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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좋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무례하고 모순되지만…연극 ‘렁스’

입력 2020-05-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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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출연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여자 이진희·곽선영, 남자 김동완·이동하·성두섭(사진제공=연극열전)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좋은 사람’ 얘기도 많이 하지만 모순적인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이상적인 인물들이 아니라는 게 인상적이었죠. 불편한 부분을 없애야 할지, 두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지 많은 얘기를 했어요.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모순되는 점이 우리와 닮았다는 걸 깨달았고 그들 모습 자체를 미화도, 옹호도, 비난도 말고 그대로 무대에 올리자고 했죠.”



박소영 연출의 전언처럼 연극 ‘렁스’(7월 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는 “그들 모습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올리는 데 집중했다.” 15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열린 연극 ‘렁스’ 프레스콜에서 박 연출은 “그래야 관객들이 자신과 닮은 부분을 찾으며 위로 받거나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오롯이 배우들이 풀어가는 두 인물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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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박소영 연출(사진=허미선 기자)
연극 ‘렁스’는 영국 작가 던컨 맥밀란(Duncan Macmillan)의 대표작으로 2011년 워싱턴에서 초연됐다. 그 후 미국, 영국, 캐나다, 스위스, 벨기에, 홍콩 등에서 공연된 남녀 2인극으로 한국 초연은 ‘펀홈’ ‘차미’ ‘여신님이 보고 계셔’ ‘오만과 편견’ ‘섬’ 등의 박소영 연출이 함께 한다.

더불어 ‘돌아서서 떠나라’ ‘벙커 트릴로지’ ‘프라이드’ ‘킬미나우’ ‘톡톡’ 등의 이진희와 ‘펀홈’ ‘샤이닝’ ‘경종수정실록’ ‘여신님이 보고 계셔’ ‘키다리아저씨’ 등의 성두섭 그리고 신화 멤버 김동완과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곽선영, JTBC ‘부부의 세계’ 이동하가 함께 한다.

환경을 걱정하고 어떤 일이든 진지하고 사려 깊게 고민하는가 하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남자(김동완·성두섭·이동하, 이하 가나다 순)와 여자(곽선영·이진희)가 등·퇴장도, 암전도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아이’와 ‘환경’ 문제로 시작한 극은 서로에게 지극히도 무례하며 막무가내로 상처주는 모순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임신과 출산, 이별과 재회 등 극이 진행되면서 무대 맨 앞줄에는 나란히 신발들이 놓인다. 신발들의 나열에 대해 박소영 연출은 “발자취, 그들이 겪은 큰 지점들 혹은 전환점이 되는 부분들”이라고 답했다.

“온전히 배우들 자체로 무대를 채우는 공연이라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두 사람의 삶이 부딪히면서도 맞닿아 있죠. 둘만으로 채워진 공연이 끝나고 사라졌을 때 나열된 신발들이 그들의 인생 발자취로 남지 않을까 싶었어요.”

박소영 연출이 매력에 대해 이렇게 전한 ‘렁스’는 신화 멤버 김동완의 연극 데뷔작이자 최근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던 곽선영의 무대 복귀작이기도 하다.

‘젠틀맨스 가이드’ ‘시라노’ ‘에드거 앨런 포’ ‘헤드윅’ ‘벽을 뚫는 남자’ 등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했던 김동완은 “연극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며 “선배들이 빠듯한 스케줄에도 무대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김동완의 연극 데뷔작, 곽선영의 무대 복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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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여자 이진희(왼쪽)와 남자 김동완(사진제공=연극열전)

 

“제가 먼저 (연극을 하고 싶다고) 프러포즈를 했고 연극열전 대표님이 어려워할 수도, 재밌어 할 수도 있다면서 ‘렁스’ 대본을 주셨죠. 10년 전 대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부분들이 많았어요. 놀랄 정도로 지금 이야기죠. ‘그냥 숨쉬기도 힘들어’ ‘탈수증상은 당연한 거잖아’ 등 악조건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는 것에서 놀랐고 강하게 끌릴 수밖에 없었어요.”

출연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김동완은 “하고 싶지만 눈치 보면서 못하거나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는 생각들을 내뱉는 공연”이라며 “극 중에서 좋은 사람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앞에 있는 사람 혹은 서로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연습하면서 저는 약간 외국어고등학교를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여자 역할 대사량이 정말 많은데 두분(이진희·곽선영)은 쉬는 시간에 바닥에 누워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밥을 먹는 시간에도 대사를 외우더라고요. 대본 강박증이 느껴질 정도로 깊게 파고들어 할 수 있는 모든 걸 파내죠. 저는 두분께 끌려 다니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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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여자 곽선영(왼쪽)과 남자 이동하(사진제공=연극열전)

 

‘렁스’는 2018년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줄리 앤 폴’ 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VIP’ ‘남자친구’ ‘친애하는 판사님께’ 등에 출연했던 곽선영의 무대 복귀작이자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은 두 번째 연극이기도 하다.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공연만큼이나 뜨겁고 치열했던 연습과정이 너무 신나고 재밌었어요.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나 싶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공격적이기도 하는 등 극 중에는 여러 인간의 모습,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거의 대부분의 모습들이 나오죠. 어떤 때는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혹은 ‘이 말을 해줘서 속 시원하다’ 등 공감하는 부분들도 있었어요.”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어쩌면 지금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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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성두섭(사진제공=연극열전)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했어요. ‘이 여자 성격 왜 이러지’ ‘이 남자는 또 왜 이래’ 했는데 저희 삶과 비슷한 모습이 많더라고요. 표현이 좀 더 직설적이고 대담할 뿐이죠.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면서도 행동은 모순적인 우리 모습이더라고요.”

연극 ‘렁스’에 대해 이렇게 전한 성두섭은 “지문이 없어서 연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이동하 역시 “도구나 소품, 무대 장치도 없이 말로서 시간이나 공간의 변화를 표현하는 형식이 재밌었다”고 말을 보탰다.

“두 사람이 극단적으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공감 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도 있었죠. 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여준 것 같아서 흥미로워요.” 

 

이동하에 이어 이진희는 “연습을 하면서 연출님이 2주에 한번씩 ‘좋은 사람’에 대한 질문을 주셔서 시험을 보는 느낌이었다”며 “두 남녀는 좋은 사람이기라기엔 모순덩어리”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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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출연진. 왼쪽부터 남자 역의 성두섭, 여자 이진희·곽선영, 남자 김동완·이동하(사진=허미선 기자)

 

“무대 위 캐릭터가 완벽한 인물이 아니어도 좋았어요.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도 어려우면서도 재밌었죠. ‘좋은 사람’이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정의 내리기 어려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이진희는 “처음에는 관객들이 마음 둘 곳이 있을까 싶어서 걱정했다”며 “하지만 (마음을 둘 곳이 없는 등) 그렇기 때문에 더 편하게 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지금 이 시기에 같이 보고 얘기하고 싶은 공연”이라는 이진희에 박소영 연출은 “많은 생각과 질문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생각들을 하게 돼요. 많이 보고 알게 될수록 보이고 생각할 게 많아지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할 게 많아지는 작품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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