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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일상에서 수시로 만나게 되는 찰나들, 그게 바로 X ‘더데빌’ 조형균

입력 2017-02-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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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이지나) 연출님께서 원래는 딱 블랙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임)병근이 형은 순한 이미지이지만 크잖아요. (고)훈정이 형은 진하고…선이 굵거나 진한 이미지의 배우들이 화이트를 하니까요.”



이지나 연출의 뮤지컬 ‘더데빌’(2월 14~4월 30일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임병근·고훈정과 X-화이트에 트리플캐스팅된 조형균은 선한 이미지의 배우다.  

 

최근작 ‘구텐버그’의 천재작곡가 버드가 그랬고 ‘페스트’의 그랑, ‘난쟁이들’ 찰리, ‘젊음의 행진’ 경태, ‘여신님이 보고 계셔’ 한영범, ‘빈센트 반 고흐’의 빈센트 등 대부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거나 꿈을 좇는 캐릭터였다.

모차르트(허규·박유덕)에 대한 살리에리(최수형·정상윤)의 질투심을 부추기는 ‘살리에르’의 젤라스가 거의 유일한(?) 악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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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어요. 일단 잘생겼어요. 눈이 크죠. 도대체 저 깊은 눈으로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매력이 있죠.”


어쩌면 제 옷을 입은 듯한 역할이지만 ‘더데빌’의 X-화이트는 만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신과 사람, 선과 악, 같거나 다르거나…경계에 선 X들 

 

“저는 X-블랙이 X-화이트에서 빠져나온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더데빌’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Black Monday, 월 스트리트에서 하루 만에 다우존스 공업주 평균이 508포인트, 비율로는 22.6% 폭락한 사건) 당시의 뉴욕 월스트리트로 옮겨온 작품이다.

“선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탑재돼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X-화이트는 파우스트에 그냥 탑재된 존재인 거죠. 어려움을 겪으면서 X-블랙이 빠져나와 파우스트를 흔들지만 뭔가를 하기 보다는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랄까요.”

2014년 초연에서는 한 배우가 연기했던 원작의 신과 악마 메피스토를 재연에서는 X-화이트와 블랙(장승조·박영수·이충주)으로 분리해 표현한다. 하지만 이들은 온전히 같거나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선하거나 악한 것도 아닌 경계에 선 존재다.

더불어 촉망받는 주식브로커 존 파우스트(송용진·정욱진), 그의 아내 그레첸(리사·이하나·이예은)과도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표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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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는 관객들이 보기에 X-화이트가 신이었으면 좋겠어요. 조형균이 노래하는 느낌이 아니라 존이라는 인물이 X-블랙으로 인해 양심을 계속 저버리고 악한 길로 빠지다 보니 힘들어지는 그레첸의 마음을 대변하고 도와주는, 그런 존재요. 그래서 X들의 싸움에 집중하기 보다는 조력자 신분으로 접근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더데빌’은 선과 악, 인간과 신, 같은 혹은 다른 존재로 경계에 선 다양한 캐릭터들이 대사도 아닌 20곡의 노래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전달해야하는 ‘송스루’(Song 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 진행) 뮤지컬이다.

“X-블랙이 뭔가 강렬하다면 X-화이트는 한발 뒤에 선 느낌이에요. 록적으로 폭발하거나 웅장하다가 X-화이트가 등장할 때는 갑자기 현(악기)이 들어가요. 노래 자체가 영적이에요. 서정적이고 거룩해지죠.”


◇우리가 매일 고민하는 찰나들, 그게 바로 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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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선이라는 게 막연하잖아요. 사람마다 다르고…결국 선도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이잖아요. 예를 들어 예전부터 살인이 정당화됐다면 지금도 살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선이든 악이든 결국 인류가 만들고 지켜온 기준에 의한 분류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잖아요. 그 기준은 양심이죠. 예를 들어 길에 만원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어요. 주워가도 범죄는 아닌데도 사람들은 줍느냐 마느냐를 고민하잖아요. 그런 순간,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그 찰나가 善인 것 같아요.”

이에 조형균은 분위기는 음울하고 내용은 어려우며 주제는 무겁지만 그래서 ‘더데빌’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X-블랙이 존을 잠식하고 양심이 멍들어가면서 그레첸도 타락하죠. 우리 역시 나쁜 짓을 계속 하다 보면 맞다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중독되면서 기준이 흔들리고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선한 성향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난 1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알앤디웍스가 주관하는 2016 우수크리에이터 발굴 지원 사업 뮤지컬 인큐(人Cue) 쇼케이스 작품 중 해리성 정체감 장애(한 사람 안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정체감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질환)를 다룬 ‘세븐’ 무대에 서기도 했던 조형균은 “선과 악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도 일상에서 되게 많이 겪게 되는 게 비슷하다”고 털어놓았다.

“‘살리에르’ 초연에서는 젤러스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했어요. 당최 뭐가 서질 않는 거예요. 재연부터는 정형화된, 너무 티가 나는 악마는 안무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작 혼자 있으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거나 짜증이 날 때면 별 나쁜 생각을 다 하잖아요. 혼자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 순간도 분명 나에서 분리된 거라고 생각했죠.”


◇메시지 전달이 핵심 “너를 사랑함으로 인해 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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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대사가 거의 없는 송스루 작품이다 보니 노래와 음악 안에서의 동선으로 표현해야하죠.”

어려움을 토로한 조형균은 관객들이 X-화이트를 사람이 아닌 다른 차원의 존재로 믿게 하는 데 고민을 집중했단다.

