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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꿈 이뤄준 키다리 아저씨

입력 2024-03-28 14:18
신문게재 2024-03-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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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피아니스트 이혁은 2022년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이후 21년만에 한국인 우승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한 기업인이 있었다. 두산연강재단 박용현 이사장. 그는 이혁을 오랜 기간 후원한 키다리 아저씨다.

3세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한 음악신동 이혁은 12살에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했다. 베스트 협연상까지 수상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2014년 13살의 나이로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바토리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박용현 회장은 대학 졸업까지의 장학금과 콩쿠르 출전비, 생활비 등 유학비 전액을 후원하기로 한다. 후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혁은 열심히 공부했고 마치 날개를 단 듯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혁은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해 또다시 1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다. 제8회 모스크바 베토벤 페스티벌 실내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또 2021년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해 3차에 걸친 경연 끝에 결선에 진출한 12명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연주자로 자리 잡았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한 세계3대 음악 콩쿠르다.

이혁의 날개짓은 계속되었다. 이후 2021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결승 진출했고, 2021년 프랑스 파리 아니마토 콩쿠르 쇼팽 에디션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던 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그간 공부해온 모스크바를 떠나 2022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지금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면서 뛰어난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있다.

모든 교육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음악교육은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뛰어난 재능을 꽃 피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처음 이혁의 장학금 지원을 약속할 당시 박용현 회장은 “이혁 군이 나중에 얼마나 훌륭한 음악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이혁 군의 꿈을 최대한 펼쳐보는 것”이라며 “그 꿈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이혁의 내한공연이 있을 때마다 가장 큰 박수를 치며 응원한다. 조건 없는 예술후원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족 하나. 가끔 예술인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양보할 수 없는 예술성에 대한 확신과 견고함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최근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혁에게 공연 관련해 이메일로 소통한 적이 있다. 외국에서 10대를 보낸 청년이 이토록 어른스럽고 정중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겸손하고 분명한 의사표현에도 교육을 잘받은 티가 났다. 이 공손하고 똑똑한 청년 피아니스트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박용현 회장이 왜 이 예의바른 젊은 피아니스트를 오랫동안 후원해왔는지 그 이유를 더욱 알 것만 같다.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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