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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①] 전쟁 중에도 연극 ‘더 드레서’ 송승환·장유정 연출·안재욱·오만석의 ‘끄트머리’와 관계 그리고 ‘리어왕’

입력 2020-10-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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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노먼 역의 안재욱(왼쪽부터), 장유정 연출, 선생님 송승환, 노먼 오만석(사진제공=정동극장)

 

“전쟁이 한창인데, 그럼에도 왜 연극을 하는가에 마음이 끌렸어요. 실제로 6.25 당시에도 국립극단이 대구에서 공연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영화를 개봉하고 공연을 하고…제 가족들마저도 ‘안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시국에’라고들 하시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셰익스피어 전용 극단을 배경으로 그곳의 대표이자 노배우 선생님(송승환)과 16년 내내 그의 곁을 지켜온 의상담당자 노먼(안재욱·오만석, 이하 가나다 순)이 ‘리어왕’ 공연을 앞둔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 ‘더 드레서’(The Dresser, 11월 18~2021년 1월 3일 정동극장)의 장유정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 공연의 메카 브로드웨이마저도 ‘셧다운’(Shut Down, 일시적인 부분 업무정지 상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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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의 장유정 연출(사진제공=정동극장)

하지만 한국은 장유정 연출의 가족 혹은 지인들의 끌끌거림처럼 “굳이 이런 시국에” 거리두기 좌석제, 발열체크, 출입자명부 작성 및 마스크 착용 의무화, 손소독제 수시 사용 등을 시행하며 영화도, 공연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던 당시 영화 ‘정직한 후보’ 시사회 일정 중이었던 장유정 연출은 “그렇다고 사과나무를 안심을 수는 없었다. 우리의 직업, 살아가는 일, 희망(을 가지는 것) 등을 다 멈출 수는 없었다”며 “결국 저희 극 중 ‘선생님’처럼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굳건히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도대체 왜 하는 걸까를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었어요. 전쟁 못지않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지에 매료됐습니다.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 의미를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장유정 연출과 송승환, 안재욱·오만석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연극 ‘더 드레서’는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 휴 잭맨(Hugh Jackman)·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주연의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2008) 등의 작가 로날드 하우드(Ronald Harwood)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가 실제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에서 드레서(의상담당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 극단주이자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도널드 올핏 경의 이야기가 녹아든 작품이다. 1980년 영국 맨체스터 로열 익스체인지 시어터에서 초연된 후 같은 해 웨스트엔드, 다음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으며 1983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사랑받았다. 2015년에는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와 이안 맥켈런(Ian McKellen) 주연의 BBC TV드라마필름으로 리메이크돼 방송되기도 했다.

한국에 초연되는 ‘더 드레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감독과 부감독으로 호흡을 맞춘 송승환·장유정 연출이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정동극장이 ‘은세계’(2008) 이후 12년만에 선보이는 연극이기도 하다. 

 

‘난타’ 등 제작자로 주로 활동하던 송승환이 오랜만에 배우로 무대에 서는 작품이다. 배우 송승환의 귀환에 장유정 연출이 2015년 ‘멜로드라마’ 이후 5년만에 연극 연출로 나섰고 노먼 역에 안재욱·오만석, 사모님 배해선·정재은, 제프리 송영재, 무대감독 맷지 이주원, 옥슨비 임영우 등이 출연한다.


◇저마다의 끄트머리…송승환의 죽음, 오만석의 궁지 그리고 안재욱 삶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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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선생님 역의 송승환(사진제공=정동극장)

 

“저는 정말 끄트머리죠. 나이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요즘의 나이는 옛날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60세를 넘으니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환갑이 되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송승환은 “이 작품의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비단 송승환 뿐 아니다.

삶의 끄트머리에 선 노배우, 세상의 끄트머리가 될지도 모를 전쟁, 20세기 끄트머리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평가받는 ‘더 드레서’는 다양한 ‘끄트머리’에 대한 이야기다. 각각의 ‘끄트머리’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은 어쩌면 코로나19와의 전쟁 같은 현재를 사는 이들을 닮았다. 노먼 역의 오만석은 “삶과 죽음의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의 끄트머리로 다가온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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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노먼 역의 안재욱(왼쪽부터), 선생님 송승환, 노먼 오만석(사진제공=정동극장)
“궁지에 몰린다고 할까요. 누구나 어느 시점에 몰리게 되면 떨어지거나 부딪혀 싸워 내치고 나가는 끄트머리에 있는 입장일 순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본성이 나오거나 없던 힘이 생겨나거나 못느끼던 감정이 솟아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극 중은 전쟁통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일상을 살아야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끄트머리로 내몰려 갑자기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그리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극 중) 선생님이 색다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며 “그걸 보면서 끄트머리가 되면 난 어떻게 행동할까, 타산지석의 경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재욱은 “저는 삶의 끝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며 2013년 지주막하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Berry Aneurysm)로 뇌수술을 하던 당시에 대해 “순간적으로는 화가 났다. ‘내가 왜’ ‘나한테 왜’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고 털어놓았다.

“수술이 결정 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찰나의 순간은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말이 정답인 것 같아요. 뭘 갈구하고 바라고 고집을 부리고 투정을 부리는 것도 의미 없고 애원을 하거나 ‘웃으면서 맞이 할게요’ 하는 것도 욕심이고…그냥 내려놓은 경험이 있어요. 거기서 버티고 살아남으니까 우리 작품 속 이야기처럼 오늘날 이 자리에 내가 서 있구나 싶기도 해요.”

