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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나날이 커지는 '형제 격차', 리스크로 남기지 않으려면…

입력 2017-02-16 07:00
신문게재 2017-02-16 12면

형제

 

# 김양호(가명)씨는 맞벌이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서민 가장’이다. 집 근처에는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이 사는 친형 부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김씨 부부는 시간제 일까지 마다 않고 악착같이 일해 형네 가족을 틈틈이 도왔다. 그러다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려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었고, 덕분에 일산에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하게 됐다. 그런데 명의를 아버지 앞으로 한 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형이 느닷없이 “이 아파트는 아버지의 상속 재산”이라며 절반은 자기 것이라며 우기기 시작했다. 황당했지만 결국 김씨는 형이 해달라는 대로 해 주고, 의절 했다. 이른바 ‘형제 격차’가 낳은 비극이다.

 

# 대구에 사는 이문철(가명)씨는 여덟 형제로 형제 간 우애가 남달랐다. 다들 그럭저럭 살지만 유독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어렵게 살아가는 막내 여동생이 늘 눈에 밟혔다. 형제들은 막내가 60세를 맞은 15년 전, 십시일반 형편에 맞춰 돈을 모아 서울 외곽에 1억이 조금 넘는 허름한  아파트를 하나 장만해 주었다. 이 아파트가 나중에 6억 까지 올랐다. 막내는 이 돈 가운데 일부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중국 장가계로 가족 동반 여행을 다녀 왔다.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셨던 아버지로 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형제간의 우애를 배웠던 덕분이다.

 

 

12면_연령별가치관조사(2015년)

 

 

 

지난해 말 일본 서적 한 권이 화제를 모았다. ‘나는 형제를 모른 척 할 수 있을까’로 소개된 이 책의 원제는 ‘형제 리스크’였다. 주간지 ‘아에라(AERA)’가 ‘형제는 부담일까, 득일까’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기획물을 논픽션 작가 후루카와 마사코, 도쿄건강장수의료센터 특별연구원 히라야마 료가 재구성해 엮은 책이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세대 격차, 소득 격차처럼 이제 ‘형제 격차’가 사회적 현상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특히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형제 간 소득 격차 등으로 인해 가족 간에 갈등이 커지고 종국에는 ‘형제 리스크’가 보편화된다는 얘기다. 소득 차이 뿐만 아니라 학력 차이, 직업 차이 등 이런저런 이유로 과거 살가웠던 형제 관계가 엄청난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선 형제 리스크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첫째, 자신도 여유가 없는데 다른 형제의 가난을 그대로 떠안아 ‘공멸(共滅)’하는 리스크. 둘째, 자신도 여유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형제의 생활보호를 신청해(부양 거부) 미안한 마음에 거리가 생기는 리스크. 셋째, 독신이면서 재산이 없는 형제가 탈이 났을 때 도울 수 없어서, 혹은 떠맡게 되어 무너지는 리스크. 마지막으로 부모의 간병이나 상속 문제로 형제끼리 다툰 끝에 인연을 끊는 리스크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목격되는 사례들이다.

도쿄대의 겐다 유지 교수는 일본에서 ‘20~59세의 나이에 결혼 경험 없고 학생도 아니며, 가족 외 다른 사회관계가 없는 무직자’를 ‘SNEP(Solitary, Non-Employed, Persons)’이라고 지칭하고, 일본에 160만 명이 존재한다고 추산했다. 이들은 부모가 사망하거나 경제력을 잃게 되면, 그대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형제 리스크’ 저자들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에 출생한 군집을 ‘형제불안세대’라고 불렀다. 이들은 적은 형제 수에,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형제간 격차가 확연한 세대다. 때문에 다음 세대까지 리스크가 이어져 자칫 집안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일본 못지않은 한국의 ‘형제 격차’ 환경

우리 사회도 일본과 닮아가고 있다. 만 49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 ‘생애미혼률’이 일본의 경우 2010년에 남성은 20.1%, 여성은 10.6%에 달했다. 우리는 같은 해 각각 5.8%, 2.7%였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도 곧 이런 사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부양해야 할 형제가 그만큼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5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연령별 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도 중요하지만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한 응답이 30대는 47%, 40대는 44%인 반면 50~60대는 68%에 달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나 형제를 건사할 의지가 확연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보다 소득 수준도 낮다. 형제를 돌 볼 여유가 적다는 얘기다. 노인 빈곤율은 2014년 기준으로 47.2%에 달해 OECD 평균치(12.8%)의 거의 4배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64.2%에 이른다. 반면 가계채무 상환비율은 20%에 불과하다. 빚을 노후까지 달고 산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비율도 32%나 되어 소득이 불안정하다. 용돈 주는 ‘효자’마저 없으면 노후가 곤궁해 진다. 고령가구의 월 소득은 연금 포함 200만 원 안팎이다. 형제까지 도울 여력이 없어, 상당수 형제들이 짐이 되는 삶을 살게 된다.

본인도 건강하지 못하니 형제를 도울 여력도 없다. 한국 노인 가운데 만성질환자 비율이 90%다. 3개 이상 만성질환 보유자도 전체 노인의 절반이다. 65세 이후 발생하는 의료비가 평생 의료비의 50~55%에 이른다. 75세 부터는 치매 발생률이 급격히 높아져 의료비 지출이 훌쩍 뛴다. 그럼에도 고령인구의 보험가입률은 32.5%에 불과하다.


◇ 형제 리스크 최소화 방안은?

고령의 부모에게 의지하는 50대 언니, 부모 도움 없이는 살수 없는 40대 여동생, 부모는 돌보지 않으면서 부모 재산은 욕심내는 오빠 등. 일본이나 한국 모두 ‘형제 리스크’는 이제 가족의 문제를 넘어 사회가 풀어야 할 핫 이슈로 부각했다.

그렇지만 형제 리스크를 가족 간에 해결할 수 있는 가족은 거의 없다. 형제 봉양은 나이 든 부모 부양 보다 더 기간도 길다. 어쩌면 재산의 거의 모두를 걸어야 할 지도 모른다.

‘형제 리스크’의 저자는 “형제 간 격차가 벌어지기 전에, ‘형제’라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이나 갈등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법을 주도적으로 찾아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개인의 사회적 구상’이라고 표현했다. 그 기본에는 형제 간의 벽 허물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년후견제도’ 같은 사회적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회자원이나 외부의 인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아 ‘신 형제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도 해법 가운데 하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대가족화가 눈길을 끈다. 1인 가족의 증가와 함께 경제사정이 궁핍해지면서 부모에 기생하는 캥거류족, 연어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전영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트렌드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규석·안준호·하종민 기자 seok@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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