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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기술만 생각하던 엔지니어, 이젠 서울 문화 알려요”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송인섭 서울문화관광해설사

입력 2017-03-20 07:00
신문게재 2017-03-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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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섭 씨는 "활동하고 고생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제 보람과 성취감으로 돌아오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사진=장애리 기자)

“요즘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제가 활동하고 고생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제 보람과 성취감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합니다.”



송인섭(66·사진)씨의 직함은 서울문화관광해설사. 그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22개의 도보관광코스를 관광객과 함께 걸으며 그 속에 숨겨진 역사, 문화, 자연 등 관광자원에 대한 해설을 들려주는 자원봉사자다. 그는 주특기인 일본어를 통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역사, 문화,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는 평생 ‘기술’로 먹고 산 사람이다. 20대 때는 국내 한 대기업에서 화학 기술 연구원으로 일을 했고 40대에는 가전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에서 공장장을 지냈다. 50대에는 국내 기업들에 해외의 기술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하는 기업체에서 일본 콘텐츠를 담당했다. 그 회사에서 2009년 명예퇴직을 했고 이후 2년간 같은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최종적으로 회사를 나와 ‘자유인’이 됐을 때는 59세였다.

2017년, 66세의 송인섭씨는 6년차 문화관광해설사이자 관광객들에게는 서울의 ‘마스코트’다. 30여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새롭게 시작한 그의 두번째 인생이 궁금했다. 왜 문화해설사에 도전하게 됐는지, 퇴직 후 1년 간 공백의 시간은 어땠는지,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는 노하우는 무엇인지. 송씨에게 ‘100세 시대의 인생 2막’을 잘 준비하는 방법 등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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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엔지니에서 서울 알리미로 변신

“저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알리는 사람입니다. 서울의 인상을 담당하는 마스코트라는 생각으로 일을 합니다. 관광객들이 원하고 관광코스에 포함된 곳이라면, 드라마 촬영지나 욘사마 같은 한류스타가 머물다 간 장소를 안내해주고 감사의 선물을 받기도 합니다. 허허~”

겉으로 보기에 은퇴 후 그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숫자상으로는 그렇다. 회사 ‘고문’에서 ‘자원봉사자’가 됐고, 일정한 급여는커녕 교통비와 식사비 수준의 활동비를 받는다. 나이는 50대에서 60대로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금이 훨씬 풍족하다.

송씨가 처음부터 은퇴 문화해설사의 삶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은퇴를 목전에 둔 2009년의 어느 날 지역의 역사강의를 들어보라는 아내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추천했습니다. 집 근처에서 수원의 역사에 대한 문화강의가 열린다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요.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재밌더라구요. 배운건 써먹어여 한다고 생각했기에 강의를 다 듣고 난 후엔 수원 화성 관광안내소에서 1년7개월 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11년 7월 서울시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거주지가 수원이라 불리하긴 했지만 대학생활과 신혼을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지리는 자신 있었습니다.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송씨의 일본어는 철저히 ‘생계형’ 이었다. 첫 직장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일본 기업들의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기업들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던 때였습니다. 안하면 짤린다는 생각으로 매일 오전 오후 1시간씩 사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일본에서 열리는 기술연수에 참가하고, 일본 서적을 참고해야 했던 시절입니다. 당시엔 퇴근해서도 일본어 사전과 TV 방송을 켜놓고 자며 힘들게 했던 공부지만, 그게 은퇴 후 제 삶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네요.”
 

 

◇ 섣부른 ‘사업 도전’ 하지 말라

그는 “은퇴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급한 마음에 섣부르게 사업에 도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IMF 때 직장을 나와 사업체를 운영한 적이 있다. 6개월간 운영했지만 영수증 한장 끊지 못했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 접고 말았다. “가능성이 안 보여 결단을 내렸습니다. 직장생활 하던 사람이 회사를 나왔다는 조급한 마음에 사업을 시작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계속했으면 아마 더 큰 손실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 후 다른 직장을 적극적으로 구해 보라고 한다. 한두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지 말고 일 년, 이 년 꾸준히 하면 분명히 길이 열린다는 것이 송씨의 조언이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를 알아야 해요.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기 때문에 찾아보면 얼마든지 적성과 흥미를 살려 인생 2막을 준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갑자기 맞닥뜨린 은퇴 앞에서 허둥댔던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 은퇴 후 시간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여행도 다니고 ‘나’에 대한 생각도 자주 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엔 사진 동호회 활동에도 열정적입니다. 수원시를 대 표하는 작가님과 함께 사진전에 작품도 출품하고 있어요. 직장생활 할 때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에요.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가능성도 많다는 겁니다.”

문화해설사로서 앞으로 그에게 어떤 목표가 있을까. 그는 “별도의 계획이나 목표는 없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 자신은 있습니다.”

글·사진=장애리 기자 1601chang@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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