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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아랑가’의 악마와 마녀, 친구 같은 선후배가 되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강필석·자야 최연우

[Pair Play 인터뷰]

입력 2016-12-1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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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너무 급하지 않아도 돼.”



7년 전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이하 번점) 트라이아웃 공연의 인우와 태희로 처음 만난 대선배 강필석이 건넨 이 한마디를 최연우(최주리)는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겨우 스물다섯 2년차 뮤지컬배우로 무대에 오르던 때였다. 게다가 강필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의 전설처럼 회자되던 대선배였다.

“졸업하고 천천히 해도 된다는 말을 2년만에 처음 들었어요. 뮤지컬을 하기에는 제가 가진 호흡이 너무 느렸어요. 그래서 어딜 가나 빨리 하라고 엄청 혼났죠. 음악과 큐를 맞추기 위해 뇌 없는 연기를 하다 오빠를 만났어요.”

마치 고해(?)와도 같은 최연우의 고백에 강필석이 “고집을 피웠어야지, 느림의 미학”이라고 응수한다.


◇느린(?) 두 사람, 벌써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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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 강필석.(사진=양윤모기자 yym@viva100.com)

 

“사실 제가 느려요. (최)연우가 하는 말이 뭔지 다 이해해요. 저 역시 빨리 하라는 얘기를 누구보다 많이 들었을 거예요.”

강필석은 출연한 모든 공연의 최장시간 러닝타임을 자신이 찍었다며 “장르마다 다른 것 같다”고 설명한다.

“쇼뮤지컬은 0.1초 차이로도 에너지가 떨어지느냐 마느냐 결정되니 속도를 맞춰야 하죠. 하지만 드라마가 쫀쫀한 작품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그 시간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느린 두 사람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2017년 1월 22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이하 나나흰)의 백석과 자야로 만났다. ‘번점’의 인우와 태희, ‘아랑가’의 개로왕과 아랑에 이어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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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관객들이 느껴야하는 작품들이 있어요. ‘나나흰’, ‘번점’은 밀도 있는 작품이지만 대단한 폭죽을 터뜨리는 작품이 아니잖아요. 텍스트가 막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우리 둘 사이의 공기가 안 느껴지면 너무 지루한 작품이죠.”

백석 강필석의 말에 자야 최연우는 “그래서 저는 너무 좋아요”라며 웃는다. ‘나나흰’은 시인 백석(강필석·오종혁·이상이)과 자야(최연우·정인지)의 가슴 먹먹한 사랑이야기로 백석의 시로 넘버를 꾸린 작품이다.

“여기서는 이런 걸 하면 좋아하지 등의 테크닉적인 걸 생각 안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아요. 연기력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지금 이 사람과 나, 그 순간이 너무 중요한 작품이거든요.”

‘나나흰’의 백석과 자야는 캐릭터지만 배우 본연의 색이 물씬 묻어나 전혀 다른 인물로 발현되곤 한다. 백석과 자야는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내(안재영·유승현) 역시 전혀 다른 매력으로 무장하고 무대를 누빈다.

“관객한테 친절하지 않을 수 있는 연기기 때문에 불안감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연습하면서 백석과 사내 오라버니들이 두려움을 떨쳐내게 용기를 주셨어요.”


◇위인전문 배우? 강필석, 사랑꾼 최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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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가스펠’에 이어 ‘마리아 마리아’만 하면 예수 역할도 그랜드슬램이에요.”

‘아랑가’의 개로왕, ‘곤투모로우’의 김옥균 그리고 ‘나나흰’의 백석 시인까지, “위인전문 배우냐”는 질문에 두 사람이 아이처럼도 웃는다. 상상만으로도 할 수 없고 다큐멘터리처럼 진실만을 따를 수도 없는 어려운 연기에 강필석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나는 지금 판타지니까 판타지처럼 연기해야지 할 수는 없잖아요. 연출과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아요. 다만 내가 이 사람한테 진짜 얘기를 하는 건지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건지 허공에 얘기하는 걸 이 사람이 듣는 건지는 고려를 하죠.”