“그러면서도 X-화이트가 관객 스스로의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면 흑인 신(모건 프리먼)이 굉장히 캐주얼하게 나오는데 어느 순간 그런 존재로 믿게 되잖아요. X-화이트 역시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노래는 확 바뀌었고 대본도 틈틈이 수정작업을 거쳤다. 무대 역시 전혀 다르게 꾸려진다. 그리고 조형균이 연기해야할 X-화이트를 비롯한 캐릭터들은 어느 하나 명료하지 않다. 그들의 감정 역시 모호하기만 하다.

“송스루는 정보전달이 제일 어렵고 중요한 것 같아요. X-화이트의 넘버는 이 극이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사들이 많아요. 시적이고 은유적이죠. 원작 ‘파우스트’랑 ‘더데빌’이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전하려는 메시지도 그렇죠. ‘파우스트’ 책을 보고 ‘더데빌’ 대본을 보면서 가사 전달을 진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어 “중간 중간 블랙과 대립할 때는 사운드가 정말 강렬하지만 사실 X-화이트가 인간이랑 싸울 일은 없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스스로 인간과는 다른, 하지만 인간 내면에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마인드 컨트롤 중이란다. 록, 클래식 등 여러 장르로 꾸린 넘버는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고훈정, 장승조 등의 배우도 어렵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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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음악이 드라마틱해요. 듣는 것만으로 그림이 그려지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데…X-화이트가 등장하지 않는 노래에서도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아요. 음악이 나오면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경건해지죠.”

조형균은 가장 인상적인 가사로 “내가 너를 사랑함으로 인해서 병을 얻었다”를 꼽았다. X-화이트가 그레첸을 다독이면서 부르는 넘버의 가사다.

“사랑하기 때문에 병을 얻었다는 그 말이 진짜 짠해요. 누굴 사랑하지 않으면 아플 일도 없잖아요. 그레첸은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인물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그레첸은 사람도, 여자도 아니에요. 저에게서 떨어져나간 아픈 손가락 같기도 하고…그레첸이 존 때문에 힘들면 짠해져요. 그래서 괜찮다는 위로를 계속 전하는 느낌이죠.”

이렇게 얘기해 놓고 득의양양하게 “기대가 좀 되시죠?”라고 반문하는 얼굴에서 수차례 선악을 오간다는 혼자 있을 때의 조형균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임병근·고훈정과의 차별화? 상대방과의 소통으로 캐릭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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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사실 훈정·병근이 형이랑 차별화된 노선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제까지 공연하면서 그렇게 가야지 한 작품이 없어요. 기본적인 노선과 약속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똑같이 팔을 들어도 배우마다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요.”


임병근은 큰 키와 굵직한 외양에서 오는 경외스러움이 있는 반면 고훈정은 어둡고 강렬한 느낌의 X-화이트다. 조형균은 “병근이 형은 그냥 등장만으로도 신이 오셨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 형이 초연을 했었나 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사실 저만 잘하면 돼요.”

X-블랙 역의 장승조·박영수·이충주는 조형균이 ‘더데빌’로 첫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다. 자신의 역할이 아닌 상대 캐릭터와의 대화로 인물을 완성시켜 가는 그에게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과의 작업은 설렘 그 자체다.

“상대방이 이런 말을 할 때 제가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장면을 분석하고 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편이에요. 제가 아무리 X-화이트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올라도 X-블랙이나 존, 그레첸, 코러스들이 저를 X-화이트로 바라봐주지 않으면 저는 그 인물이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X-화이트를 잘하려면 X-블랙을 정말 X-블랙처럼 대해줘야하는 거죠. 그게 잘 되면 관객들도 관계와 드라마가 보이고 굵직한 틀과 메시지에 집중하게 되죠.”

조형균의 표현을 빌자면 ‘병맛미가 충만한’ 2인 뮤지컬 ‘구텐버그’를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는 “자꾸 웃긴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며 “X-블랙은 망나니인데 말 정말 안듣는 아이”라고 표현했다.

“아픈 손가락이죠. 하지만 X-블랙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분명 있을 거예요. 대본상 사연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안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믿고 고민 중이죠.”


◇‘더데빌’로 시작한 2017년 다짐 “오늘만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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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빌’ X-화이트 역의 조형균.(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요즘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죠.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2017년을 ‘더데빌’로 시작한 조형균은 바쁠수록 행복하다고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하고 싶은 작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정도란다. 하지만 2년 전에 만났던 그는 회의를 느껴 배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불쑥거리곤 한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늘 하는 것 같아요. 저 뿐 아니라 배우들 대부분이 그래요. 비정규직이잖아요. 4대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너무 막연하죠. 하지만 2017년부터는 그런 생각을 안하기로 했어요. 2017년을 시작하면서 오늘만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죠.”

사실 조형균의 이 다짐은 올해 뿐 아니었다. 지난해에도 그 전해에도 새해를 맞으면서 늘 하는 다짐이었다.

“작년에도 그렇게 시작했는데 자꾸 무너졌어요. 혼자 집에 있으면 언제 전세금을 모으나 싶고…. 그런데 이건 답이 없는 문제잖아요. 결국 뮤지컬을 하는 평범한 배우 중 한명으로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고등학교 시절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뮤지컬에 매료됐던 조형균은 “성악적인 것들을 열심히 쌓아두고 한 마흔 정도에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악역을 좀 해보고 싶긴 해요. 집에서 혼자 연기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거든요. 대놓고 악역이 아니라 너무 선한 팀장님인데 알고 보니 살인사건의 용의자 같은 역할이요. 요즘 그런 일이 너무 많잖아요.”

더 나은 ‘더데빌’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전한 조형균은 한결같은 배우다. 공연이 없는 전날이면 어김없이 밤을 샐 정도로 한결같이 열심이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꿈 역시 한결같다.

“늘 똑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품이 흥했든 그렇지 않았든, 코미디든 비극이든 시간이 흘러 ‘형균이랑 할 때 진짜 재밌었는데’라고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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