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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길이보다 깊이… 5000년을 사는 바오밥 나무의 지혜처럼

창간기획 '100세 시대 행복론'
길게 산다는 가치보다, 열정 있는 삶이 더 가치 있는 행복

입력 2014-09-24 20:22

삶은 고단한 일상에 오늘 무릎을 꿇을지라도 내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일어섬은 나의 오늘과 내일을 위함이다. 내 아들과 딸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함이다. 삶이 꼭 고달프고, 힘든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 줄, 한 점 반전이 없는 삶은 무료하다. 치열, 열정, 극복, 도전 등과 같은 강한 언어의 것이 아니라도 이미 삶은 충분히 치열했고, 열정적이었다. 도전할 것도 많았고, 극복도 많이 했다. 크든 작든 그랬다. 어제건, 오늘이건, 그날을 사는 군상의 삶은 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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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이자 대문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열정이 식었을 때 늙는다"(None are so old as those who have outlived enthusiasm)라고 알아듣기 어렵게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 모를 일이다. 

남녀 간 열정의 절대 조건은 남자의 조건도, 여자의 순수한 마음도 아니다. 남녀 간 뜨거운 사랑의 절대 조건은 주변의 반대다. 남녀 사랑을 반대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비로소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랑이 완성된다. 영화 '러브스토리'가 그랬다.

물은 어떠한가. 바닷물이 구름이 되어, 비가 되어 어머니 젖과 같이 강을 흐르고, 대지를 적시며, 나무에 젖어 든다. 인간은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밥을 짓고, 몸을 씻는다. 물 주변에 집을 짓고, 땅을 일구고, 자손을 퍼뜨린다. 물은 각각의 물체에 맞게 극적으로 변신하다 스스로 자양분이 되어 사라질 뿐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함께 나이 들어 갑시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라고 말한 가운데 "가장 좋은 것"(The best)도 아마 희망이었으리라. 남 부러울 것 없는 그에게도 함께 늙어가고 싶은 한 여인을 향해서는 무언가 간절함이 있었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일은 어둠에 찾아들어 환함에 깃든다. 그게 세상이치다. 어둠 뒤에 환함이 있으니 지금 사는 게 고달프다 해서 낙담할 것만은 아니다. 삶도 그렇다. 어둠의 굴곡 없이 어찌 환함에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인간은 내일이 비록 어둠에 찾아들어도 내일을 희망이라 부른다. 내일의 다른 말은 희망이다. 내일이 없는 삶은 죽음이다. 그러니 오늘 삶이 힘겨워도 내일이 있는 삶은 늘 희망이다. 

독일 작센탄광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기력한 자신에 대해 이렇게 투덜댄다. "아무 것도 시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의 삶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력증에 허우적대던 그도 삶의 끝자락을 '시도하는 용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대문호도, 사랑에 빠진 시인도, 시커먼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훗날의 위대한 화가도 열정과 희망, 용기가 삶의 의미였다.

삶이 길어지고 있다. 길고 긴 삶은 인간의 누천년 역사 이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이다. 길어진 삶도 대개의 인간에게는 새로운 고단의 일상일 테지만 거기에 희망 또한 있을 것이다. 

희망이 있으니 비록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긴 삶이라도 우리가 못할 것은 없으리라. 희망과 열정, 용기의 내일이 있으니. 

방형국 기자 waynecook@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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