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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뮤지컬 ‘마리 퀴리’ 박영수·조풍래…정답이 없는 ‘라듐의 발견’ 같은 순간들

라듐 발견과 라듐걸스 사건 교차시키는 뮤지컬 ‘마리 퀴리’, 라듐을 둘러싼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루벤 뒤퐁, 직공들 이야기
김소향·임강희, 박영수, 조풍래, 김아영·김히어라·이아름솔·장민수 출연

입력 2019-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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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왼쪽)와 피에르 퀴리 박영수(사진=강시열 작가)

 

“피에르에게 마리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 같아요.” “루벤에게 마리는 그냥 마리 그 자체죠.”



뮤지컬 ‘마리 퀴리’(1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의 ‘여성’, 편견이 되는 요소들로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라듐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마리 퀴리(김소향·임강희)의 삶을 따른다.

그 과정에는 조력자이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편 피에르 퀴리(박영수)와 라듐시계 공장 언다크의 대표 루벤 뒤퐁(조풍래) 그리고 라듐으로 인해 병들어 죽어가는 직공들(김아영·김히어라·이아름솔·장민수)이 함께 한다.

마리 퀴리에 대해 조풍래는 “루벤은 원래 부자도 아닌,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라며 “부자가 되는 꿈을 이뤘지만 그 이상으로 갈 수 있게 해줄 신념 같은 존재가 마리 퀴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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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왼쪽)와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렸던 루벤에게 돈 위에 있는 무언가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존재가 마리 같아요.”

피에르에게 마리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 박영수는 “없으면 안되는, 공기 같은 존재이며 제 삶이자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박영수의 표현에 조풍래는 ‘사랑과 존경의 차이’에 대해 말을 보탰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좋아하는 감정에서 발전하면 사랑과 존경으로 나뉘는데 이유가 있으면 존경이고 없으면 사랑이래요. 루벤은 이유가 있고 피에르는 이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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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왼쪽)와 피에르 퀴리 박영수(사진=강시열 작가)

 

◇사랑과 존경의 차이, 피에르와 루벤의 마리 퀴리

 

“루벤에게는 마리가 성장의 역사이자 위대한 변화 그 자체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리가 역사를 바꾸고 위대한 변화를 이뤄낸다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4년 넘게 묵묵히 후원해왔을 거예요.”

이렇게 전한 조풍래는 피에르가 “루벤이 또 피치블렌드(역청 우라늄석)를 끊었어”라고 알리면서 마리와 대면하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마리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갑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또’라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거든요. 마리가 좀 해이해지거나 지치는 시기가 됐을 때 자극하는 방법이죠. 첫 등장부터 ‘오늘은 좀 늦었어’라며 돈 얘기를 하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리가 지쳐갈 때쯤 자극으로 북돋워 다시 몰두할 수 있게끔 하는 또 다른 조력자예요.”

그리곤 “루벤은 후원을 통해 그 위대한 과학자 마리가 변화를 이루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대단한 사람이 됐을 때 ‘그 옆에는 내가 있었다’고 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마리와 함께라면 돈만 많은 부자 중 하나가 아니라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에르도, 루벤도 마리를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루벤이 마리를 자극해 폭발시키는 사람이라면 저(피에르)는 자극을 주지 않고 좀 평온하게 넘어가기를, 마리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인물로 피에르를 연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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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사진=강시열 작가)

 

피에르에 대해 이렇게 전한 박영수는 마리가 라듐으로 죽어가는 직공들에 대한 안느(김히어라)의 편지를 받았을 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편지를 받고 이 여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알기 때문에 ‘괜찮아’라고 다독여요. ‘라듐 덕분에 사람들이 호전되고 있고 암세포도 줄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덮으려 하죠. 그렇게 마리가 임상실험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끔 해두고 혼자서 생체실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했어요. 그러다 결국 부딪히게 되죠.”

그 부딪힘에 대해 박영수는 “(마리와 피에르의) 도덕적 이념이 정확하게 분리되는 장면이나 근거가 없어서 표현이 잘 안된다”며 “마리가 임상실험에만 몰두하는 듯 보이는 건 엄마와 언니들이 지금은 해결됐지만 당시는 치료방법이 없던 질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적인 부분들로 설명이 되지만 피에르는 그렇질 못해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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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쇼케이스를 할 때는 도덕적 개념이 확 갈라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피에르가 ‘10명 중 9명이 살아도 한명이 죽는다면 위해성 실험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마리는 ‘아니 나는 한명이 죽는다면 9명을 살리겠어’라고 하거든요.”


