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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부권·재표결·폐기 도돌이표, 경제입법 어디로 가나

입력 2024-07-31 14:14
신문게재 2024-08-01 19면

올초 한국경제인협회 세미나에서의 ‘의원입법에 사전 규제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새삼 떠올려지는 이즈음이다. 21대 국회 의원발의 법안은 2만3471건이었다. 15대 국회 대비 29배 이상인 것보다 핵심은 무분별한 규제 입법 증가다. 22대 국회 개원 60일 동안 발의된 법안 등 의안 개수 2367개 중에도 그런 유(類)가 많다. 경제를 멍들게 하는 과잉 규제, 입법심사 부실만 대충 꼽아봐도 설득력을 갖는 주장이다.

거대야권 주도의 최다 발의와 최다 폐기의 후속편은 더욱 모질어졌다. 각종 특검법안과 탄핵안에 고용·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25만원지원법(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 등 쟁점 법안에는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재표결 및 폐기라는 이상한 공식이 또 대기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본 것은 승자 없는 정쟁의 악순환이었다. 경제6단체가 본회의 통과도 전에 노란봉투법 거부권 요청부터 했을 정도다. 도돌이표 정쟁의 전개 방식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정작 화급한 민생·경제 법안들은 이 와중에 휩쓸려간다. 공포(公布)와 효력 발생 절차를 밟은 법안은 사실상 한 건이 없다. 입법 만능주의에 빠졌으면서도 무기력하다. 이런 입법부에 대고 생산성 0이라 말해도 표현이 무리하진 않다. 법안 상정, 필리버스터, 야당 단독 처리,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상시화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도 극히 예외적인 입법권 견제장치가 돼야 맞다. 이걸 국회 견제용의 효과적 무기로 만성화한 책임은 국회에도 있다.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도 660회의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엄포 놓는 태도는 물론 잘못됐다. 여야 합의 없는 입법 추진은 극단 대치의 반복을 부른다.

이렇게 몇 달 허송한 사이, 22대 국회 앞에는 정말 할 일이 쌓여 있다. 반도체 등 시설 투자의 세액공제 기간을 연장하는 K-칩스법(국가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은 특히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여야 공감대가 있어 얼마든 합의할 수 있다. 고준위방폐장법(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도 입법화를 지연할 성격이 못 된다. 고준위 방폐장이 없으면 당장 6년 후부터 원전은 순차적으로 멈추게 된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오히려 넓힌 노란봉투법은 걷잡을 수 없는 노동쟁의의 예고편 같다.

경제가 어디로 굴러가건 정작 민생과 직결된 법안은 제대로 못 처리하는 국회에 경제계는 깊이 절망하고 있다. 사생결단식 입법·탄핵 폭주를 멈추고 이견이 크지 않은 민생법안, 경제법안이라도 우선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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