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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멈춰졌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괴물'로 돌아왔다!

10대 소년 배우들이 보여주는 탁월함
가정과 교권추락이 보여주는 인간애의 상실 집중조명

입력 2023-11-23 17:15

영화 괴물1
찬란하고 애틋한 두 소년의 감정은 영원히 푸릇푸릇하게 박제되어 영화 속에서 숨쉴테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진제공=NEW)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을 과연 우리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명은 유지되더라도 돼지처럼 행동할거란 가정도, 생각도 어쩌면 편협한 고정관념일지 모른다. 과학적으로도 돼지의 지능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영화 ‘괴물’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영혼은 잠식된 다양한 군상들이 나온다. 일본의 거장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대놓고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늘 가족을 화두로 내세웠던 그의 시선은 이번에도 혈연이란 테두리 안에서 가해지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우른다. 여기에 교권추락과 아동학대, 사회적 약자를 보는 편협한 눈까지 더해서 관객들의 마음을 보는 내내 어지럽힌다.

영화 초반, 불안하게 집으로 향하는 한 소년의 불안한 발걸음이 화면 가득 잡힌다. 그 시각 싱글맘인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불타는 건물을 바라본다. 그곳 유흥업소에 초보 선생님이자 담임인 호리(에이타)가 출몰했다는 소문을 엄마들에게 통해 들었기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생작으로 평가될 영화 ‘괴물’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NEW)

 

일찍 아버지를 잃었지만 누구보다 반듯했던 미나토가 변한것도 이 즈음이다. 심약한 아들이 고백한 바로는 호리 선생의 거친 언행이 있었고 이 사실을 증언해준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사실은 미나토에게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임을 알게된다.

카메라는 엄마의 시선에서 뭔가 불안하고 숨기기 급급한 학교의 안일함을 대비시킨다. 그 사이 미나토는 달리는 차안에서 뛰어내리고, 늘 산 밑 어딘가를 배회하며 불안한 모습을 연일 이어간다. 중반부터는 호리 선생의 입장이 전개된다. 자신 역시 싱글맘 밑에서 자랐기에 누구보다 평등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지만 수줍고 비밀이 많은 미나토와 유독 부딪힌다.

영화에서 그는 책과 잡지에서 발견된 오타를 출판사로 보내는게 취미인 자로 잰듯 반듯한 인간이다. 또래보다 작고 마른 요리가 반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걸 알면서도 직업적으로 그가 해줄 수 있는거라곤 방관 뿐이다. 수십년간 학교에 근무한 동료 선생님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지능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그 뒤에는 유독 예민하거나 아예 방관하는 부모들이 바로 ‘괴물’들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사건을 인정하고 수습하기 보다 최대한 두리뭉실한 상황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죄를 하는 것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영화 괴물
일본의 연기파 배우 다나카 유코가 보여주는 무기력한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와닿는다. 시대와 나라를 넘어 조직이 개인에게 강요해왔던 희생의 정도와 잔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진제공=NEW)

 

하나의 사건에 각자의 시각이 시간차로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 백미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다. 얼마전 사고로 손녀를 잃은 아픔을 겪은 그는 미나토에게 “몇 몇 만 아는 기쁨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부르는 단어”라는 말로 두 소년의 감춰진 비밀을 영원히 묻어둘 것을 당부한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미나토와 요리의 ‘우정과 사랑사이’는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찬란하다. 떠난 아내를 원망하며 아들을 학대했던 요리 아버지, 자신이 알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뒤늦게 그 상처를 발견하고 절규하는 미나토의 엄마, 두 소년의 진심을 알고 기꺼이 사과하러 달려가는 호리 선생님등 ‘괴물’속 어른들은 결코 보호자가 아니다. 무능하고 심지어 가해자로 군림한다.

22일 화상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취재진과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누구도 가해하려 하지 않지만 해를 받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당연한 듯 하기 때문에 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부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나는 가해와 피해의 양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故사카모토 류이치 음악감독의 유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한마디로 유려하다.

불편한 감정이 켜켜하게 쌓이다가도 엔딩에 흐르는 멜로디와 두 소년의 질주를 통해 모든게 완성된다. 일본 영화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대감독을 기꺼이 추앙해야 한다. 제76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괴물’은 오는 29일 개봉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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