◇극소량의 라듐이 위대해진 것처럼…치열했던 캐릭터 분석

“각자 캐릭터들을 통통하다고 해야할까요. 좀 풍성하게 만들어두고 다듬어가야 하는데 초반부터 어느 정도 다듬어진 부분을 주셨어요.”

극소량의 라듐처럼(?) 주어진 데서 가장 시급했던 것은 박영수의 말처럼 마리 캐릭터였다.

 

이 과정에 대해 박영수는 “저희 둘(피에르와 루벤) 문제보다 마리 퀴리라는 이 위대한 인물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조풍래는 “저희가 하나의 라인을 만들기 시작하면 마리의 라인이 전혀 보이질 않아서 자꾸 작아지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피에르와 루벤을 많이 눌러 놓은 상태에서 마리를 먼저 해결해야 했죠. 그 선을 지키면서 피에르 퀴리가 조력자로서 마리의 옆에 가기까지 필요한 장면들을 만들었어요.”

캐릭터가 어느 지점까지 가기 위한 단계를 건너 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박영수는 “최대한 시간을 쪼갰다”며 “마리가 인물로서 표현된다면 피에르는 시간의 경과를 많이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에 집중하기 보다는 최대한 마리를 받칠 수 있는 인물이어야겠다 싶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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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왼쪽)와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피에르가 4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임상실험까지 얼마나 흘렀다 등 그 시간을 보여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타임테이블처럼 짜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루벤 역시 라듐의 유효성을 찬양하는 ‘라듐 파라다이스’ 광고 후 라듐의 위해성을 따지는 안느에게 화를 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점프하는 장면 사이의 시간 경과와 지나왔을 사건들을 정리했다.

“보여지는 장면에서 화를 내고 사장 보다는 직공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는 루벤이 악역처럼 보여요. 하지만 저는 악역이라기보다 지향하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랐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장면과 장면을 아무리 연결하려고 노력해도 한 사람이 하는 말 같지가 않았어요. 이 장면과 다음 장면에서 하는 말들이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합리화시키기엔 관객들도, 저도 납득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역사의 뒤안길을 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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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사진=강시열 작가)
“극적으로는 진짜 재밌고 감동적일 것 같은 표현들이 있었죠. 하지만 마리 퀴리라는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극을 만들면서 극적 효과만을 위해 허구를 넣기도 그래서 현이 정말 어려웠어요.”

조풍래의 말처럼 뮤지컬 ‘마리 퀴리’는 마리가 라듐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1903년의 영광스러운 순간과 그 라듐으로 시계공장 소녀들이 죽어가던 1913년 ‘라듐 걸스’를 교차시켰다.

마리 퀴리를 중심으로 피에르와의 과학적 가치관 충돌, 루벤이 상징하는 현실과의 충돌, 희생자 안느와의 충돌 등 반대되는 상황을 교차시키며 인간적 고뇌에 집중한다.

하지만 조력자이면서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의 표현이나 그들의 관계는 입체적이지도, 촘촘하게 표현되지도 못한다.

“작가님도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이미 라듐 발견과 라듐걸스라는 다른 시기의 사건을 교차시키는 허구가 들어와 있는데 인물들까지 만나게 해버리면 역사왜곡에 인물까지 왜곡시켜야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나 표현을 부풀리기가 힘드셨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박영수에 조풍래는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랐던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공연 당시 송몽규 선생의 후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경험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고 지난했던 준비 과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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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은 좀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한참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른 표현을 고민하며 진전시키다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과정이 많았던 작업이었죠.”

이어 조풍래는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마리 퀴리보다 라듐이, 루벤은 지팡이, 피에르는 버찌만 기억에 남는다고 하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리 퀴리가 진짜 버찌만 먹고 연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건 잘 먹지도 않고”라는 박영수에 조풍래는 “지팡이 춤도 물론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저희가 의도하지 않은 단어들만 남았어요”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지팡이 춤만이 살 길이라고 정말 많이 연구하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박영수 전언에 “그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 것처럼 지팡이가 기억에 남아서”라며 웃는다.


