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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둘기’된 평화의 상징, 폐렴·식중독 원인균 득실

전국 100만, 수도권에만 50만마리 … 지방 많은 인스턴트 음식쓰레기, 과잉번식 유도

입력 2017-11-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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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캄필로박터 제주니균은 대표적인 식중독균으로 체내에 들어오면 설사, 복통, 발열 등을 일으킬 수 있다.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비둘기가 공포·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와 같은 천적이 사라지면서 개체 수가 급증해 아파트 베란다, 건물 옥상, 전봇대 등 도심 곳곳을 점령했다. 쓰레기를 주워 먹어 잘 날지 못할 만큼 살이 쪘다는 의미의 ‘닭둘기’, 배설물과 깃털로 각종 세균을 옮겨 ‘쥐둘기’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비둘기 자체는 원래 깨끗한 생명체다. 야생에선 천적이 냄새를 잘 맡지 못하도록 하루에 서너 번씩 물로 몸을 씻어낸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천적이 없는 데다 물을 찾기 어려워 이런 습성이 사라졌다.
국내에선 약 30년 전 아시안게임(1986년)과 서울올림픽(1988년) 기간에 3000여마리를 방사한 이후 개체 수가 꾸준히 늘었다. 결국 환경부는 2009년 비둘기를 유해조류로 지정, 모이 주기 등을 금지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스위스, 벨기에 등 전세계 곳곳이 비둘기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비둘기는 집비둘기의 한 종류로 원래 바닷가 암벽지대에 서식해 영어로 ‘Rock Dove’라고 불린다. 강력한 번식력과 빠른 성장능력이 특징이다. 1년에 1~2회, 매번 두 개의 알을 낳는데 주변 환경이 좋으면 1년에 4~6번까지 산란한다.
새끼 비둘기는 태어나자마자 ‘피존 밀크’라는 특별식을 공급받는다. 이는 암수 모두로부터 공급받는 젤 형태 물질로 단백질·지방·각종 면역성분이 농축돼 성장을 촉진한다. 덕분에 갓 태어난 새끼는 34~36시간 만에 몸무게가 두 배로 늘어나고, 4~6주가 지나면 거의 다 자라 독립한다. 평소 비둘기 새끼를 보기 어려운 것은 둥지에서 외부로 나올 때 몸집이 이미 성체 수준으로 커져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모이와 여기저기 널린 음식쓰레기는 비둘기가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인 20~50g을 단번에 채울 수 있게 한다. 이로 인해 어렵게 먹이를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이 시간의 대부분을 번식을 위해 사용한다. 특히 사람들이 던쳐주는 과자 부스러기 같이 염분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인스턴트음식물은 비둘기의 과잉번식을 유발한다.


정확한 개체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국에 약 100만마리가 서식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독 개체 수가 많아 보이는 것은 도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대한조류협회에 따르면 약 50만마리가 수도권, 이 중 4만~5만마리가 서울에 살고 있다.


대부분 음습하고 지저분한 환경에 서식하다보니 유해한 세균에 쉽게 노출된다. 페르난도 에스페론 스페인 마드리드 동물건강연구센터 박사팀이 마드리드 도심에 날아다니는 비둘기 118마리를 포획해 혈액과 배설물 샘플을 검사한 결과 52.6%에서 폐렴을 일으키는 ‘클라미디아 시타시균(Chlamydophila psittaci, 옛 Chlamydia psittaci), 69.1%에선 사람과 가축에서 식중독과 설사를 유발하는 ‘캄필로박터 제주니균(Campylobacter jejuni)’이 발견됐다.


박완범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클라미디아 시타시균은 ‘앵무새병(앵무병클라미디아)’의 주 원인균으로 공기를 통해 호흡기로 들어와 콧물, 가래, 두통, 오한 등을 유발하고 심하면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일본에서는 400여건에 가까운 감염사례가 보고됐고 이 중 임산부 2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클라미디아가 사람과 앵무새에서는 앵무병(Psittacosis), 비둘기 등 앵무새 이외의 조류에서는 비둘기병(ornithosis)이라고 한다. 일종의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이어 “캄필로박터 제주니균은 대표적인 식중독균으로 비둘기 배설물에 오염된 식품 등을 거쳐 체내에 감염돼 설사, 복통, 발열 등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비둘기에 기생하는 곰팡이균도 문제가 된다. 비둘기 배설물이 마르면 안에 있던 곰팡이균(진균)의 일종인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균(Cryptococcus neoformans)’이 포자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호흡기로 침투, 뇌수막염이나 결핵 등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건강한 일반인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항암치료 중이거나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 노약자나 어린이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비둘기의 깃털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다만 일부 국가 도심의 비둘기에서 발견된 세균이 국내 비둘기에도 서식한다고 단정짓기 어렵고, 비둘기가 실제로 인체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한 연구결과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비둘기의 배설물은 인체뿐만 아니라 철제 구조물이나 문화재에도 피해를 준다. 배설물이 응고한 뒤 빗물과 결합하면 화학작용이 일어나 철과 석재를 부식시킨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역사적 유물이 많은 도시들은 비둘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에선 종로2가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이 비둘기 배설물로 심하게 부식돼 몇 년째 유리 보호망에서 보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둘기 피해를 줄이려면 단순히 포획에 그칠게 아니라 먹이를 조절해 개체수를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길거리에서 먹이를 주는 것부터 삼가야 한다.
영국의 경우 런던 트라팔가광장에서 새 모이를 주다 적발되면 50파운드(약 9만1000원)의 벌금이 부여된다. 프랑스는 적극적인 포획 및 사살을 허가했으며, 미국 할리우드에선 불임 모이로 개체 수를 절반까지 줄였다. 단 불임 성분이 함유된 사료는 보호종인 제비를 해칠 수 있어 국내에선 사용되지 않고 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161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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