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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대체불가' 배우 이병헌이 보여주는 힘..."언제까지 연기할거냐고요?"

[人더컬처]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탁월한 심리묘사로 관객 매료
"존경과 배신,사랑과 연민등 인간의 감정 드라마틱하게 오가는 역할에 끌려"

입력 2020-01-28 07:00
신문게재 2020-01-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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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역시나 대체불가였다. 지난 22일 개봉해 설 연휴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분한 이병헌은 어김없이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최측근이자 그의 암살자로 18년 독재의 고리를 끊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실명 김재규) 역할을 맡았다. 전작 ‘백두산’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한 만큼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앉은 이병헌의 표정은 한결 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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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 정치적 성향이 강한 영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사실 ‘남산의 부장들’ 촬영이 훨씬 먼저 끝났어요. 박근혜 정권 때 제안을 받았거든요. 정치적인 견해가 들어가거나 누군가를 영웅화시켰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겁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캐릭터의 심리묘사가 매력적이고 이야기의 힘이 탁월해야 하다는 기준이 있어요. 그때 들어온 시나리오 중 그 기준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었죠.” 

 

1970년생인 그는 “당시 (박정희 저격) 사건의 느낌이 TV하이라이트 장면처럼 기억난다”고 고백했다. 

 

이병헌은 “어린 마음에 겁이 나기도 했다. 다들 하얀 소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대성통곡을 했다”며 “그래서 연기적 접근이 어려웠다. ‘남산의 부장들’만큼은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지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극 중 김규평이란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 후 처형당한 실존인물이다. 두 사람은 혈맹에 가까운 사이였고 당시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중앙정보부의 실세였다. 

 

영화 속에서는 일본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서열이 중요한 군인 출신으로서 후임이자 당시 경호실장인 곽실장의 무모함을 대놓고 꾸짖는 인물로 나온다. 2인자 자리를 다투는 과정에서 가장 영민하게 상황을 이끄는 엘리트의 예민함이 녹아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 40일 전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육군 본부에 몸 담았던 이들의 관계와 심리적 묘사를 긴박하게 오간다. 원작은 김충식 작가의 동명 논픽션 베스트셀러로 1990년부터 동아일보에 2년 2개월간 연재된 취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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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영화화가 결정된 이후 캐스팅 보드도 유난히 화려했다. 이성민이 당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박통, 곽도원과 이희준이 1970년대 정치공작을 주도하며 시대를 풍미한 중앙정보부 부장과 경호실장으로 분한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로비스트는 김소진이 연기하며 작품에 윤기를 더한다.

 

“역사적으로 미스터리 사건을 영화가 규정 지으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접근했습니다. 가장 큰 정서는 안타까움이었죠. 배신, 존경, 사랑과 충성 등 인간의 감정들이 다양하게 교차되니까요. 20대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흥미로워요. ‘설마 실화?’라며 사건을 찾아본다고 하더군요. 맨 마지막에 촬영했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 안에서 피에 잔뜩 젖은 양말을 보는 신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잠깐 다른 일상에 빠져있다가 연기를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장 존경하고 충성했던 인물의 피를 보는 심정을 살리는 게 관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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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남산의 부장들’ 엔딩에는 실제 김재규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병헌은 그런 말투와 목소리 대신 포마드로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트리지 않고 넘겼으며 안경을 쓴 모습으로 실존인물에게 다가갔다. 

 

그는 “항상 주변사람들에게 쉬는 게 다음 계획이라고 하는데 연기라는 게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며 “내가 하면 어떤 느낌일까? 싶은 작품이 들어온다. 배우로 사는 게 여전히 재미있다”고 미소 지었다.

 

“제 영화 중에는 나중에 회자되는 영화들이 유독 많더라고요. ‘그 해, 여름’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등이 당시에는 흥행되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작품들로 불립니다. 사실 작품마다 만족이란 없어요. 당시 최선을 다한 것만을 기억하며 합리화 시키는거죠.(웃음)”


이병헌은 배우로서 계속 ‘말랑말랑한 감정’을 유지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의를 가지고 영화산업에 혁신을 주거나 후배를 이끄는 입장보다는 오롯이 ‘연기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화 내내 엿보였다.

“배우가 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감수성을 개발하거나 단련시키는 뭔가를 하진 않았죠. 아들이 배우가 된다면? 뭘 하든 응원하겠지만 굳이 말리진 않을 겁니다. 이병헌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극장에 가는 관객이 한명이라도 있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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