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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구암동고분군 1호분, 학술 가치 높아

영남지역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구조

입력 2016-01-25 18:56

대구 북구 구암동고분군 1호분, 학술 가치 높아
구암동고분. (홍의락 의원실 제공)




346기가 분포된 대구 북구 함지산 자락의 구암동고분군은 ‘구암동식 고분’으로 불러도 될 만큼 학술 가치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신라와 가야권 등 영남지역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재)영남문화재연구원은 23일 구암동 산 74번지 발굴 현장에서 구암동고분군 1호분에 대한 2차 현장 설명회를 진행했다.

삼국시대 축조된 구암동고분군은 함지산 서남쪽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좁고 기다란 능선의 축을 따라 대형고분을 축조했다. 멀리서 보면 거대고분으로 보인다. 고분군과 팔거산성, 취락지가 한데 어우러져 삼국시대 이 일대 취락 경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복합유적이다. 불로동, 성산리와 함께 대구에 현존하는 삼국시대 3대 고분군 중 하나다.

(재)영남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발굴조사 결과 구암동 1호분은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출토된 은제 관모 장식과 은제 대금구 등의 출토상황을 주변 지역의 고총과 비교해 볼 때 무덤 축조 당시 피장자의 금동관을 보유한 칠곡지역 일대의 지배자 집단의 무덤 가운데 하나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구암동 1호분은 축조 시기가 서로 다른 3기로 나타났다. 무덤 주체부의 배치 양태는 남분(Ⅰ-1호분)과 북분(Ⅰ-2호분) 모두 주곽과 부곽이 ‘11자’ 형태로 배치된 수혈식석곽이다. 봉분의 축조 방식은 흙 대신 돌 위주로 쌓아올린 ‘적석봉토분’이다. 석곽은 봉석을 채워가며 지상식으로 축조했다. 이 축조방식은 신라와 가야권의 영남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특이한 구조다. ‘구암동식 고분’으로 설정해도 무방할 정도라는 것이 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장신구를 포함한 금속류 등이다. 토기류는 장경호, 단경호, 직구호, 고배, 기대 등 삼국시대 토기 60여점이다. 금속류는 장신구인 은제 관모장식, 은제 어리띠장식, 은제 칼자루 장식 등과 함께 재갈, 도자, 꺽쇠, 모형상철기 등의 유물이 함께 나왔다.

하지만 구암동고분군은 도굴로 인해 출토유물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Ⅰ-2호분의 북분은 전체가 도굴돼 출토유물이 토기와 금속 조각 일부만 확인됐다. Ⅰ-1호분의 남분 역시 주곽과 부곽이 도굴됐지만 다행히 단벽측이 도굴 전 붕괴해 토기와 철기는 원래의 모습이 남아 있다. 남분과 연접한 Ⅰ-3호분도 도굴돼 출토 유물은 토기 몇 점이 전부이다.

이날 현장 설명회에 참석한 대구한의대 김세기 명예교수(대구한의대 명예 박물관장)는 “구암동고분군은 이 지역만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사적으로 지정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국회의원(대구북구을지역위원장)은 설명회에 참석한 뒤 “현재까지의 성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구암동고분군을 통해 100만 관광객 유치, 100년의 먹거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관광자원화 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 김종현 기자 gim139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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