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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1300년 전 문무대왕 염원 담은 석탑만 남았네

<시니어 탐방>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입력 2024-07-04 13:18
신문게재 2024-07-05 13면

감은사지 삼층석탑(국보)
감은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지는 동해안을 등지고 있는 야산 기슭 중턱에 자리 잡은 통일 신라 시대의 사찰로 동해에서 신라 수도 경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세워진 절로 현재 동·서 삼층석탑 2기(국보 제112호)와 법당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창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절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호국사찰로 682년 완성했다.

문무대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해 동해에 장사지내라’ 유언했다고 한다. 그 뜻을 받들어 장사지낸 곳이 절 근처 동해의 대왕암이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바닷물이 법당 앞까지 들어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법당의 지하 배수 시설과 바다로 연결되어 아버지(문무대왕)가 동해의 용이 되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법당 앞이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어 당시의 아름다움을 찾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감은사는 호국사찰로 호국 사상이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뜰에 동·서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을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리고 각 부분에 통돌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개의 부분 석재로 조립해 더 크고 아름답다. 탑을 해체 수리할 때 동·서 석탑에서 각각 사리장엄구(보물)가 발굴되었다. 또한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신라 쌍탑 가람배치의 첫 사례로 신라 석탑에 양식적 토대를 제공하여 한국 석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정운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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