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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생명 앗아간 인격장애, 부모 무관심에서 시작

생후 6~18개월 ‘버림받았다’는 무의식 원인 … 감정기복 심하고 자제력 상실

입력 2017-11-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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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과음, 식사를 거르는 습관, 친했던 폴 고갱과의 불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고흐의 작품 ‘귀가 잘린 자화상(1889년)’

불과 37세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사망하기 몇 년전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병명은 극심한 조울증과 경계성 인격장애. 왼쪽 귀 전체를 잘라 인근에 살던 농부의 딸에게 건내는 등의 행동은 그의 정신병이 점차 심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독한 술인 압생트(absinthe, 향쑥·살구씨로 만든 프랑스산 술)를 지나치게 마신 것, 식사를 거르는 습관, 좋아했던 화가 폴 고갱과의 불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격장애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압박감 탓에 각종 정신질환에 취약한데 대표적인 게 인격장애다. 인격장애는 습관적인 사고와 행동양식이 지속적으로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다.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해 병원에 가지 않으므로 정확한 환자 통계는 알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인구의 10∼20%가 인격장애를 앓고, 이 중 1%는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선 약 5만~10만의 중증 환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격장애는 크게 A·B·C 유형으로 분류한다. 괴상하고 별난 경향을 보이는 A유형은 편집성·분열성 인격장애가 대표적이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운 B유형은 히스테리성·자기애적·반사회적·경계성 인격장애를 포함한다. C유형은 감정이 억제된 상태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보이는 것으로 회피성·의존성·강박성 인격장애가 해당된다.


의사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유형은 경계성(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다. 이 질환은  타인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극심한 불안, 우울증, 자살시도, 충동적 행동, 소화장애 등이 동반되는 것으로 전체 인구의 2% 정도에서 발생한다. 유독 젊은 여성 환자가 많은 편인데 다른 연령대 여성이나 남성은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치료받는 경우가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던 김모 씨(30·여)가 단지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윗층 주민의 얼굴, 가슴, 배 등을 무차별 폭행하다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까지 욕을 퍼부으며 손으로 할퀴었다. 김 씨는 또 몇 달 전엔 길을 가던 소녀에게 이유 없이 욕을 하며 얼굴을 때렸고, 호텔과 식당에서 18만원어치의 스테이크와 장어구이를 먹고 ‘나 몰라라’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비슷한 시기에 20대 여성이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가자”고 말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 흔들어 바닥에 넘어뜨린 뒤 발로 밟는 등 폭력성을 드러냈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6개월간 12명에 달했다.


이 질환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허의 감정기복과 돌발행동이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자아상과 목표 등에 혼란을 느끼면서 만성적인 공허감을 호소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극과 극을 오가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엔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친밀감을 갖다가 돌연 상대에게 극단적으로 냉담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말투·표정·태도·어휘 등 사소한 신호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현실검증력이 무너진다.


또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과잉행동, 자해, 자살 위협 등으로 자신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제력이 없어 낭비, 성적 문란, 도박, 약물남용, 좀도둑질, 과식 등에 빠질 위험도 높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경계상 인격장애 환자가 평소 느끼는 감정을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뉴욕 타임스퀘어광장 한가운데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7살 아이의 심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확한 발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생후 9∼18개월경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충격이 무의식적으로 남아 성장 후 자신을 비슷한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어린 시절 부모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은 신체적·정신적·성적 학대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유명 스타들은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과 불안증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한편 극심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다그쳐 추진력을 제공해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냉정한 연예계에서 이런 특성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만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취할 위험도 크다. 정신건강의학과들이 꼽는 경계성 성격장애 기준을 가장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인물은 팝의 황제 고 마이클 잭슨이다.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안정된 관계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 이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전문가의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상담은 환자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큰 불이익을 부르는지 자각하고 자기파괴적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다. 친사회적 행동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사실도 일깨워진다.


여기에 불안·분노·우울 증상을 완화하는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항경련제, 항도파민제 등을 이용해 약물치료를 실시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증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전문가와 마주 앉아 오랜 시간 상담을 받으면서 안정된 관계를 경험하고 그 관계를 구축·유지하기 위해 생각, 감정, 행동을 점검 및 수정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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