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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화석으로 되살아난 고대 … 이탈리아 지중해문화 진수 나폴리·소렌토

카프리섬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망무제의 바다 … 로마 황제도 별장 남겨

입력 2017-10-18 11:07   수정 2017-10-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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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 상가 주택 밀집지와 중앙의 마차도로

이탈리아 패키지 여행엔 나·폼·소 3종 세트가 필수로 들어간다. 그만큼 지중해 문화의 진수를 대변한다는 의미다. 이번 여행은 폼페이 유적지를 둘러보고 기차를 타고 반도처럼 돌출한 소렌토에 내려 배를 타고 앞바다의 카프리섬에 기착해 섬 관광을 마치고 나폴리로 북상하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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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자기와 당시 생활도구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 나폴리현 폼페이 코무네에 속한다.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 떨어진 베수비오산(Monte Vesuvius 1281m) 근처에 있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에서 화산이 분출하면서 두께 4~7m의 화산재와 분석에 묻혀 파괴됐다. 174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이뤄져 광장, 목욕탕, 수로와 마차도로, 원형극장, 약국, 주점 등의 유적지가 발견됐다. 현재 5분의 4 정도가 발굴됐다. 2010년 11월 6일에 폭우로 ‘검투사의 집’이 붕괴돼 아쉬움을 남겼다.


원래 항구를 낀 농업·상업의 중심지이자,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다. 지금은 내륙이 됐지만 당시엔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을 저장하고 비싸게 유통해 부를 축적한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기후와 토질이 좋아 농업도 발전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서 묘사됐듯이 1세기의 폼페이는 로마에 완전히 동화돼 번영을 누렸으며 향락과 방종의 소굴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폼페이에 화산이 터졌다는 것인데 이미 시민 다수가 알코올중독, 납중독(식기·술잔에 납 사용)으로 폼페이는 오래 가지 못할 한계에 다다랐다는 가설도 있다. 유적을 살펴보니 고기잡이로 만선한 선장이 공중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미녀와 밤새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했을 시대상이 떠오른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이탈리아어로 에르콜라노 Ercolano)도 폼페이와 함께 동시에 화산재에 파묻힌 유명한 고대 유적지다. 폼페이가 베수비오산에서 남쪽으로 수 ㎞ 떨어져 있다면 헤르쿨라네움은 베수비오산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나폴리와도 훨씬 가깝고 바다에서 멀지 않다. 발굴 전까지 화산쇄설암에 거의 진공상태로 유적이 보존됐기 때문에 목재는 물론 지붕, 침대, 창호, 음식 등이 유기질 상태로 남아 있다. 해안가에선 300개의 해골도 발견됐다. 헤르쿨라네움은 고급 가옥이 밀집한 것으로 봐 폼페이보다 훨씬 부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폼페이의 화산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2만명 추정) 중 2000~5000명이 즉사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63년 2월에도 대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시는 순탄하게 재건됐다. 그러다 16년 뒤 화산 분출로 소멸되고 말았다.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평평한 언덕 위에 건설됐다. 주위의 농경지와 와이너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폼페이는 로마시대부터 와인 산지로 유명했다. 인구 2만의 도시에 와인바만 200개가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폼페이 농경지는 화산쇄설암으로 구성된 약 30㎝ 두께의 토양으로 이뤄져 통기성이 뛰어나고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다. 유기물도 토양 사이에 잘 스며들어 거름을 저장·소통하기에 좋다. 이런 테루아(토양)와 강렬한 햇빛 덕분에 폼페이는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역에 빠지지 않는 와인 산지가 됐다. 이탈리아 특유의 와인 품질을 자랑하기 때문에 전문 투어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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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항


폼페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남서해안을 따라 달리니 소렌토(Sorrento)다. 불량 승객 탓에 기차 출발이 지연된 탓에 더 늦어졌다. 소렌토는 캄파니아주 나폴리현 소렌토 코무네에 속하는 소도시이다.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다. 치안이 불안하고 무질서하다고 소문난 나폴리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다. 호텔도 많고 교통편도 비교적 잘 구축된 작은 소도시다. 소렌토는 나폴리만을 바라보고 해안가 뒤로 조그마한 마을이 얹혀 있는 형태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인기 휴양지로 사랑받았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이탈리아 가곡의 배경과 국내 자동차 브랜드로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이 곳은 레몬, 올리브, 와인의 주산지다. 특히 세계 최고급 레몬 산지로 꼽힌다. 여기 레몬은 1세기부터 재배됐으며 개당 무게가 80g 이상이어야 소렌토산으로 인증되며, 지정된 지역에서만 재배가 허용된다. 레몬은 젤라토, 리큐어(limoncello), 사탕, 소르베(sorbet 과즙에 설탕을 넣어 얼린 빙과) 등에 들어간다. 웬만하면 특산품을 구매하지 않는 필자도 모처럼 레몬 리큐어와 사탕을 샀다.