현실과 현실이 아닌 세계의 경계에 선 인물, 최근작 ‘안녕, 여름’을 비롯해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신보), ‘번점’까지 최연우 역시 그렇다. ‘번점’의 태희나 ‘여신보’의 여신, ‘안녕 여름’의 여름 등은 직접 무대에 오르는 시간보다 다른 이들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은 캐릭터들이다.

“드문드문 나오니까 어렵기도 해요. 무대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정을 타고 올라가는데 저는 무대 아래에 있다가 한껏 오른 감정에 나타나야 하니까요. 그들의 감정과 에너지는 이만큼 올라왔는데 저만 0이면 안되니까…뒤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어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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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 강필석.(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곤투모로우’, ‘나나흰’과 더불어 ‘씨왓아이워너씨’까지 세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던 강필석은 “지금은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털어놓았다.

“하나 같이 감정소모가 심한 캐릭터였어요. ‘나나흰’도 그렇긴 한데 연우 양이 연기하는 자야의 감정소모가 더 크고 백석은 그래도 좀 덜 하거든요.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기분도 되게 좋아요. ‘곤투모로우’는 뭔가 아주 마음이 무거워지잖아요.”

강필석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곤투모로우’의 시대와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돼 힘겨웠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초반에는 잘 몰랐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지루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그런데 공연하면서는 제가 그 시대를 산 사람도 아닌데 울컥하고 화가 막 치밀어 오르고 갑자기 눈물이 나고…. 중반부에는 좀 덜하더니 막바지에는 또 너무 뜨거워지더라고요. 지금 이야기같아서.”

눈물겹다 못해 비정하기까지 했던 짝사랑, 충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파멸로 치닫는 개로왕과 그의 사랑으로 괴로운 아랑으로 분했던 강필석과 최연우는 ‘나나흰’에서도 애틋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만났다.

“만나지 못하는 사랑, 일방적인 짝사랑, 그건 오빠 전문 아니에요? 거기에 제가 딸려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나나흰’에서는 저 혼자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백석들이 너무 좋아요. 그냥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전작 ‘안녕, 여름’에서도 남편을 너무 좋아해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하는 아내를 연기했던 최연우는 ‘아랑가’의 도미 부인 이후 벌(?)을 받는 것처럼 상대방을 지고지순하게도 사랑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역할을 많이 제안해주시고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감정 블록버스터 ‘아랑가’, 독립영화 ‘나나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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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비교할 수가 없어요. 개로나 아랑은 담백한 감정이 없었어요. 생각해서 깊이 담는 감정이 아니라 막 쏟아 부었죠. ‘나나흰’은 멀리서 서서히 오는 감정들이잖아요. 감정적으로만 얘기하면 ‘아랑가’는 블록버스터고 ‘나나흰’은 독립영화예요.”

개로왕 강필석이 가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웠다면 아랑은 자신으로 인해 남편의 눈이 뽑히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 등을 지켜보며 단장(斷腸)의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살면서 절대 겪을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이잖아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20분 정도는 멍하니 앉아 있고서야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도 피폐해졌었죠. ‘나나흰’도 우는 정도는 똑같은데 해탈과 행복함의 경지 안에서 끝나니까 끝나고 나면 풀어져요. 다 쏟아낸 느낌이죠.”

극은 고향, 자야의 유년시절과 기생으로서의 위치, 자야의 또 다른 결혼 등 픽션과 넌픽션이 섞여 있다. 이는 연습 초반 배우들의 고민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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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어디까지를 진짜 백석과 자야로 생각해야 하응디 애매모호했어요. 그냥 자야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닌가도 했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싹 걷어버리고 자야가 이 사람(백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만 집중했어요. 자신을 가장 뜨겁게 해줬던 사람과 사랑의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붙잡고 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 사랑이 커지면서 버틸 힘이 생기는 거죠. 저 여자가 저렇게 사랑했고 그래서 삶의 전부가 됐구나 싶었어요.”

이에 최연우는 여자로서 자야가 겪었을 풍파를 표현하기보다 ‘삶의 끝자락에서의 성장’에 주목했다.

“자야라는 인생의 책을 적어내려 가는, 하나하나 내려놓는 장면의 나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끊임없이 붙들고 살던 것을 놓을 수 있는 순간 가장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죽을 때까지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거 자체가 부럽고 경외스러웠어요. 모든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는 뜨겁지만 사랑의 연장은 노력이잖아요. 이 여인은 살면서 끊임없이 노력해온 거예요. 정말 존경할만하죠.”

