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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공부에 나이가 있나요"…'만학줌마'들의 유쾌한 공부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양원학교 김학순·강임구·김경순 씨

입력 2017-02-20 07:00   수정 2017-02-19 11:23
신문게재 2017-02-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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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에서 (사진 왼쪽부터) 강임구(66), 김경순(63) 학생과 이경희 교사가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있다.

 


 

대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을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면 연세 지긋한 여성들의 무리가 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손엔 공책을, 다른 한 손엔 작은 가방을 든 ‘소녀’들은 학교에 간다. 만학(晩學)여성들의 배움터, ‘양원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이들의 자녀와 전쟁고아 등을 교육하기 위해 피난민들이 설립한 일성고등공민학교의 후신이다. 작년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1924명에 달한다. 특히 현재 양원초등학교 학생(1120명) 중 80% 이상이 60·70대로 이뤄졌다.

21일은 양원주부학교(중·고등부)와 양원초등학교(초등부) 학생 615명이 ‘졸업’하는 날이다. 중·고등부 405명, 초등부 210명의 여성들이 유년시절 어려운 형편 탓에 접어뒀던 학업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올해 졸업을 앞둔 3명의 학생을 만났다. 김학순(77)·강임구(66)·김경순(63)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 중 김학순씨와 강임구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두 학생은 생애 첫 졸업에 대한 벅찬 감동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전쟁 통에 학교는 꿈도 못 꿨죠. 스무살에 결혼을 하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종로 낙원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없는 형편이지만 내가 못 다닌 학교를 자식들 만큼은 마음껏 다니게 해주고 싶었어요. 장사하며 번 돈으로 손주들 유학까지 시켜 두 명은 벌써 의사가 됐어요.”(김학순 학생)

김씨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교육에 평생을 바쳤지만, 70대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이었다. 위 전체를 절개하는 대수술까지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리디스크 수술도 3번이나 받게 됐다.

“내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남은 여생을 배우는 데 쓰고 싶어 양원초등학교에 왔는데, 학교를 다닌 4년 동안 건강이 너무나 좋아졌죠. 정성들여 키운 자식들이 이제는 엄마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매일같이 응원해줘서 힘이 납니다.”

강임구 학생은 10남매 중 막내였던 탓에 학교 다닐 기회를 모두 오빠들과 자신보다 나이 많은 조카들에게 양보했다. 배움은 부족했지만 누구보다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다. 철공소를 운영하던 남편의 건강이 알콜중독으로 악화되자 신촌 일대 학생들을 받아 하숙업을 해 온 것. 지금은 어엿한 원룸건물의 주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남편 건강도 점차 회복되다 보니 못 다한 배움의 꿈을 이루고 싶었어요. 딸이 몇 년 전 경기지역 교사에 임용돼 학교 근처 숙소로 짐을 옮겨주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다니던 교회 몇몇 신도들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충동적으로 학교에 등록하게 됐죠. 지금은 우리 반 반장도 하고 있어요. 늦은 나이에 배우는 것이 전혀 창피하지 않고 하루하루 배움의 재미를 느끼고 있죠. 중·고등학교까지 졸업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강임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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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임구(66) 학생과 김경순(63) 학생이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 후 손을 잡고 있다. 김학순(77) 학생은 개인사정으로 인터뷰 도중 퇴장했다.

 


올해 고등반을 졸업한 뒤 오는 4월 고등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경순씨는 ‘공부가 창피한’ 학생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는 신입생들의 멘토를 자처할 만큼 어엿한 졸업생이 됐다.

그녀는 “처음에는 직업인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주독야경(晝讀夜耕)’이었죠.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공부를 위해 사표를 냈죠. 처음 학교에 다닐 때에는 제 노트 필기를 혹시라도 누가 볼까봐 숨기곤 했어요. 이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게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수업시간에 교과서도 소리내 읽지 못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죠”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과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것이 목표란다. 김씨는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간호조무사 시험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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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양원주부학교 학생들.(사진제공=양원주부학교)

 


그렇다면 양원학교의 늦깎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떤 사람들일까. 학생들과 함께 만난 이정옥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퇴직 후 양원학교에 둥지를 틀고 만학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정옥 선생님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또 다른 보람이 있어요. 각자의 상황 탓에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게 가장 중요하죠. 공부는 그 다음이에요. 이 학교 졸업생들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입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양원학교는 지난달 말 학생들의 참여로 ‘팝송 콘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외에도 영어, 한자, 글짓기, 독서, 봉사활동, 웅변 등 다양한 행사를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글·사진=권성중 기자 goodmatt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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