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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할 말은 하는 정우 "이 영화는요…"

[人더컬처] 영화 '뜨거운 피' 정우
전형적인 40대 조폭 아닌, 예민하고 섹시한 건달로 표현
"영화를 생각하면 그냥 그 캐릭터로 살 수 밖에 없다"
"원톱, 느와르 부담 없지 않아...한 여름에 겨울 난투극 찍은 기억 생생"

입력 2022-03-28 18:30
신문게재 2022-03-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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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피’로 느와르 장르에 도전한 배우 정우.(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끌린 작품이랄까요.”

부산 태생의 배우가 긴 무명기간을 거쳐 부산 사투리 영화로만 ‘대박’을 친다면 ‘변신’이 숙명인 입장에서 부담이 없지 않을 리 없다. 인상적인 데뷔작 ‘바람’에 이어 국민드라마 ‘응답하라 1994’, 지난 23일 개봉한 ‘뜨거운 피’까지 배우 정우의 필모그래피에서 대중성은 그의 태생적 DNA와 맞닿아 있다. 그 사이 ‘히말라야’와 ‘이웃사촌’, 최근작 ‘이 구역의 미친 X’ 등 인상적인 작품도 많았지만 정우가 가진 장점이자 굴레는 역시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지만 거친 츤데레’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뜨거운 피’는 정우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제 필모그라피에서 느와르 장르가 없었어요. 내가 이걸 하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시나리오상에서는 40대 아저씨 그 자체인데, 청춘의 느낌을 살린, 일상적인 삶을 살던 인간이 주변의 배신과 음모로 인해 변해가는 인물이 되는 과정을 꼭 연기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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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

 

극 중 그가 연기하는 희수는 지방의 작은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실세인 손영감(김갑수)를 아버지 삼아 잡일을 처리해주며 근근이 살아간다. 같은 고아원 출신의 30년 지기 친구 철진(지승현)은 일찌감치 이 곳을 벗어나 어엿한 조직의 오른팔이 된 상태. 긴 세월을 지나 살림을 차린 인숙(윤지혜)과도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라며 정을 쌓아왔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희수의 눈은 내내 충혈되어 있어요. 촬영 당일 컨디션이 좋으면 뭔가 불안할 정도로 빠져 살았습니다. 캐릭터에 빠져 살다 보니 입맛도 없고 내내 피폐하고 불안했죠. 그렇게 살기 위해서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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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피’로 느와르 장르에 도전한 배우 정우.(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

 

정우는 ‘뜨거운 피’에 대해 “성장통을 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20년차의 경험은 원톱의 무게와 더불어 투자 부분의 난항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촬영된 시점은 코로나19가 창궐하기도 전인 2019년이었다. 흔히 ‘알탕영화’라고 조롱하는 건달들의 영화에서 그가 가진 부담감은 상당했다.

“대본만 파지 말고 고향에 왔으니 술도 한잔 하고 산책도 하며 편하게 하라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투자자들, 제작자들에게 주연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오래 알고지낸 PD의 첫 창립작이자 소설가로 더 유명했던 천명관 감독님의 입봉작였으니 즐기면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죠.”

이어 “작품 성격에 따라서 대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감독님에게 에너지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희수는 유독 쓸쓸했던 기억이 있다. 캐릭터를 이해하면 할수록 안타까웠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유독 저를 성장시켜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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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피’로 느와르 장르에 도전한 배우 정우.(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

 

정통 느와르인 ‘뜨거운 피’는 그동안 숙성한 시간만큼 흥행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개봉일 3만5251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더 배트맨’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문폴’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모두 제치고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신작들의 부재로 여전히 극장가의 시름이 깊지만 ‘뜨거운 피’의 선전에 모처럼 활기가 도는 모양새다.

정우는 제작진이 원한 술과 담배에 찌든 건달의 모습을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전형적인 조폭영화’의 답습을 거부하며 변화를 꾀했다. 인숙이 10대에 낳은 아들 아미(이홍내)와의 끈끈함, 배신과 협박이 난무하는 항구거리를 조율하는 인간관계 등 자칫 진부하게 흘러갈 수 있는 신들의 8할은 정우의 몫이었고 충분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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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거운 피’로 느와르 장르에 도전한 배우 정우.(사진제공=키다리스튜디오)

 

천명관 감독은 “얼굴도 작고 눈도 크고 쌍꺼풀도 있는 정우가 희수를 연기했기에 캐릭터가 가진 불안함이 더 부각된 것 같다”면서 “마흔 나이에 오갈 데 없는 건달의 초상을 배우가 정말 잘 살려줬다”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사실 촬영 내내 면도도 거의 안 했어요. 그저 날 것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극 중 대사에서 ‘세상은 멋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OO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나와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히진 못해도 정말 와닿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멋있는 삶을 사는 것 보다 좋은 삶을 살자 주의거든요. 관객분들이 ‘뜨거운 피’의 매력을 꼭 극장에서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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