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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가업명맥' 하나로 버텼는데… 은퇴 앞둔 5060 창업세대 '기업 대물림' 시름

상속세가 무서워진 5060 창업자들… “대 끊기는 것 보다 기업명줄 끊기는 게 더 가슴아파”

입력 2019-07-04 07:00   수정 2019-07-03 14:53
신문게재 2019-07-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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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하면서 한 번도 탈세나 체납 없이 할 도리를 다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죽어서 까지 세금을 물어야 합니까? 제가 일군 정당한 부(富)를 국가가 무슨 권리로 절반이나 떼어가려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사업의 ‘대’가 끊기는 것 보다 ‘기업 명줄’이 끊기는 게 더 가슴 아픕니다.”


30년 가까이 중소 제조업을 일궈 온 김경철(가명) 사장은 요즘 자식 같은 회사를 내다 팔까 고민 중이다. 정부가 최근 관련제도를 손봐 가업상속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했다고 들었는데, 막상 세무사를 통해 가업승계 절차를 밟으려다 보니 터무니없는 상속세 때문에 이도저도 못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5060 창업 세대들이 기업 대물림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가업 물려줄 시기 직면한 5060 기업인들

 

가업승계 6 가업승계협의회 중기중앙회 코아스 방문
가업승계협의회가 중기중앙회와 함께 진행하는 가업승계 업체 방문 행사 모습.

 

최근 한국 중소·중견 기업계에선 세대 교체 바람이 거세다. 창업 혹은 가업상속을 통해 기업을 일궈온 베이비 부머 기업인들이 60대로 접어들면서 어느 덧 은퇴를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활동 중인 기업 가운데 60대 이상 CEO 기업이 전체의 23% 수준인 140만 곳에 육박한다. 한국기업데이터 분석을 보면, 창업자가 CEO인 국내 5만여 기업들 가운데 CEO 나이가 60대 이상이 33%, 50대가 45% 수준이다. 은퇴를 앞둔 CEO 비중이 80%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기업하는 경영자 가운데 열이면 열 모두 “사업하면서 꼬박꼬박 소득세 떼어 가면서, 어렵게 일군 재산을 후대에 넘겨줄 때 또 엄청난 세금을 떼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불만을 터트린다. 한 기업인은 “아마도 기업들이 국가 주도 경제성장기에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 이만큼 컸으니, 이제 토해 내라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나라는 또 소득세보다 상속세 세율이 훨씬 높아 ‘징벌적 이중과세’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OECD 회원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상속세 최고세율(27%)이 소득세 최고세율(평균 36%) 보다 한참 낮다. 반면에 한국은 세계 최고 상속세율에 소득세율까지 계속 높아지는 유일한 나라다. 많은 나라들이 상속세율을 낮춰 소득세율과 차이를 좁히고 있지만 우리만 예외다.

 


◇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 포기도

 

가업상속 1
정부는 지난 6월 가업상속제를 손보겠다고 발표했으나 기업 상속에 따르는 막대한 세금 문제에 관해선 명확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했다. (사진=연합)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중견기업의 85% 가량이 가업 승계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70% 가량이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외환위기에 금융위기까지 거치며 때로는 사재까지 털어 어렵게 기업을 이끌며 ‘사업보국(事業報國)’에 기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세금이라는 벽 앞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숨이 막힐 정도다. 1억 원 이하의 경우 10%지만 누진세율이 부과되어 30억 원 초과 시 50%가 적용된다. 여기에 경영권 지분에는 최고 명목세율 65%가 적용된다. 최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의 LG 가문은 무려 1조 원에 가까운 상속세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효세율 역시 30%에 육박해 20% 언저리인 미국이나 독일 등에 비해 훨씬 높다. 상속세 부담이 워낙 크니 기업을 물려주려 하는 사람도, 물려 받아야 하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 나라들은 상속세가 원래 없다. 호주와 캐나다는 1970년대에 일찌감치 상속세를 없앴다. 대신 기업을 팔아 자본이득이 생길 때 자본이득세를 내도록 했다. 경영권을 보장해 주되 기업을 포기할 경우 세금을 부과토록 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뉴질랜드도 80년대 이후 상속세를 없앴고, 포르투갈과 멕시코 오스트리아 체코 노르웨이 등도 21세기 들어 속속 상속세를 폐지했다. 

 


◇ 5060 기업인들 “창업 가치 인정해 달라” 

 

,가업승계 5
현대모비스 등 대기업들은 협력사의 기업승계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차세대 경영자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5%로 꽤 높다. 하지만 각종 공제혜택을 통해 실효세율을 13% 수준까지 낮췄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신사업승계제도’ 도입하고, 향후 10년을 ‘사업승계 실시 집중기간’으로 정했다. 손자 세대까지 기업이 유지될 경우 세금을 아예 면제해 준다. 가업 상속공제제도의 사후관리 기간도 5년으로 대폭 줄여주었다.

가족기업이 많은 독일도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명목세율은 30%다. 실효세율은 22% 수준이다. 경영권 지분에 대한 징벌적 과세도 없다. 더욱이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는 배우자에게 가업을 물려주면 상속세가 아예 없다.



한국에도 상속세 공제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너무 비현실적이다. 대상 기업이 연간 100곳도 안되어 실효성 논란이 일자 정부가 지난 6월 세제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9월쯤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업상속공제 시 업종·자산·고용 유지 의무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는 등의 완화책이 기업들 기대에 찰 리가 없다. 공제 대상과 한도 확대 없이 변죽을 울린 대책이란 비판만 받았다.

기업인들은 공제 혜택 대상을 매출 3000억 원 미만에서 5000억 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고, 공제한도도 500억 원에서 더 늘려줄 것을 요구해 왔다. 1999년 이후 20년째 제자리인 과세표준 구간도 바꿔, 현재 30억 원인 최고 구간의 상향 필요성도 촉구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들이 개술개발과 투자에 집중하고 고용을 유지하려면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하소연이다.

국내에는 ‘명문장수기업’이라는 특례 제도도 있다. 45년 동안 사업을 계속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성실납세 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지정된다. 하지만 선정된 기업들에게는 중기부 지원사업 신청 시 일부 가점 특혜가 부여될 뿐, 장수기업으로 이끌 만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정길준·유승호 기자 alf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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