔 과거와 현재에 또 하나의 시점이 생겼어요. 과거와 현재 사이에 지훈이 깨어나는 2012년이 끼어 들어갔죠. 작가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을 예언한 2000년, 마야인의 2012년 인류멸망론에 치밀하게 연결했어요. 대사들도 훨씬 좋아졌고 볼수록 신기해요.”

이는 박동욱이 “이거다”를 외쳤던 만화 ‘원피스’ 대사 속 죽음 그리고 “지구가 언제 멸망하는 줄 알아? 우리 우정이 깨지는 날이야. 그게 내 우주의 멸망이야”라는 지훈의 대사와 맥을 같이 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각색이라기보다 재창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하고자하는 얘기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변해버린, 어른이 돼가는 모습이 싫었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현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어느 순간 멀어졌는데도 굳이 해결해야할 가치를 못느끼고…‘이 정도도 괜찮아’라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너무 슬펐어요. 그 우정을 지키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더 담으려고 했죠.”


◇새로운 인물, 보다 극적인 사건 그리고 좀 더 이기적이 된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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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사진제공=창작하는 공간)

 

“지훈이는 의리를 중시하고 별 이유도 없이 마냥 친구 타령을 하던, 피터팬 같은 친구였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멀어지는 거지 어떤 사건이 있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공연은 또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모든 걸 상상해서 가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죠. 그래서 이번엔 지훈과 동우 사이에 보다 깊어진 사건을 넣었어요. 아예 새로 들어가는 인물을 둘러싼 둘 사이의 사건이 친구들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죠.”

초연이 에피소드의 배열에 가까웠다면 그 사건들을 연극적으로 엮어 새로 꾸린 것이 ‘밀레니엄 소년단’이다. 초연 당시 친구들을 모이게 했던 지훈은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변주됐다. 지훈에 대해 박동욱은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은 10분 정도”라며 “거의 노는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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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되게 이기적인 아이예요.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남을 별로 생각하지 않죠. 과거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돼 말버릇처럼 혹은 장난처럼 죽고 싶다고 하고 실제로 죽으려고도 하거든요. 그러면서도 가장 밝고 신나게 노는 아이죠. 무서워서 친구들에게 마지막까지 털어놓질 못해요. 친구지만 내 아픔을 이해해줄까에 대한 의심이 있죠. 한편으로는 자기가 그럴 자격이 없는 나쁜 애라고 생각해 스스로의 아픔에 계속 빠져들어요. 그걸 숨기기 위해 방어기재처럼 더 밝은 아이죠. 그런 부분이 더 짠하고 가슴이 아파요.”  

 

이번 재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역시 이기적인 지훈의 면면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지훈이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모두 듣고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토해내던 오열 신은 여전히 먼저 손내밀지 못하는 지훈과 동우의 모습으로 대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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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사진제공=창작하는 공간)

“2000년부터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2012년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병실에 있는 동안이 내내 가슴이 아파요. 변해버린 친구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여전히 손을 내밀지 못하는 순간도,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도…생각해 보면 본인이 가진 죄책감이나 섭섭함을 확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곤 하지만 정작 친구여야 하는 순간에 친구로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진짜 이기적인 놈이구나 싶다지훈이뿐 아니라 사건 당사자인 동우도, 관찰자인 형석·명구도 모른척한다”며 누구 한명만 얘기했어도 해결될 문제였는데 그러지 못한 데서 오는 죄책감이 엄청 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공감 가는 인물은 형석, 여전히 연기하고 싶은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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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초연 때는 배우들끼리 어떻게 무대화를 시킬까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작품과 인물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했고 여전히 하고 있어요.” 


이미 있는 에피소드에 인물에 대한 설정과 사연을 구체화하면서 12명 배우들의 고민은 각 캐릭터 표현에 집중됐다.

“엄청 노는 애였던 동우는 몸이 약해 병원에만 있다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방법을 모르다 학교에서 지훈, 형석, 명구를 만나면서 변화를 맞는 아이로 바뀌었어요. 한참 뒤에야 지훈이가 자신이 찾으려던 그 아이임을 알고 어떻게 할지 몰라 애증을 품고 고민하죠.”