그렇게 백석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쌓임 없이 풀어내는데도 그 여운은 회를 거듭할수록 더 커져만 간다.

“집에 갔을 때 허함은 ‘아랑가’보다 ‘나나흰’이 더해요. 전 열심히 백석들을 사랑하고 있는데 집에 있으면 그 사랑했던 순간들이 정말 꿈같아서 되게 허해요.”

그래서 요즘은 매일 밤 ‘혼술’(혼자 술마시기)이다.


◇8살 차이 선후배, 7년 세월 보내며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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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같은 선후배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밤에 카카오톡으로 괴롭혀요. 저는 일상적인 안부를 묻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긴 얘기를 하고 저는 그냥 잡니다.”

연습 초반 최연우는 자야의 실제 나이에 맞게 외양을 바꾸거나 지나치게 질펀한 기생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극 중 젊은 백석과 나이든 자야의 재회장면이 너무 독해보이거나 초라해 보일지도 몰라 고민하고 있는 최연우에게 강필석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조언 대부분은 공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시시때때로 카카오톡으로 극과 연기, 캐릭터에 대한 조언을 주는 강필석에 요즘도 최연우는 밤늦게까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캐릭터, 공연 자체에 뭐가 더 좋지 않을까 제안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오빠가 카카오톡을 보내면 전 고민에 빠져요. 어떨 땐 잔소리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서 투정을 부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저와 작품에 애정이 있어서 해줬다는 걸 너무 잘 알겠어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제가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대꾸하는 최연우에 강필석이 헛웃음을 치며 “생각보다 나이차가 많이 난다”며 웃는다. 그제야 두 사람의 나이차가 8살이나 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학교 후배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한번도 보지못했을 만큼 까마득한 후배다. 

최연우가 배우생활을 시작하고서야 만난 두 사람은 최연우의 말대로 “정말 하늘같은 선배님”이었다가 강필석의 표현처럼 “친구”가 된 선후배다.

“‘아랑가’를 하면서 오빠는 남자 악마, 저는 마녀 였어요. 그러다 보니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이것저것 오빠한테 기댄 것도 많았어요. ‘나나흰’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더 많이 의지하게 되고….”

2010년 여름 뮤지컬 ‘번점’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처음 만나 ‘아랑가’, ‘나나흰’을 함께 하며 쌓인 세월이 7년이다.

“진짜 애기였어요. 저는 (인우로서) 차원을 초월하는 광적인 사랑을 해야 했죠. 애기가 왔네 했는데 연기는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아주 즐겁게 작업했죠.”


◇‘디테일’에 목숨 건 ‘아랑가’의 악마와 마녀, ‘나나흰’은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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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 강필석.(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작품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아랑가’의 악마와 마녀로 군림(?)한 이유에 대해 최연우는 한마디로 해명했다.

“작품이랑 닮아가는 것 같아요. ‘아랑가’는 감정들이 세고 즐거운 상황이 없는 작품이었어요. 감정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부분은 해결을 하고 가야 했거든요. 저 뿐 아니라 모두가 납득이 안되는 부분을 그냥 넘기질 못해요. 막힌 걸 해결하고 이해돼야 넘어가는 스타일이죠.”

누군가 강필석을 두고 ‘세상 진지한 배우’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래서지 싶다. 그 표현에 강필석은 “어렸을 때는 세상 진지한 배우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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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세상 디테일한 배우죠.”

최연우가 살갑게도 표현을 덧붙이며 “지금은 되게 많이 유해진 것”이라고 귀띔한다.

“어렸을 때는 엄청났어요. 예를 들어 테이블 위에 펜이 비스듬히 있으면 왜 이렇게 놨을까를 고민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지금 여기서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보여지는 것 보다는 내면의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강필석의 결론대로 “억지로 연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기꺼이 악마가 되고 마녀가 된다.

감정 표현의 ‘디테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사람이 ‘나나흰’에선 첫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갈팡질팡했다고 털어놓았다.