소렌토는 자체에서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드물고 대개는 경유하거나 베이스기지로 이용되는 것 같다. 주로 카프리섬(Isola Di Capri) 또는 이스키아섬(Isola Di Ischia)을 가거나, 포시타노(Positano)·아말피(Amalfi)·라벨로(Rabello)를 거쳐 살레르노(Salerno)로 향할 때 쉬어가는 곳이다. 요즘 새로 뜨는 코스가 소렌토에서 살레르노에 이르는 아말피 해안도로 드라이브(또는 해안 페리투어) 및 미식여행이다. 해안 절벽의 지질학적 풍광과 그 공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은 그림 같이 환상적이다. 소렌토 절벽 내리막을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카프리 행 여객선이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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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항


카프리섬은 사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환상적이다. 맥주 브랜드, 카페나 바의 상호 등에 쓰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Seiren, 영어로 Siren)의 무대가 소렌토 앞바다의 이 섬이다. 세이렌은 반은 여자, 반은 새로 카프리섬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가다 세이렌의 달콤한 노래에 넋을 잃고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경찰차나 응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도 세이렌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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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누오보성
 


카프리섬에 여객선이 다가서니 급경사의 절벽에 층층이 낭만적인 저택들과 상업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과 중앙을 그냥 카프리, 서쪽을 아나카프리(AnaCapri)라고 한다. 카프리에는 해발 260m 안팎, 아나카프리에는 해발 500m안팎의 산봉우리가 몇 개 있다. 면적은 10.4㎢ 정도인데 봉우리가 높으니 전반적인 경사가 가파르다. 카프리항에서 내리자마자 여행가이드들끼리 출발 순서를 정하는 추첨에 들어갔고 우리 일행은 운이 좋아 두번째로 카프리섬 최고봉인 솔라로산(Monte Solaro, 589m) 케이블을 탈 수 있는 중형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좁은 지그재그 산길을 마주 내려오는 차량을 피해 잘도 올라간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니 소방서와 돌덩이 하나로 표석을 세운 세계에서 가장 작다고 하는 로터리가 보였다. 내려가는 차량과 올라오는 차량이 30도에 불과한 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로터리를 돌아야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 섬은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사랑받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계승자인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지가 남아 있다. 섬 전체는 용암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시대부터 유명한 ‘푸른 동굴(Grotta Azzurra)’은 길이 53m, 너비 30m, 높이 15m의 해식동굴로 햇빛이 들어와 동굴 안을 푸른빛으로 채운다.


산 미켈레 저택(Villa San Michele)은 꼭 둘러봐야 할 건축물로 꼽힌다. 스웨덴 태생으로 부를 축적한 의사 악셀 문테(1857~1949)가 아나카프리 좁은 골목의 다 쓰러져 가는 옛 돌집 몇 채를 구입해 환상적인 환상적인 빌라로 탈바꿈한 것으로 로마, 스칸디나비아, 무어 양식을 과감하게 혼용해 재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리만을 향해 돌출한 바위 위에 여러 층으로 지어졌다. 문테는 죽기 전 이 저택을 스웨덴 정부에 기증했다.


약 15분간 한 사람만이 탈 수 있는 푸니쿨라레(스키장 리프트와 유사)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일망무제의 탁 트인 바다와 섬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오르고 내리는 기분도 상쾌해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못했다. 뜨거운 날씨에 레몬 소르베를 한잔 들이키니 오장이 다 시원하다. 내려오는 길에 이탈리아 현지 여행가이드는 전라도 사투리조로 ‘돌아오라 소렌토’와 ‘오 솔레미오’를 이탈리아어와 한국어로 섞어 부른다. 일행들의 팁이 후하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카프리섬에서 1박이나 2박을 한다는데 패키지 여행이라 다시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항에 다가가는데 아무리봐도 이른 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항, 호주 시드니항과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는 나폴리항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이드는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선원들이 오랜 항해를 마치고 나폴리항(지금은 신항, 과거엔 주로 산타루치아항구 이용)에 도착하면 바로 가까이에 델보로성(Castel dell’Ovo), 플레비시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 산카를로극장(Teatro di San Carlo), 누오보성(Castel Nuovo) 등이 지친 선원을 맞이하는 모양새라 미항으로 여겨졌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나폴리는 인프라가 낙후되고 경제적으로 후퇴하는 우범지역이라 관광객이 내리면 불상사가 발생한다며 요즘엔 패키지 여행에서 나폴리를 경유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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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누오보성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폴리민요 ‘오 솔레미오’와 ‘산타루치아’의 무대이자, 한 때 지중해를 장악한 찬란한 역사를 감안하면 이 곳을 경시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산타루치아는 나폴리 수호신이자 해안의 지명이자 가곡명이기도 하다. 나폴리는 여전히 이탈리아 3대 오페라극장(로마, 밀라노, 나폴리)이 있을 만큼 성악으로 건재하고, 해산물과 신선한 채소와 풍미깊은 치즈로 만든 마르게리따 피자의 원조로 꼽히는 까닭에 용감한 관광객들은 나폴리를 필수코스로 들른다. 


그 첫째인 델로보성은 일명 ‘달걀성’으로 불리는 해안 요새다. 나폴리를 3대 미항으로 만들어준 산타루치아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섬(Borgo Marinaro) 위에 세워졌으며 다리로 연결돼 있다. 달걀성의 유래는 감옥이 달걀 모양이라는 설과 이 성을 지을 때 비르질리오(Virgilio)라는 사람이 기초 부분에 달걀을 담은 항아리를 묻고 달걀이 깨지만 성뿐만 아니라 나폴리도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설이 양립한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엔 폼페이·에르콜라노 발굴 유물과 고대 그리스·로마·이집트 유물이 전시돼 있다. 파르네제와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섬세한 대리석 조각과 정교한 모자이크화가 일품이다.


국립카포티몬테 미술관(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에서는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티치아노 베셀리오(Tiziano Vecelli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등의 성화와 17~18세기 나폴리 회화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다. 나폴리·시칠리를 지배한 스페인왕 카를로7세(1716~1788, 재위 1734~1759)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파르네제(Elisabeth Farnese)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 콜렉션을 전시하기 위해서 건설한 궁전으로 바로크·로코코 양식이 혼재돼 있다. 고고학박물관과 카포티몬테미술관은 이탈리아 양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만큼 미술 마니아들이 놓쳐서는 안 될 코스다.



정종호 기자 healt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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