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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1300년 전 문무대왕 염원 담은 석탑만 남았네

2024-07-04 13:18

감은사지는 동해안을 등지고 있는 야산 기슭 중턱에 자리 잡은 통일 신라 시대의 사찰로 동해에서 신라 수도 경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세워진 절로 현재 동·서 삼층석탑 2기(국보 제112호)와 법당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창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절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호국사찰로 682년 완성했다. 문무대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해 동해에 장사지내라’ 유언했다고 한다. 그 뜻을 받들어 장사지낸 곳이 절 근처 동해의 대왕암이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당시에는 바닷물이 법당 앞까지 들어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법당의 지하 배수 시설과 바다로 연결되어 아버지(문무대왕)가 동해의 용이 되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법당 앞이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어 당시의 아름다움을 찾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감은사는 호국사찰로 호국 사상이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뜰에 동·서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을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리고 각 부분에 통돌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개의 부분 석재로 조립해 더 크고 아름답다. 탑을 해체 수리할 때 동·서 석탑에서 각각 사리장엄구(보물)가 발굴되었다. 또한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신라 쌍탑 가람배치의 첫 사례로 신라 석탑에 양식적 토대를 제공하여 한국 석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액티브 시니어] 남북 '풍선대결' 자제를

2024-07-04 13:17

북한 대남전단 추정 물체가 서울 인근 상공에서 식별돼 서울시는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알렸다. 북한이 지난 5~ 6월에 쓰레기와 가축 분변 등 오물이 담긴 풍선 약 1000개를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강화도에서 대북 전단 30만 장과 K팝, 트로트 동영상 등이 저장된 USB 2000개를 풍선에 담아 날려 보내서 오물 풍선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한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003년 박상학 대표가 만든 단체로 정식 회원은 대략 800~900명 정도로, 탈북민 4만 5000명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는 1998년 탈북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대북 전단 살포에 앞장서면서 북한으로부터 여러 번 살해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가 보낸 전단은 부모 형제들에게 자유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사는지 진실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보낸다고 했다. 전단 내용은 ‘진짜 용이 된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소책자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발전, 역사 등이 담겨있고 우리나라 스포츠 스타, 대기업의 발전상도 들어있다. 그는 서울에서 오래 살아 북한 실정을 잘 모르기에 중국 국경 지역에서 북한 사람들과 직접 통화해서 무엇을 보내면 북한 동포들에게 도움이 될지 물어봐서 북한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보낸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미국 후원받아 타이레놀, 국내 후원받아 비타민C, 마스크를 보냈는데 북한은 답장으로 오물과 쓰레기를 보내는 야만적 행위라고 분노하며 김정은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대북 전단을 계속 보내겠다고 했다.미국 교포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1달러 지폐 뭉치도 전단에 동봉했다. 북한에서는 1달러 지폐가 희귀해 암거래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행운을 가져온다며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그는 평양에서 살았을 때 조선노동당과 김일성, 김정일 있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 불모지, 생지옥이라고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사실과 전혀 달라 분노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과 진실이다. 그래서 대북 방송으로 DMZ안에 근무하는 북한 군인들 60만~70만 명에게 계속 한류열풍을 불어 넣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했다. 군가밖에 없는 북한은 임영웅과 나훈아 노래, 드라마 겨울연가를 좋아해서 보낸다고 한다.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핵미사일, 패트리어트 미사일, 미군 전략폭격기 B-1B가 뜨는 것도 무서워 않는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과 사실이다. 중고등학생들이 남한 드라마를 보았다고 공개처형으로 12년간 감옥으로 보냈다는 뉴스로 보고 깜짝 놀랐다. 이처럼 진실은 숨길 수가 없어 언제인가 드러나기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오물 풍선 속에 들어있는 폐지 꽁초 오물 등은 북한에서는 자원이 된다고 한다. 폐지 꽁초 구하기도 힘들고 오물도 비료로 쓰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이다. 오물 풍선을 보내 삼천리강산을 오염시키는 비열한 도발은 중단되어야 한다. 북한과 박 대표는 대결로 마주 설 것이 아니라 서로 자제해서 남북한 주민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소통하며 사는 방법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액티브 시니어] 신라 발전 염원 담은 목탑… 10분의 1 모형에도 웅장함 그대로

