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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독자 내면의 이야기를 불러내는! 이수지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

입력 2024-03-26 21:55

이수지 작가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이수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저는 그림책이 되게 재미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어린이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어떤 주제나 이야기를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면서 명징한 언어로 하는 게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2022년 한국인 최초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볼로냐 라가치상(Ragazzi Award), 뉴욕타임스 그림책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발돋움한 이수지는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 출간을 맞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림책 안에 담겨 있는 세계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그림의 언어라는 것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그림의 언어, 책이라는 매체 등 중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들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림책의 세계에 들어올 거예요. 그림책이 다루는 주제의 영역이 넓기도 하고 그림책이 다루지 못하는 주제는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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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있는 생각|이수지 지음(사진제공=비룡소)

그리곤 “제 책 중 ‘파도야 놀자’ 같은 책은 14개국에 번역돼 출간됐다. 재밌는 건 이탈리아에 가면 주인공이 이탈리아 아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에 가면 일본 아이라고 생각한다”며 “검은 머리임에도 자기 아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어떻게 저희 아이랑 똑같이 그렸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신기하면서 이게 보편성인가 싶어요. ‘파도야 놀자’는 글이 없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 속의 공통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는 책이거든요. 반면 가장 극명하게 실험되고 드러나는 형식이기도 하죠. 우리 그림책도 이제 다양한 독자를 만들 수 있을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질 수 있는 생각’에는 회화전공자에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의 치열한 여정이 담겼다. 

 

‘그림의 언어로 열리는 세계’ ‘온종일 달리고 싶다’ ‘만질 수 있는 생각’ ‘네 개의 책상’ 등 4부로 구성된 책에는 치열하고 촘촘한 창작과정,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작업하고 도전하는 이수지 작가의 초창기 작업노트, 아이들과 보낸 순간들, 외국 편집자와의 작업 일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락 연설문까지가 나눠 담겼다.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만질 수 있는 생각’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수지 작가는 표지 디자인에 대해 “꿈 속의 꿈 속의 꿈처럼 책 속의 책 속의 책이라는 콘셉트”라며 “그런 게 그림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림책은 어린이 것이고 어린이부터 보는 것이지만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표지에 담겨 있습니다. 표지 위의 무당벌레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본 분이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예요. 그렇다면 ‘만질 수 있는 생각’이라는 책 제목과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렇게 독자는 모르는 생각을 하면서 퀴즈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또 하나의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는 “작가가 많은 이야기를 해 줄수록 이 세계는 풍부해지지 보잘 것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전하며 “제가 뭔가 한 마디를 더 함으로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수지 작가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이수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설명이라기 보다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아이들한테 흔히 묻듯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거예요. 그렇게 지금이 아니면 지나가서 사라질 것 같은 이야기들을 그때그때 붙잡아서 저와 접점이 생겨서 만나는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어 “4월 23일부터 9월 22일까지는 10주년을 맞은 전라도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개인전을 한다. 이 또 따른 저의 이야기”라며 “그렇게 저를 다채롭게 변주하면서 만나는 과정 자체도 저한테는 작업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에세이에 ‘오독의 즐거움’을 적기도 했다. 이수지 작가는 “오독할 수 있는 그림책은 얼마나 멋진가, 여기서라도 오독을 좀 하자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이 늘 정답만 얘기하기 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과 느낀 것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답 백과사전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하고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해요.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느껴요.” 

 

이수지 작가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이수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타고서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이수지’라는 이름에 ‘만화가’가 아닌 ‘그림책 작가’로 기재될 수 있었다는 그는 “얼마 전 일본과 대만 타이페이 국제도서전을 다녀왔는데 행사장마다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다. 책을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광경을 보고 정말 부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다양한 매체에 밀려 책의 구매가 감소하는 건 전세계적인 현상이에요. 그런데 그쪽 출판사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출판 현황을 물어보면 너무 쉽게 ‘괜찮아요’라고 해요. 우리나라 출판사들은 100이면 100 ‘지금보다 더 힘든 적은 없었다’고 슬프게 얘기하거든요. 어린이 책은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하고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영역이고 내부 사람들 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잘 가꾸고 지켜나가야하죠.”

결국 “태도의 문제”라고 정리한 이수지 작가는 “지원 문제가 아니라 있는 지원금이라도 깍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토로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내 책을 내고 싶어’라는 마음에서 촉발돼 다양한 행동들이 계속 이어져”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후배 작가들에게 “정말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후배들에게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정말 잘하고 있거든요. 지금처럼 즐겁게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죠.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책을 외국에 가지고 나가 알리는 것에 너무 두려움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음악과 그림책을 아우르는 디지털북 프로젝트과 몇권의 그림책을 동시에 작업 중이라는 이수지 작가는 “여전히 그림책에는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아서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며 “아날로그적인 책에서 디지털적인 세계로 건너가는 그림책을 비롯해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작업해 나갈 것”이라고 말을 보태기도 했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첫 번째 책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그림책은 모든 연령을 위한 책이기도 하죠. 유아 카테고리로 분류돼 교육적인 목표로만 소비되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 영역이기를 바라요. 그림책에 대한 태도가 좀 더 열려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장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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