이어 “저는 끄트머리에 몰린 적이 너무 많다. 지난 2년 가까이는 맨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늘 살아왔다”며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한 애정이나 깊이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늘 들거든요. 큰 일 이후 저한테 제의가 온 첫 번째 작품일 수도,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고 있죠. 그래서 이 작품 속 선생님의 마지막을 누구보다 공감해요. 평생을 고집스럽고 악착같이 살아왔지만 다소 허망하게 끝나는 느낌. 실제로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만드는, 단순하지 않은 관계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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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장유정 연출과 선생님 역의 송승환(사진제공=정동극장)

 

“관계가 중요한 극이에요. 하지만 일직선으로 줄긋는 단순한 관계들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들이 얽힌 관계들이죠.”

송승환은 선생님과 노먼, 선생님과 아내이자 오랜 파트너 배우 사모님, 선생님과 그가 유일하게 주눅 드는 옥슨비 등의 관계에 대해 “묘미”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장단점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대본들이 인간의 다양한 부분 중 하나를 캐릭터로 만들곤 하죠. 사악한 사람, 간사한 사람…하지만 이 작가는 각 개인이 가진 인간의 다양성을 다 표현했어요. 관계에서도 그 다양성이 나오죠. 선생님이 노먼에게 못되게 굴지만 엄청 의존하고 있어요. 노먼이 없으면 무대에 못설 정도로 모든 걸 의지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제대로 밥 한끼도 안사고 온갖 신경질 다 내고…애증의 관계죠.”

이어 “부인과도 그런 관계다. 사랑도 하고 어떤 의미론 동정도 하지만 노먼 다음으로 의지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난(선생님) 부인이 있는데 이혼도 하지 않고 지금 부인과 살고 있고 스태프 중에는 나를 짝사랑했던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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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노먼 역의 안재욱(왼쪽부터), 선생님 송승환, 노먼 오만석(사진제공=정동극장)

“그런 단순하지 않은 관계들이 무대 위 대사나 플롯에 감칠 맛 나게 녹아나고 있죠. 관객 입장에서는 그 복잡한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묘미가 이 작품에 있다고 생각해요.”

송승환의 설명에 장유정 연출은 “관계가 캐릭터를 완성하는 작품”이라며 “타인에게는 세상 좋은 사람이 자신의 엄마에게는 예의를 갖추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는 것처럼 ‘더 드레서’에서도 관계가 캐릭터를 완성한다”고 말을 보탰다.

“실례로 이런 장면이 있어요. 제프리와 옥슨비가 차례로 한명씩 들어오는 장면이죠. 젊은 남자들은 전쟁에 끌려가고 바로 대역을 내세워야하고…극단은 그야말로 엉망이에요. 그런 중에 선생님이 제프리한테는 막 하다가 옥슨비가 들어오는 순간 주눅이 들어요. 군림했다가 금방 숨어버리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캐릭터가 구축되는 거죠.”

그리곤 “로날드 하우스는 캐릭터를 잘 쓰는 작가”라며 “굳이 어떤 사람이야 라고 따로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들은 캐릭터를 인식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장점 뿐 아니라 단점들까지 잘 보이게 해서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죠. 선생님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에요. 이기적이고 개인적이죠. 때론 칭얼거리는 어린아이 같고 용기가 없어 보이기도 해요. 그런 단점 속에서도 저 깊이 지닌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죠.”

이어 “노먼도 마찬가지로 다층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다”는 장유정 연출의 말에 오만석은 “16년여 간을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생긴 두 사람만의 습관, 버릇 등을 재밌게 보이게 하는 게 저한테는 숙제”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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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선생님 역의 송승환과 노먼 오만석(왼쪽), 안재욱(사진제공=정동극장)

“극 중 선생님이 꿈꾸는 배우로서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면 혹은 수족이 되고 버팀목이 돼주고 그 꿈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물이 내 주변에 있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곤 해요. 때로는 재밌고 애틋한…그런 감정에 저를 녹여내는 게 숙제죠.”

오만석의 말에 또 다른 노먼 역의 안재욱은 “직업적으로는 드레서, 의상담당자지만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챙기는 집사 이상의 존재”라며 “나(노먼)를 통하지 않고는 선생님을, 선생님과 관련된 것들을 얘기할 수 없다는 느낌”이라고 부연했다.

“선생님이 느끼는 감정, 해야하는 판단,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 등을 나(노먼) 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있을까 싶은 애증의 관계죠. ‘더 드레서’는 (‘리어왕’을 무대에 올리기 까지의) 하루를 다루는 작품이에요. 그 안에서 선생님에 대한 노먼으로서의 위치와 마음가짐을 잘 전달하기 위해 연습실에서부터 선생님(극 중 Sir)에 대한 시선으로 (송승환) 선생님을 적극적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수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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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 선생님 역의 송승환(사진제공=정동극장)

 

“원작에서 ‘리어왕’은 어리석죠. 사실. 뒤에서 들리는 단말 만을 듣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해 아까운 딸을 잃어버리죠. 그렇게 폭군처럼 굴다가 마지막에 후회하면서 죽음을 맞잖아요. 그 장면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수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왜 ‘리어왕’인지에 대한 질문에 장유정 연출은 “추측”이라는 전제를 달며 “극 중 선생남의 마지막과 닮아서가 아닐까”라고 의견을 전했다. 장유정 연출의 추측에 선생님 역의 송승환도 동의를 표했다.

“작가가 실제로 드레서로 일했던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도날드 경이 극단주였고 주연배우였어요. 아마도 작가가 드레서이던 당시에 도날드 경이 ‘리어왕’을 했을 수도 있죠. 게다가 엔딩이 같거든요. ‘리어왕’과 ‘더 드레서’ 속 선생님의 엔딩에서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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