2024-06-20 13:27

현장에서 황룡사지가 어디냐고 물으니 이곳 보리밭이라고 했다. 누런 보리가 익어가는 6만6000㎡의 광활한 들판이 황룡사지라니 깜짝 놀랐다. 별도의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찰인가 짐작할 수 있다. 이 절은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고 현재는 탑의 초석만이 남아 있어 아쉽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들어가 당시의 목탑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황룡사 9층 목탑 모형(10분의1 크기)은 4만2000개의 목재와 8만5000장의 동으로 만든 기와를 사용하여 8년 동안 만든 것을 보고 감탄했는데 실제 목탑은 어땠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신라 시대 최대 호국사찰의 장엄한 모습을 보는 듯 자랑스럽다. 왕은 국가적 행사나 우환이 있을 때 이 사찰에서 고승을 청하여 예불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중요사찰임을 알 수 있다.당시 신라는 밖으로는 고구려와 백제가 침입하고 안으로는 여왕의 통치에 맞서 반란 등 여러 가지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불교의 힘으로 왕권과 신라를 지키려면 황룡사에 목탑을 세우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이 탑은 자장 율사가 당에서 귀국하여 황룡사에 탑을 세울 것을 선덕여왕에게 건의했다. 왕은 군신과 의논하자 신하들이 ‘백제에서 공장을 청한 연후에야 가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삼국 가운데 백제의 건축 기술이 뛰어났기에 왕과 관료들은 보물과 비단을 선물하고 백제에 목탑건립을 요청했다. 백제 공장 아비지는 명을 받고 소장(小匠) 200명을 이끌고 와 17년 동안 약 66.70m나 되는 초대형 목탑을 완성했다고 하니 얼마나 큰 공사임을 알 수 있다. 이 목탑의 모습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경주 타워와 중도 타워를 완공하여 관광명소가 되었다. 황룡사가 복원되어 본래 모습을 볼 날을 기대해 본다.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액티브 시니어] 과객 대접을 후하게… 명당서 발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2024-06-13 13:00

경주 최부자 댁은 멀리 경주 남산이 보이고,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집안은 도덕적 의무와 관용을 몸소 실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자금줄 역할을 담당해서 존경을 받았다.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키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가훈처럼 내려온 여섯 가지 행동 지침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마라.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사방 백 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라’ 등을 실천했으니 현대인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최부자 집의 생활상을 살펴보고 궁금증을 풀려 한다.교촌마을은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고, 경주 교동법주를 만드는 명당자리이다.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기둥을 낮게 만들어 집의 높이를 낮춘 것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가 옆에 있어 이에 대한 배려로 최부자 댁의 건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작은 쌀통이 하나 있다. 최 부자 집의 가훈은 과객을 후하게 접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부자 집 사랑채는 항상 과객들로 넘쳐나 집 근처 하인 집에 머물게 하였다. 이때 이 쌀통에서 쌀을 한 줌 집어 들고 하인 집으로 가면 과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밖에서 본 최부자 댁.

[액티브 시니어] 가정에서 임종하는 제도

2024-06-13 12:59

고령자들의 화두는 단연 아프지 않고 살다 고통 없이 자기가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고령자는 신문이나 방송, 카톡으로 부고가 오면 고인의 나이가 몇 세 인가를 먼저 본다고 한다. 자신과 비교해 보고 자신보다 적으면 무슨 병으로 죽었을까? 자신도 그러한 병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며 좋다는 것을 골라 먹는다고 한다. 자신의 나이보다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나도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고령자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죽음의 정숙함이야말로 우리 미래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하며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했다.죽음은 누구에게나 미래에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 식물은 씨앗으로 동물은 새끼를 낳아 자기의 종족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사람은 누구나 품위를 유지하며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옛날 어르신들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 건강하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왜 그런 말을 할까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 들고 보니 그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기 때는 배설이 잘되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일과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배설이 순탄하지 않다. 왜 그럴까? 먹은 만큼 땀으로, 에너지로 순환되어 배출되어야 하는데 몸 안에 독소로 남아 있으니 배설 기능이 저하된다. 그래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나이 들면 여자는 변비로 남자는 전립선 비대로 저녁에 소변을 보느라 두세 번 일어나니 잠잘 시간이 없어 피곤을 달고 살아야 한다. 저녁때 되면 커피도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저녁 시간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은 생활비 지출보다 병원비 지출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신체적인 노화가 원인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큰일이 난 것처럼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해도 해결될 일도 아니고 오히려 고통은 더해져 노화는 더 빨리 진행된다. 죽음은 미래에 다가오는 불청객이다. 한국인은 요양원이 아닌 가정에서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100세 시대, 대한민국에 지난해 11월 통계에 따르면 100세 이상 인구가 8,553명으로 나타났다. 식생활 습관의 변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젠 많은 사람이 100세 이상 살 것이며 기대하고 있다. 대만은 요양원에 가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알지만, 한국인은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죽으러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가장 싫어한다.그래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10명 중 7명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한다. 정부는 고령자가 가기 싫어하는 현대판 고려장에 가지 않고도 살던 집에서 충분히 돌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자기가 살던 집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2024-06-06 13:48