그렇게 지훈과 동우가 사건과 갈등의 중심에 선다면 또 다른 친구인 명구와 형석은 그들을 지켜보며 극을 진행시킨다.

“과거 친구들 곁에 묵묵히 있어주던 명구는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변해버리죠. 형석이는 사태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판단해서 이야기해주는 친구예요. 지훈과 동우 사이에서 일어난 핵심사건을 지켜보는 명우와 형석의 내레이션이 극을 끌어가죠. 두 사람을 지켜만 볼 뿐 개입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죄책감과 회한을 가지고 있어요.”

 

이어 “작년에 했던 배우들(박동욱·정순원, 주민진·이강우, 김호진, 송광일)은 잔상을 없애느라 힘들었고 새로 온 배우들(이형훈, 민진웅, 김다흰·이태구, 전석호·김연우)도 초연 대본을 보고 합류했으니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한 박동욱은 “이번에 가장 공감가는 인물은 형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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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사진제공=창작하는 공간)

“저 역시 친구들한테 질투를 느끼면서도 시크한 척 하고 (좋았던) 과거에 머물러 있죠. 지훈이처럼 친구를 받치거나 그러진 않아요. 좀 떨어져 있다가 아니다 싶으면 얘기하는 스타일이죠. 제 주변에는 명구 같은 친구들이 많아요. 힘들게 삶을 끌고 가는 명구는 이번에 훨씬 더 묵직해졌죠. 보고 있으면 다들 짠해요.”

그리곤 “초연에선 울며불며 신파로 달려가며 지훈이가 얘기를 다 했다면 이번엔 순간순간 인물들의 면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스스로는 똑같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변해버린, 4명 중 누군가에게서는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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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그러면서도 해보고 싶은 역할에 대해서는 “전 여전히 지훈이만 하고 싶다”며 “지훈이 하나로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지훈이한테 애착이 가요. 처음부터 제가 써낸 인물이잖아요. 제가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제 마음을 다 담은 인물이거든요. 저만의 지훈이를 완성하고 싶어요.”


◇12명 배우들 역시 “친구가 돼가고 있죠”

“오로지 진심만 생각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이 대사를 어떻게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같이 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지훈이처럼 보일까만 생각하고 있죠. 순수해지기가 힘든 것 같아요. 모두에게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가 힘들었어요.”

이에 연습기간은 배우들이 무대 위 인물들처럼 진짜 친구가 돼가는 과정이었다. 작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나누면서 “괴롭다고 울타리 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말고 진짜 친구가 돼 보자” 마음먹었다.

“스케줄이 바빠서 연습에 못나오더라도 그 친구를 챙겨서 같이 가려는 마음으로 다 같이 애쓰고 있어요. 공연 끝날 때까지 진심으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거고 그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지훈이나 저나 같아요. 지훈이 뇌사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친구들이 12년만에 다시 만났고 그가 동우에게 보낸 녹음기가 그로부터 5년 뒤에 배달되면서 또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잖아요. 그게 지훈이의 진심이었을 거예요. 저 역시 중학교 친구들이랑 계를 하면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만날 일을 계속 만들죠.”


◇지훈의 ‘진심’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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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원작자이자 배우 박동욱(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사실 계원예고 친구들이랑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게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이었어요.”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려던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대본이 극단 창작하는 공간의 대표이기도 한 안혁원 PD에게 건네지면서 무대화됐다. 그는 “연극 ‘뜨거운 여름’을 하면서 (안)혁원 형한테 대본을 건넸는데 하자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형 친구가 병원에 있었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다 못가는 새에 세상을 떠나버렸대요. 혁원이 형도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마음을 느끼고 있는 지훈이었던 거죠. 저나 혁원이 형 뿐 아니라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혁원 형에 이어 박선희 연출님이 손을 내밀어주고 새 배우들도, 지난 공연에서 경계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보다 깊숙이 들어와 주니 감사할 따름이죠. 연극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밀레니엄 소년단’이 무대에서 배우들끼리든, 배우와 관객이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좋겠어요.”

그렇게 박동욱은 누구나 지훈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죽는다”던 ‘원피스’의 장면이나 “우리 우정이 깨질 때 내 우주는 멸망한다”던 지훈의 진심이 만나지는 공연이길 바라면서.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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