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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금속노조와 세월호 참사가 전하는 ‘그들’이 아닌 “우리 괜찮아!” 연극 ‘노란봉투’

[히든콘] 이양구 작가, 전인철 연출이 전하는 세월호와 노조이야기, 연우무대 창단 40주년 기념작 ‘노란봉투’

입력 2017-05-01 07:00
신문게재 2017-05-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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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노랑’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색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염원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색이며 기업이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해 가압류하는 행위를 해결하기 위한 기부 캠페인에 쓰인 것도 ‘노란봉투’였다. 이에 손배소 가압류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노란봉투법’으로 불린다.



그리고 연극 ‘노란봉투’(5월 1일까지 연우소극장) 속 SM기계 노동자들의 월급봉투이자 회사에서 회유책으로 건네는 기업노조 가입신청서가 든 봉투의 색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창작연극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연우무대가 40주년을 맞아 ‘노란봉투’를 무대에 올렸다. 2014년 초연 후 2015년 재연됐고 올초 정부 주도로 작성된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며 연극인들이 광화문광장에 세웠던 블랙텐트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2015년 재연돼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된 ‘노란봉투’는 금속노조와 세월호 참사를 안쓰럽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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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란봉투’의 병로.(사진제공=연우무대)

‘노란봉투’는 “내 카메라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방송국 PD 이고(안병식)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자동차의 엔진과 배기통을 연결해 엔진 과열과 차체 진동을 막는 완충장치 벨로우즈를 생산하는 안산 소재의 SM기계 노조원들의 이야기로 이양구 작가, 전인철 연출의 작품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파업에 앞장섰다 해고당한 비정규직 병로(백성철), 아직은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지호(조시현)·영희(김민선)·아진(양정윤)과 기업노조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회사로 돌아간 강호(김민하)의 이야기다. 

 

그리고 등장하진 않지만 병로·지호·영희·아진 등의 대화 속에서 뼈저리게 다가오는 민성과 그의 아들 민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민성은 3년 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파업을 주도한 병로의 친형 같은 동료로 회사로부터 1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가압류 보복에 시달리다 사측으로 돌아선 인물이다. 해고당한 이들은 스스로를 ‘죽은 사람’, 회사로 돌아간 동료들을 ‘산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분노에 들끓는 병로를 비롯한 노조원들에게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말은 그래서 가슴을 울린다.

3년 전처럼 반복된 60여일간의 파업, 이 저항이 끝나면서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또다시 손해배상 청구 보복에 나섰고 병로와 지호는 수억원대에 달하는 떠안게 된다. 동료를 뒤로 하고 회사로 돌아간 ‘산 사람’ 민성, 강호도 편한 건 아니다. 

 

CCTV와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감시조에 잠도 식사도 잊은 채 일해야만 한다. 그런 그가 노란봉투를 들고 들어선 노조사무실, ‘죽은 사람’ 병로는 서슬 퍼런 욕설을 쏟아내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 선 영희와 아진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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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란봉투’ 강호.(사진제공=연우무대)

 

노란봉투는 모두에게 갈등요소다. 노란봉투 속 기업노조 가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순간 수억원대의 빚은 사라지지만 비인간적인 노동착취와 비정규직 차별은 더욱 극심해진다. 온전치 못한 자식 뒷바라지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영희, 수억의 빚을 떠안고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는 병로와 지호 등은 물론 회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밤샘작업과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민성과 강호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런 중에도 JTBC 손석희 앵커와 파업 노동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송을 흉내 내며 웃음을 자아내는 병로와 지호, 동료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노조사무실에 들어선 강호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PD이고에게 전해진 세월호 참사. 

 

그 배에는 민성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민우가 타고 있었다. 그렇게 죽은 사람·산 사람으로 나뉜 노조와 세월호 참사는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결국 아들 뒤를 따른 민성, 그의 장례식을 둘러싼 갈등은 눈물겨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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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란봉투’.(사진제공=연우무대)

 

그들이 증오를 불태우던 ‘산 사람’은 죽었고 ‘죽은 사람’은 살겠다고 또 다시 저항을 시작한다. 그들의 분노 대상은 자신들을 배신하고 회사로 돌아간 이들도, 찬 바닥에서 농성 중인 동료들을 외면하고 출근도장을 찍는 이들도 아닌 이 사회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는 노조원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세월호 참사를 불렀다.

“벨로우즈를 만드는 우리한테는 정작 완충장치가 없다”는 지호의 말처럼 그들은 결국 맨몸으로 투쟁에 나선다. ‘죽은 사람’ 병로와 “언제쯤이면 밤에 잠을 잘 수 있을까요”라고 한탄하는 ‘산 사람’ 강호가 함께 전광판에 오르면서 극은 서로가 서로의 완충장치가 돼주는 결말을 맞는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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