“텍스트(대본)를 볼 때도 그랬고 연습을 하면서도 형식 자체가 엄청난 서사로 가는 작품이 아니라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에 대해 저도 계속 물음표였어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닐까? 왔다 갔다 했거든요. 가령 어떤 노래를 하는데 ‘포크를 들고’ 라는 가사가 있으면 당연히 포크를 들고 행동하는 게 맞는데 이 작품에서는 드는 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본능적으로 안드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안드는 게 더 많은 걸 툭툭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말한 강필석은 “백석이나 자야 라는 사람을 리얼하게 표현한다는 것조차도 누군가의 생각이 들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었을 때와 젊었을 때를 넘나드는 자야 역시 외양적 변화나 연기적인 테크닉이 들어가는 순간 다 깨질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텍스트가 너무 좋아서 잘 흘려만 보내줘도 좋겠다 싶었어요. 디테일하게 뭔가를 하는 거 자체가 오히려 실일 것 같은 작품이었죠. 현실감이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 너무 디테일한 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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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이는 ‘세상 디테일한’ 강필석 뿐 아니라 최연우의 고민과도 일맥상통했다.

“극이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갈피를 못잡았어요. 감정은 너무 리얼한데 표현이 판타지다 보니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 됐죠. 정말 리얼하게? 오빠가 그건 아니다 라고 했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공연 1주일 전까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갈피를 못잡았죠.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내가 이렇게 멍청한가?’ 싶었던 연습기간은 처음이었어요.”

첫 연습에서 ‘나나흰’에 대해 “자야의 작품”이라고 했던 강필석의 말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야에 불쑥불쑥 나타나 감정을 내던지는 이는 백석이었다. 별다른 행동없이 앉아 있다 그 백석이 던지는 감정에 반응하고 정서의 결을 맞춰야 하는 자야는 남성 연기자 중심으로 재편된 근래 공연들 중 보기 드문 여자 캐릭터다.

“연우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백석이 뭔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지만 온전히 자야의 작품이어야 했거든요. 제(백석)가 막 뭔가를 하고 이 사람(자야) 눈빛을 봤을 때 정서를 따라갈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첫 공연 일주일 전까지도 갈팡질팡하던 최연우는 어느 순간 “이게 내 판타지면 안될 게 뭐가 있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야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결국 흰머리, 주름 등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백석과 자야, 둘 사이의 그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데 연습기간 대부분을 헌납했지만 그 대가는 강필석도 “놀랐다”고 할 만큼 꽤 훌륭했다.


◇7년만의 첫 칭찬,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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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오빠가 되게 부드러운 말을 많이 해주는 것 같지만 냉정한 선배예요. 드라마를 명확하게 볼 줄 아시는 분이고 단순한 선택을 하는 걸 원치 않아하시죠. 오빠랑 7년째 3작품을 같이 했지만 한번도 칭찬을 해준 적이 없어요.”

‘아랑가’ 때도 지인들의 말을 빌어 “너 잘한대”라는 전언이 전부였다. 그런 강필석이 ‘나나흰’을 하면서 “너무 잘했다”고 첫 칭찬을 했다는 데 최연우는 감격했고 또 감동받았다.

“‘나나흰’을 하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했고 가장 많은 공유를 했어요. 처음으로 오빠가 ‘연우야 정말 잘했어’라고 해주시는데…오빠는 그게 7년만인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너무 존경하는 선배고 배우이자 파트너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해주니까 그 어떤 사람이 해주는 칭찬보다 뜨거웠죠.”

지인들에 의해 강필석의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불린다는 최연우는 강필석의 생일에 축하 문자를 보내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자야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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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자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그저 영광이죠. 같이 연기를 한다는 거 자체로도. 같이 작업하면서 배울 수 있는 선배잖아요. 예민하기는 하지만 다 이유 있는 예민함이고 이 사람이 계속 무대 위에 불려올려지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대 위에 있는 선배를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어요. 관객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무대에 같이 서는 배우가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 있음을 서로 느낄 때 정말 행복하죠.”

마냥 행복하다는 최연우는 ‘나나흰’에 대해 “함께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중요한 공연”이라고 표현했다.