절은 산속에 있어야 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분황사는 평야 지대에 있어 절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절 입구에 멀리 떨어진 보리밭에 당간지주가 서 있고, 발굴조사 결과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 자형 일탑삼금당식가람 (탑을 중심으로 동·서·북면 세 곳에 법당을 배치) 하는 양식으로 보아 대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경주시 분황사에 있는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어 승려 자장과 원효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하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 절에는 모전석탑(국보 30호)을 비롯하여 중문 보광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전탑은 인도와 중국에서 벽돌 만드는 황토가 풍부하고 인력을 쉽게 동원할 수 있었던 곳에서 손쉽게 만들던 양식이다.우리나라 전탑은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만들었으니, 그 노력과 정성은 전탑에 비할 수 없이 귀하다. 이 석탑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볼 수 있어 아쉽다. 기단 4면 중앙에 문이 있고 문 양쪽에 금강역사를 조각하고, 탑 모서리에 사자상을 안치하여 사리함을 지키고 있어 대견스럽다.임진왜란 때 반쯤 파괴되었는데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할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주화 등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원효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설총이 그 유골을 분쇄하여 점토로 형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셨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볼 수 없어 아쉽다.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액티브 시니어] 부재 파손·보호 장치… 신라시대 때의 참모습 언제쯤

2024-05-23 13:02

서울 도봉문화원은 며칠 전 1박 2일간 경주지역과 토함산 석굴암에 다녀왔다.일주문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산책길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비켜서기 힘들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석굴암에 오르니 수목이 우거져 바다를 훤히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석굴암에 오를 때 좌·우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해설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보수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재로 이때부터 파손되었다고 설명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부재들이 제자리로 들어가 석굴암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석굴사원은 인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졌다. 인도나 중국에서는 절을 짓는 것보다 돌을 뚫어 그 안에 부처를 모시는 게 쉬웠으나, 우리나라 산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굴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돌을 쌓아 올려 인공적으로 석굴을 만들게 되어 세계적으로 유일한 인공 석굴이 탄생했다. 신라 장인들은 석불 사원을 평지가 아니라 샘이 흐르는 터에 건축했다. 샘물이 사원 밑으로 흐르고 내부의 습기도 샘물과 함께 흐르게 하여 석불을 보존하고 있다. 또한 통풍이 잘되도록 열린 구조로 설계하여 자체적으로 습도 조절과 환기를 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한 김대성이 존경스럽다. 현재는 내부를 전면 공개 관람시키려고 온도와 습도 조절을 하기 위해 목조 전실과 유리 벽을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지만 답답하고 어색해 보인다.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석굴암 외부 모습.

[액티브 시니어] 교권 회복이 우선

2024-05-16 13:17

필자 어린 시절만 해도 부모의 말은 듣지 않아도 선생 말은 잘 들었다. 잘못하면 벌 받고 청소하고 회초리 맞았다. 집에 와서 맞았다고 말하면 오직 잘못했으면 맞았느냐고 꾸중하며 회초리로 더 맞았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최근 학교에서 조그마한 사건 사고가 나면 학부모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교사를 협박해서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어 정부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필자는 60년대 후반 농촌으로 교사 첫 발령 받았다. 당시에는 학부모들도 교사를 존경하고 사기를 북돋아 주어 학생들 학습지도에 어려움이 없었다. 숙제, 새마을 청소, 지역사회 봉사, 나무 심기, 모내기 등을 해도 말없이 잘 따랐다. 지금 같으면 협박과 고발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스승의 어원과 선조들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살펴보고자 한다.스승의 어원은 무당(巫堂)과 사승(師僧)에서 유래한다. 옛 문헌에 무(巫:스승)는 여자 무당으로 고대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스승은 원래 불교의 중을 사승 혹은 사(師)님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이율곡의 학교모범(學校模範)에는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 안 되고,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고, 웃을 때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스승과 겸상할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성균관 학칙(學則)에는 길에서 스승을 만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 있어야 하고, 말을 타고 갈 때는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한편 고려 때에는 선생이란 말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었다. 조선 시대 문주회(文酒會)는 선비들이 술 마시며 글 짓는 모임으로 서로 선생이라 호칭했다. 비록 벼슬이 높은 귀인일지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대인이라 불렀다. 이처럼 선생이란 아무에게 호칭하지 않는 귀한 존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가르친다.오늘날 스승의 날 유래는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의 청소년적십자에서 시작되었다. 윤석란을 비롯한 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을 위문하고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 활동을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은사의 날로 정했다.요즈음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고 한다. 스승은 단순히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참 스승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정부는 겨레의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 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요즈음처럼 교권 침해가 빈번히 벌어진다면 참된 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 겨레의 참된 스승과 참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인권 보호와 교권을 신장시켜야 한다. 교권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임을 명심해야 한다.