◇아쉬운 피에르와 루벤의 서사…이념과 현실, 도덕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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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왼쪽)와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저희끼리 나누기로는 루벤이 현실, 피에르가 도덕적인 부분을 담당했어요. 과학적 이념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과학자 마리 퀴리를 흔들죠. 한 인물이 어떤 일을 하든 이념과 현실과 도덕의 부딪힘은 항상 있잖아요.”

박영수의 말처럼 뮤지컬 ‘마리 퀴리’는 마리의 과학적 이념을 큰 줄기로 조력자이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라듐시계 언다크의 대표 루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저 스스로는 마리가 피에르, 루벤, 안느(김히어라) 등과의 부딪힘으로 성장해 역사에 한 획을 긋고 노벨상을 받게 되는 과정을 생각했어요.”

조풍래의 말처럼 마리 퀴리에게 두개의 노벨상을 안긴 ‘라듐의 발견’은 그렇게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인류와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마리 퀴리’는 그 발자취에서 만날 수 있는 발견자와 조력자들, 모티베이터(Motivator)들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다.

“노벨상을 두번이나 탈 정도의 일을 하던 과학자 마리 퀴리가 수많은 현실적, 도덕적 부딪힘에서도 어떻게 한길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장면이 너무 약하죠.”

이렇게 전한 박영수는 “너무 좋은 소재고 여성 인물이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인데 (이념, 현실, 도덕이) 부딪히는 장면이 없어 감동적이고 힘 있는 마지막이 조금 약화돼 받아들여지는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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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피에르 퀴리 박영수(사진=강시열 작가)

 

“마리 역시 ‘죽은 여직공들을 위한 볼레로’가 슬프고 안쓰러워질수록 나쁘다는 오해를 받게 돼요. 공감가는 쪽에 마음이 가게 되잖아요. 게다가 그들은 희생자고 너무나도 현실 그대로 표현돼 있거든요.”

이어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이 굉장히 열심히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박영수에 조풍래는 “루벤과 (라듐의 위해성을 따지는) 안느가 부딪히는 ‘또 다른 진실’ 넘버에서 저는 협박이나 화를 내기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과정에 대해, 그 과정에서의 각자 역할, 입장에 대해 설득하거나 알게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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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루벤이 화를 내거나 협박을 하는 것처럼 보여졌다면 저의 문제죠. 아무리 생각하고 들어가도 말들이 부딪히는 것 같아요. 차가운 걸 주시고 뜨겁게 먹으라는 느낌이랄까요.”

조풍래의 말에 박영수는 “아직 다섯 번의 기회가 남아 있어”라고 대꾸했다. 이어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려면 말을 다 바꿔야 해”라는 조풍래의 말에 박영수는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라고 받는다.

“마리 퀴리가 위대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 안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도움을 주고 격돌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본공연은 수정과 수정을 거쳐 마리가 훨씬 돋보였으면 좋겠어요. 라듐과 루벤의 지팡이, 피에르의 버찌만 남지 않게 해야죠.”


◇‘라듐의 발견’ 같은 순간들 “정답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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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의 루벤 뒤퐁 조풍래(사진=강시열 작가)

 

“라듐의 발견은 미래같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희망을 가지고 가야하는. 누군가는 미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알 수 없죠. 라듐의 발견이라는 건 정말 축복일 줄 알았는데 재앙을 안겨주고 재앙 이후에 또 다른 축복을 안겨주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같은 느낌이에요.”

박영수의 말처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시로 향방을 달리했던 라듐의 발견은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불행일 수 있는 일상의 순간들이며 그 선택으로 도래할 미래와도 같다. 이에 조풍래는 늘 ‘라듐의 발견’ 같은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고 털어놓았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작품이 있고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 있고…정말 여러 가지 선택의 상황에 서게 되거거든요. 마리도, 피에르도, 루벤도 그랬을 거예요. 마리, 루벤, 피에르의 선택이 맞다 혹은 틀리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정답은 없는 것 같거든요. 자신이 생각했던 상황에서의 최선이었을테니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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