“같이 하고 있는 배우들이 너무 좋아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공연이죠. 사내들, (안)재영·(유)승현 오빠랑도 사내의 존재 이유에 대해 되게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자야가 백석의 시를 통해 알지 못하는 삶을 유추해내고 내 방식대로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게 사내니까요. 사내를 통해 백석을 보기 때문에 저한테는 사내들이 너무 중요했거든요.”

함께 하는 것이 좋아 커튼콜까지 끝낸 후에는 어김없이 백석, 자야, 사내가 서로를 끌어안고 행복을 만끽하곤 한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무대 뿐 아니라 밖에서도 공유돼 이 공연이 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백석의 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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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저는 시나 넘버나 ‘어느 사이에’가 가장 좋아요. 이 넘버는 첫 리딩날부터 울컥했어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는지…시가 주는 어마무시한 무게감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첫 리딩에서 울컥하기는 또 처음이었죠. 너무 궁상맞은 생각이 들어 둘러보니 (오세혁) 연출님도 울고 계시더라고요.”

배우가 아닌 음악감독이 부르는 곡에서도 눈물을 쏟았다는 최연우는 “이 곡은 강필석을 위한 노래”라고 표현했다.

“처음 듣자마자 상상이 되는 거예요. 오빠 목소리가 계속 들렸죠. 이 노래를 빨리 강필석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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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 강필석.(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강필석이 이 곡을 처음 불렀을 때는 그의 이런저런 조언에 최연우가 울며불며 투정을 부린 직후였다.

 

“삐져 있는 상태에서 (정)인지 언니랑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하는 연습)하는 걸 지켜봤다”는 최연우의 말에 강필석이 “다 풀어주고 들어갔는데 왜?”라고 반문한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구석에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앞에 가서 보고 있더라고요. 이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좋구나 했죠.”

강필석은 가장 좋은 넘버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꼽았다. 극 중 유일하게 부분이 아닌 전체를 읊는 시이기도 하다.

“멀리멀리 가다가 자야랑 단상에서 탁 만나는 그 순간은 계속 소름이 끼쳐요.”

말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고 팔을 훑는 강필석에 “죽어가는 끝자락에서 이 여인(자야)이 ‘나타샤’로 불리기를 너무 원했구나 생각했다”던 최연우는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가자고 하고는 아무 말 않다가 ‘나타샤’ 불러주는데 이 여자가 ‘나타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여지껏 붙들고 살았구나 싶어서 너무 행복한 거예요. 자야 여사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고….”

끝내 최연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백석이고 자야여서 행복한 2016년의 끝자락, 2017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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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과 자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필석(왼쪽)과 최연우.(사진=양윤모기자yym@viva100.com)

 

“그 유명한 백석이란 분이 우리 기억 속에 돌아온 지는 얼마 안되셨잖아요. 자야라는 여자가 없었으면 이처럼 주목받았을까 싶기도 해요. 작품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죠. 자야라는 여인의 위대함 때문에 사실 되게 행복해요. 계속 이 사람이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요.”

강필석의 말에 겨우 눈물을 멈춘 최연우가 다시 한번 달뜬 목소리를 낸다.

“저 정말 열심히 사랑하고 있어요. 좋아 죽겠어요.”

2016년의 끝자락, 백석이고 자야여서 행복하다는 강필석과 최연우는 2017년에 대한 기대를 털어놓았다.

“올해는 정신없었지만 참 좋은 일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홉수였는데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좋은 한해였죠. 올가을 같이는 죽어도 못보낼 것 같고 조금씩 조절하면서 열심히 무대에 오를 거예요. 한해 한해 지나면서 오래오래 배우를 하고 싶은 게 꿈이 돼 가고 있어요. 내년은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한살 한살 먹을수록 더 즐거워지고 있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배우를 그만두려고 쉬기도 하고 온갖 발악을 해봤는데 그게 지나가니까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최연우는 “늘 2016년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016년은 유난히 바빴어요. ‘아랑가’ 때는 예민하고 극단적인 감정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죠. ‘안녕 여름’도 ‘국경의 남쪽’도 아픔을 가지고는 있지만 창작극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쇼케이스부터 함께 하는 창작극을 해보고 싶어요. 정말 즐거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오빠처럼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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