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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R&D 삭감에 이공계 연구 현장 “풀이 죽었다” 반발 확산

“과학계 협의 없이 졸속 추진…이해하기 어려워”
정부 출연연 1200여명 일자리 위기…공공적 연구도 위축 가능성

입력 2023-09-26 16:32
신문게재 2023-09-27 4면

이종호 장관, 정부 연구·개발 제도 혁신방안 발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

 

대규모 R&D 예산 삭감에 과학계는 당황해하며 술렁이고 있다. 연구인력 이탈과 연구과제 중단, 기초과학 기반 약화, 이에 따른 미래첨단기술 확보 지연 등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학계·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현장에서는 ‘풀이 많이 죽었다’는 분위기다.



한 이공계대학의 교수는 “풀이 죽은 느낌이다. 올해에는 지난해 지원했던 과제들도 안 된 경우가 많아 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런데 올해는 아예 대놓고 (내년 예산을)자른다고 하니까 풀이 죽은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인건비도 줘야 하고 장비값도 올라 연구실이 유지가 될까 걱정”이라며 “연구비가 없으면 연구가 불가능해 증액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공계대학 교수는 예산 사용에 있어 일부 비효율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예산 감축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어 과학·기술계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예산 감축에 대해)딱히 이유를 알 수가 없고 국제협력을 하라고 하는데 갑자기 (기한을) 이틀, 하루 주고 보고서 내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감축 예산)양 자체를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들은 전무후무한 일로 사실 엄청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과학자, 공학자들은 납득이 되면 하는 사람들인데 납득이 잘 안 되고 있다”며 “논의가 필요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급하게 추진되는 것 같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학계뿐 아니라 정부 출연연구기관에도 대규모 R&D 예산 삭감의 후폭풍이 예상됐다.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은 정부 출연연구기관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내년 예산안이 확정될 경우 박사후과정(포닥)·학생연구원 등 연구인력의 자리가 약 1200여개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추산도 지난 25일 내놨다.

정 의원에 따르면 출연연 연수직 연구원은 포닥과 학생연구원, 인턴으로 구성된다. 현재 25개 출연연에 포닥 1087명, 학생연구원 3089명, 인턴 715명 등 총 4891명이 일하고 있다. 연수직 연구원의 인건비는 출연연 주요사업비에서 지출되고 있다.

정부 예산안을 보면 내년 25개 출연연의 주요사업비는 올해보다 평균 25.2% 삭감됐다. 정 의원은 연구기관별로 예산삭감을 반영한 내년도 사업·연구인력 운용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삭감 폭을 고려한다면 최소 1200여명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추산했다.

과학 관련 단체들의 대정부 대응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과학자·공학자·기술자·과학기술정책 연구자·과학교사 등이 참여하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라는 단체는 26일 국가 R&D 정책 대정부 공개 질의서를 공개했다. 이 단체는 8개월 동안 수렴된 예산안이 한 달 반 만에 급작스럽게 대폭 수정돼 R&D 예산 정책 수립 과정에 의문이 있다며 정책 수립 과정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정부가 주장하는 ‘R&D 카르텔’의 실체는 무엇이냐며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카르텔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며 정책 추진 근거 투명성에 대해 질문했다. 이어 정책 파급영향과 추진 효과, 국정관리체계 혁신 의지 등에 대해 정부에 질의했다.

한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공익적이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연구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원은 “출연연의 경우 포닥이나 젊은 연구자들이 많이 나갈 것 같고 과학기술계가 산업, 기술 중심이어서 공공적인 연구의 예산이 깎이게 된다”며 “소외받았던 분야나 꼭 필요한 분야의 예산의 줄지 않도록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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