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전체보기

닫기
더보기닫기

[브릿지 칼럼] 아파트의 재구성

입력 2024-03-18 14:03
신문게재 2024-03-18 19면

전영수 교수
전영수 한양대국제대학원 교수

아파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 단어다. 50~60년 전 수입된 낯선 영어인데, 지금은 필수불가결한 보통명사가 됐다. 하루에도 수십번 입에 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귀가공간(집)과 차익욕망(돈)이 뒤섞인 단어다. 집을 말하면 돈부터 떠올리는 한국형 흥망성쇠가 녹아든 답답하고 어지러운 시대화두가 됐다.


한국은 웬만하면 아파트로 다 통한다. 입지·평형·메이커·소유권만 알려줘도 좋든싫든 금전기준의 줄세우기는 끝난다. 사건사고를 포함한 새로운 시대현상도 아파트만 넣으면 얼추 정리된다. 절대다수가 아파트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다. 아파트에 살건 안살건 아파트는 현실과 지향을 잇는 욕망실현의 사다리로 인식된다. 최소한 경제적 계층이동의 낯익고 강력한 점프수단을 꼽으면 아파트만한 설명변수도 없다. 특히 상대적 취약계층인 청년에게 아파트는 십중팔구 갈등씨앗이다. 부모찬스 없는 눈앞의 아파트란 결혼·출산의 가족분화라는 본능 실현을 가로막는 최대 허들인 까닭이다.

실제 아파트만큼 한국인의 복잡한 심정이 오버랩된 대상도 없다. 좋든 싫든 한국사회의 흥망성쇠부터 개별인구의 생사고락이 한껏 묻어난 현상발현의 원류지점이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앞으로도 아파트란 애증공간의 무게감과 영향권이 계속될까의 물음이다. 원래 아파트는 인구이슈와 직결된다. 부머집단이 불지핀 자연 증가의 거대인구를 수용할 효율·경제적인 주거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산어촌의 로컬인구가 도시·현대·공업화로 서울·수도권에 몰려드는 사회이동까지 가속화되며 한정 공간의 압축·고밀주거의 결과가 아파트다.

뒤집으면 고작해야 1970년대부터 아파트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지금은 ‘집=아파트’의 등식일 정도로 일반화된 상식수준이나, 그 역사는 짧다. 아파트 전성시대를 열어준 건 1989년 분당, 일산 등 제1기 신도시로 이해된다. 그만큼 서울공간에의 수용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인구공급이 반복됐다. 평형구성도 이른바 표준가족(부모+자녀 2인)에 최적화된 설계가 선호됐다. 본격화된 핵가족의 욕구·취향을 품어내는 구조진화도 가시화됐다. 이후 아파트 일변도의 집합주택은 한국의 주거스타일을 상징하는 대푯값이 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대전제인 인구공급이 멈춰섰다. 더 정확히는 줄어들기 시작한지 벌써 4년차다. 인구감소 속 핵개인의 1인화도 신트렌드로 안착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파트의 결정·파급력은 계속될까. 아파트 패러다임의 변화를 조심스게 떠올리는 이유다. 최소한 지금의 아파트와 같은 표준·획일성은 수정 대상이다. 사람만큼 다양한 색깔을 반영하는 게 좋다. 궁극적으로는 비중감소다. 고성장기의 주거준칙이던 고밀·압축형 아파트는 줄어들 확률이 높다.

부수단·거래대상으로서 아파트의 존재가치는 저하·상실될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가 강력한 신호다. 가족변용조차 본격적이라 주거공간의 재편흐름은 회피하기 어렵다. 결국 ‘아파트=인구+가족’. 인구·가족의 드라마틱한 변화야말로 아파트의 고정관념이 통하지 않음을 설파한다. 청년이 엄마아빠가 될 기약이 없는데 아파트를 살 이유는 없다. 연 100만명이 사라지는 시대가 시작된다. 반면 아파트는 여전히 권력·질서로 추앙되며 시대변화에 맞선다. 강조컨대 그럼에도 불구, 아파트의 재구성에서 비켜설 묘책은 없다.

 

전영수 한양대국제대학원 교수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