[액티브 시니어] 수면 이혼

2024-04-25 13:32

누구든지 동료와 함께 여행을 가거나 연수를 가서 같은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옆에서 코골이가 심해서 밤잠을 설친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홀로 거실에 나와 잠을 청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을 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밤잠을 설치고 나면 다음 날 얼마나 피곤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할 때 부부간에 공간이 멀어지면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는 등 주례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지금도 부부는 붙어서 자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것 아닌지 그 가정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생각한다.당사자도 각방 쓰는 것을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려 한다. 지난해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신혼의 20대 부부는 한 몸이 돼 포개서 자고, 30대 때까지는 마주 보고, 40대는 천장을 향해 자고, 50대는 서로 등 돌리고 자고, 60대는 각 방에서 자고, 70대는 피차 어디서 자는지 모르고, 80대는 한 사람은 지상에서 다른 사람은 하늘에서 잔다는 우스개가 전해진다. 우리나라 한 결혼정보업체가 부부간 수면 환경을 조사했더니 3명 중 1명이 각방을 쓰거나, 한방에서 자더라도 침대를 따로 쓴다고 한다. 남편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 여행 가서 호텔 방을 2개 잡는 사람도 있고, 에어컨을 켜고 자는 남편과 온수 매트를 안고 자는 아내는 같이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으니 불행하다고 한다. 또한 귀가 밝은 사람은 옆에서 뒤척이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배우자와 잠을 자면 한숨도 못 자고 피곤함을 호소한다. 지나친 음주, 수면 온도, 이불 두께, 조명, 소리 등으로 숙면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각방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부부가 어떻게 자면 아내와 남편의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즘 현대 여성들에게 수면무호흡증 혹은 코골이 증세로 수면 클리닉을 방문하는 분들이 2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코골이로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수면 이혼이 유행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수면의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3명 중 1명은 수면 이혼 상태라고 한다. 연령대가 낮을 수록 비율이 높아 밀레니얼 세대는 43%라고 하니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잠자는 동안 신체는 성장과 세포를 복구하고 손상된 근육과 조직에 에너지와 영양소를 공급한다. 또한 호르몬의 균형을 유지하고 기억력과 면역 체계를 지원한다. 그래서 잠을 잘 자야 배우자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수면이 부족하면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 심각한 정신 질환, 자살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부부간에 수면의 질을 높이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 수면으로 이혼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연분홍 물결 속 시 낭송에 흠뻑

2024-04-18 14:13

한국문인협회 도봉지부 회원들은 며칠 전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원미산 기슭에 자리 잡은 진달래동산에 다녀왔다.나무로 만든 ‘원미산 진달래동산’ 출입구를 지나면 김소월 시비와 진달래동산 표지석이 우리 회원들을 반갑게 맞아줬다.김소월 시비는 진달래꽃으로 둘러싸여 시의 운치를 한층 더하고, 진달래동산 표지석에는 양귀자 단편소설 ‘한계령’ 중에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고, 연초록 잎사귀들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가만히 있어도 연초록 물이 들 것 같더라고….’ 인용된 글귀가 새겨져 탐방객이 읽으며 진달래동산의 의미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원미산은 부천의 주산으로서 3만여 그루의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진달래동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은 원미구 춘의동에 있다. 춘의(春衣) 지명이 봄옷을 입는 동네라는 의미이다. 봄이 되면 진달래뿐 만이니라 개나리 벚꽃 복사꽃이 많이 피어 꽃 옷으로 갈아입는 동네로 어울리는 지명이다. 매년 4월에 열리는 원미산 진달래 축제는 지역 축제로 자리 잡고 있어 많은 관람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바람에 원미산 계곡에 연분홍 물결이 출렁였다. 넓게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관람객들은 포토존에서 인증샷으로 예쁜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흙길로 조성되어 맨발로 걸으며 건강미를 자랑하는 사람도 보였다. 도봉 문인들의 낭낭한 시 낭송은 진달래꽃 속에 메아리 되어 주변의 분위기에 젖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국문인협회 도봉지부 회원들이 부천 진달래동산 김소월 시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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