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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량판 사태' 단순한 해프닝 아니다

입력 2023-08-24 14:07
신문게재 2023-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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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주 건설부동산부 차장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지 1년도 안됐을 때였죠. 어느 날 미국 친구가 한국 다리(성수대교)가 무너졌다며 괜찮냐고 묻는데, 어렸지만 창피함이 밀려왔죠. 당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어린 마음에 애국자가 된 마냥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소개해왔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얼마 안돼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실망감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그렇게 30년이 지났는데 한국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미국에 거주 중인 한 지인의 얘기다. 그의 말에 따르면 최근 해외에서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철근 누락으로 벌어진 부실 시공 사태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 외신은 이번 부실시공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며, 한국의 이 같은 문화가 사회로부터 고립된 젊은층들을 더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부실 시공의 문제는 철근 누락에 이어 설계, 시공, 건설 감리까지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사고였다. ‘안전과 타협’ 한 후진국형 사고였던 셈이다. 실력이 없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한국의 건설기술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높이 800m의 초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와 세계 최장 현수교인 차나칼레 대교를 지은 세계 최강의 ‘K건설’로 자리매김 했다. 그럼에도 아파트 철근이 누락돼 붕괴사고가 일어난 것은 고질적인 업계 관행이 빚은 참사였다.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주는 구조 아래 무책임하고 부도덕인 관행 그리고 사태를 키운 LH의 전관예우 문화까지, 이 모든 게 개선되지 않는 한 안전한 주거 문화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게 뻔하다. 이번 무량판 사태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절대 안될 것 같다.

 

채현주 건설부동산부 차장 183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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