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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정일우 “무대에 오르며 사랑하며 배우며,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입력 2024-03-29 18:00

정일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

 

“여성스럽게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몰리나가 가진 유약함, 정말 유리알같이 깨질 것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걸음걸이나 손동작, 말투 등이 더 몰리나스러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3월 31일까지 예그린씨어터)에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로 분하고 있는 정일우는 “영화 ‘대니쉬걸’(The Danish Girl)의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을 참고했다”고 털어놓았다.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하는 캐릭터(풍경화가 에이나르 베게너)가 결혼하고 나서 성 청체성을 깨달아는 이야기인데 그가 표현하는 디테일들이 몰리나랑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장국영 배우의 ‘패왕별희’도 참고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예민함 등 몰리나와 비슷한 결들을 끄집어내 표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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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트 감옥의 작은 감방을 배경으로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이율·전박찬·정일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범 발렌틴(박정복·차선우·최석진)의 이야기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이 1976년 발표한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1985년 영국 런던 브러시 시어터에서 연극이 초연됐다. 같은 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미국·영국 아카데미에서 몰리나 역의 윌리엄 허트(William Hurt)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이듬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거미여인의 키스’는 한국에서2011년 초연된 후 2015년, 2017년에 이어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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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

“감사하게도 같은 시기에 세편 정도의 연극에서 출연제의를 받았어요. ‘거미여인의 키스’나 몰리나는 제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극이자 캐릭터여서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분위기였죠. 고민하던 차에 (드라마 ‘해치’로 인연을 맺었고) 이전 시즌에서 발렌틴을 연기했던 정문성 형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형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고 나면 많은 걸 느끼고 배울테니 네가 꼭 도전해보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셔서 용기 내 도전하게 됐죠.”

그 과정은 그의 표현대로 “험난했다.” 두달 반가량 매일을 지하철로 혜화동을 오가며 고민하고 연습했다. 뭔가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깊어질 때면 박제영 연출에게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를 걸어 “엄청 괴롭히면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가장 큰 고민은 ‘몰리나의 사랑은 뭐지?’였어요. 이 친구가 가진 사랑은 이성 간 사랑이나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것 같았거든요. 멘붕이 온 상태에서 정문성 형이랑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형의 ‘모성애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겠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답이 되겠더라고요. 발렌틴이 부족한 걸 채워주려고 애쓰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몰리나의 사랑이 제가 어머니께 받는 것과 굉장히 비슷했거든요.”

치열한 고민 끝에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정일우는 “워낙 대사량이 방대하다 보니 죽을 만큼 부담감이 커서 지금도 매 공연 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며 “완성됐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매회 부족한 걸 찾아내고 채워넣으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게 연극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매 공연 100%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100% 만족은 어려워요. 매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그게 굉장히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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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정일우는 몰리나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며 “저는 굉장히 겁이 많고 항상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괜찮은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동굴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람이라 항상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몰리나가 굉장히 부럽기도 해요. 저 역시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제약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몰리나는 굉장히 자유로워요. 심지어 1960년대에 이렇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부럽기도 하고 몰리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그처럼 살아가고 싶기도 해요. 관객분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2인극으로 두명의 배우가 온전히 끌어가는 이야기다. 상대 배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몰리나가 되기도 한다는 정일우는 “최석진 배우의 발렌틴은 극 ‘T’(MBTI 중 감정 보다는 사고하는 유형)”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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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
“박정복 배우는 초반에 굉장히 날카롭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저를 안아주는, 오빠 같은 발렌틴이죠. 반면 차선우 배우는 오히려 제가 안아주고 싶은 동생 같은 모습이 있어요.”

타고난 본성, 스스로의 정체성에 당당하고 충실한 듯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 비밀 등을 숨기고 있는 몰리나 그리고 신념과 혁명을 위해 원초적 본성을 절제하는 듯 보이지만 억압 속에서 결국 본능에 충실하게 돼버리면서 고뇌하는 발렌틴.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이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기꺼이 보듬는 두 사람의 연대이자 사랑이야기다. 두 사람처럼 극과 극의 성향이지만 친해진 경우가 있냐는 물음에 정일우는 “이민호”를 언급했다.

“저와는 정말 다른 스타일이에요. (이)민호는 정말 남자 같거든요. 저는 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함께 여행을 가면 요리는 제가 다 해주고 챙겨주곤 하죠. 반면 민호는 터프하지만 은근히 챙겨줘요. 그 마음이 되게 따뜻한 친구죠.”

그렇게 정반대인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생사를 함께 나누면서”다. 정일우는 “배우가 되기 전부터 친구라 굉장히 많이 기대는 편”이라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친구”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만나면 혹은 제 연극을 봤다면 분명 뭐라고 할지 상상이 돼요. ‘거기서 왜 그렇게 연기를 하냐’는 둥 막 뭐라고 했겠죠. 그러면서도 저희는 항상 열심히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이예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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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

 

정일우는 “다시 한다고 해도 몰리나”라고 단언할만큼 몰리나에, ‘거미여인의 키스’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연극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날 공연을 잘하면 좀 개운하고 성취감도 느끼곤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굉장히 마음이 먹먹해져요. 공연 끝나고 나서도 그게 해소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날의 공연이 끝나도 굉장히 마음이 가라앉아요.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의 여운이 꽤 오래 가지 않을까,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있죠.”

정일우는 벌써 데뷔 20주년을 앞둔 중견(?) 배우다. 그는 “일하면서 관계자분들께 ‘시장이 좋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다들 영화며 드라마 제작편수가 줄었다고들 하시지만 10년 전이랑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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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몰리나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그래서 사실 배우도 잘 인내하고 버티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분명 무언가를 찾아서 할 것들이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어 그는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일우는 “벌써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올 정도로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며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우는 어쩔 수 없이 평가를 받는 직업이잖아요. 운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비슷비슷한 작품에서 출연제의는 계속 들어오긴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결국 뒤처질 수 밖에 없죠. 각자 스타일대로 노력해야 하고 저 역시 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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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정일우(사진제공=스튜디오252)

 

정일우는 연극에 대해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계속 하고 싶다”며 “이순재 선생님께서 ‘거침없이 하이킥’ 때부터 무대에 서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

“이전 작품(‘엘리펀트 송’)은 매번 와서 봐주시기도 했어요. ‘무대에 서지 않는 배우는 배우로 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2시간가량을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고 또 거기서 새로운 걸 느끼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배우로서 살아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회만 된다면 평생 무대에 서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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